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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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스르는 자들의 인연, 강풀 작가의 <타이밍>

스릴러를 표방하면서도 각각의 캐릭터들의 인간미가 느껴지는 작품

2024-01-02 김진철

시끄러운 상황에서 일순 고요해졌을 때, 처음 겪는 순간인데 마치 전에 겪었던 일 같을 때, 꿈에서 봤던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 것 같은 경험을 한 번 쯤은 겪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연히 일어난 현상이었을까,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초현실적인 작용 때문이었을까. 강풀 작가는 그런 현상이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상상을 했다. 


| 특별한 시간 능력자들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것 중 하나인 시간. 다른 사람보다 빠르거나 느리게, 또는 과거나 미래로 이동할 수 없다. <타이밍>은 이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자들의 이야기이다. 시간을 멈출 수 있는 타임스토퍼 김영탁, 10초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타임와인더 강민혁, 10분 후의 미래를 볼 수 있는 예지안을 가진 장세윤, 미래의 한 장면을 볼 수 있는 예지몽을 꾸는 박자기 등 시간과 관련된 능력자들은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숨기며 살아간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또다른 능력자는 저승사자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저승사자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타이밍>의 저승사자는 그 역할은 물론 살아있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능력도 갖고 있다. 눈빛을 보는 것만으로, 또는 손을 잡는 것만으로 죽음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존재이다. 저승사자 중에는 자신의 능력을 악용해서 아직 수명이 다하지 않은 사람들을 망자로 만드는 이가 있다. 연쇄살인을 기획한 백기형이 바로 그런 저승사자다.  



| 소중한 생명을 살리려는 마음과 다이닝 메시지

<타이밍>의 능력자들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려고 노력한다. 타임 와인더 강민혁은 가족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더 이상 능력을 쓰기 않기로 마음을 먹었음에도 드럼통에 깔릴 위기의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과의 약속을 깨뜨린다. 김영탁 역시 위기의 순간 시간을 멈춰 강민혁을 구한다. 장세윤은 10분 후에 일어날 사고를 막기 위해 사람들에게 위험을 알려준다. 이들은 박자기가 꿈에서 목격한 한 장면이 발단이 되어 학교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죽음을 막기 위해 힘을 모은다. 하지만 이들의 고군분투는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그들의 능력을 교묘하게 이용한 백기형에 의해 김영탁과 강민혁, 저승사자인 양성식 형사까지도 죽음에 이르고 만다. 

이렇게 파국으로 끝날 것만 같던 상황은 다이닝 메시지들로 반전을 맞게 된다. 김영탁은 죽어가면서도 이 사건의 범인이 백기형이라는 것을 강민혁에게 알렸고, 양성식 형사는 자신의 손을 자르면서까지 백기형의 손이 위험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리고 강민혁은 자신이 죽음에 이를 정도로 시간을 되돌리며 박자기에서 메시지를 각인시킨다. 그것은 박자기가 능력자들을 찾아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박자기는 백기형의 진심을 미리 알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이 모든 상황이 악몽으로 나타나도록 스스로 죽음을 택하면서 자신에게 강력한 다이닝 메시지를 남긴다. 이런 다이닝 메시지들은 박자기를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시간에 악몽에서 깨어나게 한다. 


| 두 번째 삶 

과거의 시간에 깨어난 박자기는 같은 시간을 두 번 살게 된다. 박자기는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연쇄살인의 원인이었던, 백기형이 구하고자 한 김영의 죽음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도움을 준다. 김영에게 죽음을 가져올 저승사자를 피하는 과정에서 위기의 순간에 딱 맞춰 나타난 시간 능력자들의 도움을 받게 되고 덕분에 아무도 죽지 않고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박자기는 “자신은 운명은 믿지 않지만 인연은 믿는다”는 말을 한다. 삶이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정해져 있는 결과가 아니라 특별한 인연들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인연들도 설익은 만남은 서로에게 상처가 되고, 때늦은 만남은 아쉬움을 준다. 박자기가 능력자들을 찾아나선 첫 번째 만남의 결과는 비극으로 끝이 났지만,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러웠던 두 번째 만남은 행복한 결말을 가져다 주었다. 그래서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 스릴러에서 느껴지는 인간미

<타이밍>은 스릴러를 표방하면서도 각각의 캐릭터에서 인간미가 느껴진다. 박자기 선생의 꿈때문에 모인 능력자들은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다. 심지어 연쇄살인을 일으킨 백기형 조차도 그런 행동을 하기까지 슬픈 서사가 있다. 부모의 무관심과 갑작스런 사망, 우연히 얻게 된 저승사자의 능력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어야 하는 고독감. 이런 기형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준 친구 김영의 예정된 죽음. 끔찍한 사건이 유일한 친구의 죽음의 운명을 바꾸기 위한 마음이었다는 서사로 연민의 시선을 보낸다. 또한 답답한 교장선생님, 불편하던 체육선생님도 사실은 악의가 없었다는 것을 빼놓지 않는다. 장르는 스릴러인데 결국 강력한 악당 캐릭터가 없다. 이런 캐릭터에 대한 애정은 강풀 작가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특별함이다. 그래서 히어로들의 거대한 대결 이야기 보다 강풀 작가의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 아닌가 한다. 


필진이미지

김진철

동화작가, 만화평론가
《낭이와 타니의 시간여행》, 《잔소리 주머니》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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