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날 꺼내줄 순 없고 더 깊이 스며들어 다그칠 수도 없어
나의 입안에는 죄로 가득한 후회만 Tell a lie
김보통 작가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D.P. 개의 날>의 OST ‘Tell a lie’의 가사다. 군대를 경험한 적 없는 필자는 ‘아무도 날 꺼내줄 수 없다’는 가사 속에서 군대에 간 또래 남자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했던 벗어날 수 없는 갑갑함이란 저런 것이었을까 떠올려보곤 했다. 이전에 비해 여건이 나아졌다곤 하지만 철저한 수직 체계의 폐쇄적인 집단생활에 몇 년을 고립된다는 것 자체가 아무도 꺼내줄 수 없는 늪에서 허우적대는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화 <D.P. 개의 날>은 아무도 꺼내주지 않는 군대에서 스스로를 꺼내버린 탈영병들과 그들을 잡는 군탈체포조 안준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안준호에 의하면 대부분의 탈영은 우발적이다. 게임이 잘 돼서, 연인과 더 오래 있고 싶어서 제때 복귀하지 않았다가 금방 잡혀 복귀한다. 안준호를 짓누르는 것은 일부의, 폭력에 못 이겨 살고자 탈영한 이들이다. 선임이 파리를 먹여서, 코 곤다고 잠을 못 자게 해서, 너무 많이 때려서, 자는데 성기를 만져서 등이 그 내용이다. 2010년대에 화제가 된 실제 사건들을 모티브로 탈영병들의 사연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작품은 사회고발적 성격을 띤다.
그러나 결국 탈영한 개인, 그리고 탈영병을 만든 가해 병사 개인의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는 한계점이 있다. 물론 개인 이상의 수준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의식은 내포되어 있다. 작품 속에서 생활관은 구타와 얼차려가 일상인 공간이며, 간부가 이를 알면서도 모른 척 대강 넘어가는 것이 당연하다. 피해자였던 동기가 자연스럽게 가해자가 되고 그 가해의 고리를 완전히 합리화하고 있는 모습은 군 내 가혹행위라는 것이 단순히 개인의 인성 문제를 넘어선 사회적, 조직적 문제임을 보여준다.
작가 역시 ‘<D.P. 개의 날>이 현상을 펼쳐놓고 보여주는 이야기였다면 다음에는 이런 현상을 만들어낸 조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만화를 그려보고 싶다’고 말한다. 가해와 피해의 원인을 파헤치거나 즉각 행동해야 할 대상을 제시하는 대신 한 걸음 물러서서 당사자이기도 제3자이기도 한 군탈체포조의 연민과 반성 어린 시선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D.P. 개의 날>은 사실 사회고발보다 자기고백적이다. ‘누군가의 친구 혹은 동생, 이웃이거나 선배였을지 모르는 젊은이를 쫓고 체포해서 기어코 법의 처벌을 받게 만들어야 했던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말이 작품 전반에 흐르는 자책적인 뉘앙스와 맞닿아 있다고 느낀다.
안준호가 끝내 잡지 못한, 가족과도 연락 두절된 이준협은 작품의 마지막에 안준호가 일하는 편의점에 맥주를 사러 온다. 이준협을 알아보고 망설이다 그냥 계산을 해주는 안준호의 모습이 어쩌면 작가가 말하는 죄책감에서 나온 염원일지 모르겠다. 잡힌 사람들은 잡혔기 때문에 더 이상 쫓기지 않는 안전한 삶을 살기를, 잡히지 않은 사람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안식이 있는 삶을 찾은 것이기를. 그리고 그들을 살고 싶지 않은 삶과 쫓기는 삶 사이의 기로에 놓이게 한 조직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이 작품의 염원 바깥에서 우리의 몫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