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시작과 끝, 그사이의(Meanwhile) 선택, 제이슨 시가의 <민와일>

우리는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통해 끊임없이 선택을 반복하며 세상의 진실을 간접적으로나마 탐구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2024-03-05 박근형


최근 인터랙티브 콘텐츠의 영역은 게임, 만화, 영화, 드라마에 이어 뮤지컬과 광고에까지 확장되었다. 이러한 인터랙티브 콘텐츠의 상호작용성은 만화에서는 게임에서의 ‘스토리 선택’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데, 스토리 선택과 관련된 진행 방식은 크게 2가지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게임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택지 A를 고를 경우 OO 페이지로 가시오’와 같이 선택지에 따라 페이지를 이동하는 방식을 취한다. 주로 출판만화에서 보기 쉬운 구성이지만 웹툰 ‘탈이 났소’와 같이 웹에서 하이퍼링크를 통해 이와 같은 방식을 구현한 사례가 있으며, 2023년 8월 카카오에서 론칭한 ‘오아오아에피’ 애플리케이션에서도 선택지를 통한 전개 방식을 차용하고 있다. 이 방식에서는 선택지와 분기에 따른 모든 가짓수의 이야기와 결말이 이미 결정되어 있으며, 독자는 언제든지 선택의 분기점으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통해 다양한 스토리와 결말을 감상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웹에서 주로 이용하는 방식으로 독자 투표 등으로 다음에 전개될 이야기의 방향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에서는 독자는 정해진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것 이상으로 댓글 작성, 의견 제시 등 프로슈머(Prosumer)로서의 능동적인 참여가 요구된다. 2021년 리디북스에서 선보인 <운명 극장 : 놀부 박타령>이 이 방식을 채택하였고, 일찍이 스콧 맥클라우드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Choose Your Own Carl>이라는 코너를 운영하여 (읽는 방향을 독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기존 만화의 독서 방향을 바꾸어 읽을 수 있는) “다방향 만화에 대한 실험일뿐만 아니라, 독자 참여에 의한 집단 창작” 프로젝트를 통해 인터랙티브 만화에 대한 가능성을 시험하기도 하였다. 다만 두 번째 방식은 독자 참여로 결정된 한 가지 내용에 대해서만 다음 이야기가 진행되기도 하기 때문에, 선택의 분기로 돌아가더라도 다른 선택에 대한 결과를 볼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있다.


2023년 4월 인터랙티브 만화이자 다방향 만화이기도 한 작품인, 제이슨 시가의 『민와일』(Meanwhile)이 국내에 출간되었다. 제목인 ‘Meanwhile’은 ‘두 가지 시점·사건 사이/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한편’과 같은 사전적 의미를 지녔다. 제목 그대로 『민와일』은 시작과 결말 그 사이에서 독자를 선택에서 비롯하는 수많은 갈래의 모험으로 유도하며, 선택지를 고른다는 행위의 ‘상호작용성’을 멀티버스(다중우주)의 개념으로 확장한다. 『민와일』은 “재결합 되는 가지들을 가진 서술방식”인 벌지 트리 방식의 스토리텔링 서술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규정된 기존의 독서방법을 탈피함으로써 다방향 만화로도 읽을 수 있다. 『민와일』의 플롯은 한 가지 결말에만 도달해서는 세계의 진실을 파악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으므로 독자는 다 회독으로 다양한 분기점에 접근하는 것이 권장된다. 

이 작품은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고 배탈이 난 소년 ‘지미’가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우연히 한 연구소에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독자는 단순히 아이스크림 맛을 고르는 것에서부터, 발명품의 시험, 지미의 행동들, 비밀번호 해독까지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민와일』의 화풍과 북 디자인이 아동-청소년층을 겨냥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러 결말 중 비극적인 결말이 대다수이며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 또한 영화 <타임 패러독스>, <타임 크라임>과 같은 타임 패러독스를 다루는 타임슬립물의 장르적 묘미 또한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성인 독자도 충분히 즐길 수 있으리라고 예상된다. 

작가인 제이스 시가의 소개문에는 그가 이그나츠 어워드와 아이스너 어워드를 수상하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다수 집필했다고 되어있지만, 아쉽게도 국내에는 『민와일』 한 작품밖에 출간되지 않았다.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독자는 그의 홈페이지( http://www.shigabooks.com )를 통해 다른 작품도 접해볼 수 있다. 제이슨 시가의 작품들이 국내에 더 소개되어, 국내 독자들의 만화 서술 방식에 대한 이해의 지평이 보다 확장되는 계기가 될 수 있길 바란다.


사람은 삶에 있어 주체적인 위치를 점하기를 희망한다. 선택되기보다는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선택을 하고 나서는 다른 선택의 결과마저 궁금해하며 탐낸다. 인터랙티브 콘텐츠와 멀티버스(Multiverse, 다중우주) 소재가 꾸준히 관심을 끄는 이유는 인간의 이러한 원초적인 욕망에 기인할 것이다. ‘다르게 선택했으면 어땠을까’라고 후회하더라도 현실의 시간은 불가역적으로 흘러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다. 결국 한 방향으로 진행되는 인생에서 마주하는 세상의 모습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통해 시작과 결말 그 사이(Meanwhile)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반복하며 세상의 진실을 간접적으로나마 탐구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필진이미지

박근형

‘좋음’을 다정함을 담아, 적확하게 쓰고 싶습니다.

2017 디지털만화규장각 신인만화평론 공모전 가작
2018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감상문 공모전 가작
2018. 6. ~2019. 1. 디지털만화규장각 만화웹진 만화리뷰 연재
2019 한국만화박물관 소장자료 연구 필진 참여
2021 제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감상문 공모전 대상
2023 전북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재학 중
2024 대한민국만화평론공모전 최우수상 수상


관련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