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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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반을 담당하는 선생님이 고급반 수강생을 대하는 태도를 취하는 경우 <글쓰기는 한 문장부터>

<글쓰기는 한 문장부터>는 맞춤법, 다양한 표현과 어휘 사용, 문장 쓰기의 기본을 만화로 소개한다

2024-01-19 이복한솔


맞춤법은 중요하다. 그런데 어렵다. 정규 교육을 받는 내내 한국어 사용 훈련을 받은 필자도 이 원고를 작성하면서 몇 번이나 맞춤법을 검사하고 표준국어대사전을 뒤졌다. 학교에서 받아쓰기 시험을 보고 사전 사용법을 배우던 시절에는 평생 한국어를 사용해도 완벽하게 구사하기가 매우 어려울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좀 더 자란 청소년기에도 마찬가지였다.



<글쓰기는 한 문장부터>는 맞춤법, 다양한 표현과 어휘 사용, 문장 쓰기의 기본을 소개하는 책이다. 흔한 오류를 소개하고 어떤 표현 어떤 표기가 맞는지, 틀린 것과 맞는 것을 쉽게 구분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좋은 문장을 쓰는 요령은 무엇인지 차근차근 알려준다. 각 장은 만화와 연습 문제로 이루어져 있다.

만화의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 서연과 식구들에게는 반려 고양이가 있다. 그는 정확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을 가르칠 수 있을 정도의 맞춤법, 문법, 작문 실력을 갖추고 있다. 대화, 안내문, SNS 댓글 등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말이나 글에서 오류가 발견되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틈만 나면 잘못을 짚어내고 가르치려 드는 탓에 식구들은 그를 '고 선생'이라고 부른다.

맞춤법이나 문법 오류를 발견할 때마다 조목조목 꼬집는 사람(혹은 고양이)를 상대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사람은 혼자 생각할 때, 다른 사람과 소통할 때,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언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당신이 말을 잘못했다, 글을 잘못 썼다, 좌우간 그건 틀렸다는 말을 들으면 (그런 쪽으로 맷집을 충분히 기르지 않았을 경우) 숨을 그렇게 쉬면 안 된다고 지적당한 것처럼 어디가 턱 막히면서 답답해진다. 뜻이 대충 통하고 큰 불편이 없는 듯 보이는 상황에서 잘못된 부분을 정정해야 한다고 나서는 사람이 낯설고 불편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디가 왜 잘못됐는지 모르니까 지적 당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불편하다. 세상에는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가 있는데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피곤해질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겠다. 그러면 문제를 제기한 쪽에서 설득을 해야한다. 우리가 그런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이유를 적절한 단어와 문장을 동원해서 충실하게 답해줘야 한다. 그런 수고와 과정 없이 상대방이 바뀌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게 아주 작은 변화라 하더라도 말이다.

<글쓰기는 한 문장부터>는 올바른 한국어 사용법, 즉 정보를 전달하는 쪽에 비중을 두고 있다. “생각과 감정을 올바른 한 문장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연습”하는 일의 중요성이 머리말에서 언급되기는 하지만 만화에서는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았다. 일례로, 주인공인 서연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은 맞춤법이 틀렸다, 논리적인 오류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나서 떨떠름해하거나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고는 한다. 이때 지적을 한 쪽은 상대의 반응을 좀처럼 받아주지 않는다.



한 면에 패널이 네 개씩 들어가고 그중 하나를 차지하는 것이 어디가 턱 막힌 듯한 인물의 얼굴인데, 그 상태가 해소되지 않거나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언급되지 않은 채로 장면이 끝날 때마다 아쉬웠다. 왜 맞춤법을 지키고 띄어 써야 하는지 스스로 생각을 환기할 만한 여유를 주지 않으면 독자는 일방적이라고 느끼고 답답할 수 있다.



필자는 서연이가 국어 교사에게 편지를 건넨 뒤에 일어난 일이 특히 마음에 걸린다. 교사는 편지 내용에 대한 간단한 답장과 함께 빨간펜으로 첨삭한 편지를 서연에게 돌려준다. 숙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건넨 편지 원본을 첨삭까지 해서 돌려주는 행동은 과하고 무례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정작 편지를 쓴 장본인은 이 일을 계기로 글을 더 잘 쓰고 싶다는 의욕을 갖게 되는데, 필자는 아직도 이 부분에 공감을 못 하고 있다.

책의 2부에서는 불평등한 표현을 지양해야 하는 이유, '초성체' 대신 구체적인 표현 사용을 권장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비슷한 방식으로 당신이 맞춤법을 지키면서 올바른 한 문장을 쓰는 능력의 중요성을 등장인물이 알려주거나 몸소 보여 주었다면 어땠을까? 책을 만든 사람들은 굳이 만화라는 형식을 채택했다. 스마트폰과 프린터 사용법을 잘 몰라서 도움을 청하는 노인, 편의점을 운영하는 가장, 랩과 음악을 좋아하고 직접 표현하는 것에도 익숙한 청소년 등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등장인물에게 반영했다. 독자에게 더욱 깊고 폭넓은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주고자 했던 것이 기획 의도였던 만큼 만화에 상냥하고 친절한 설명이나 이야기가   추가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을 조심스럽게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