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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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오를 통해 웃음 짓기, <북경신보>

무협 세계 속 여러 '착오' 속에서 웃음이 멈추지 않는 작품

2024-05-05 수차미



| 착오를 통해 웃음 짓기, <북경신보> 

무협을 읽는 일은 대개 많은 배경지식을 요구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무협이 하나의 세계관을 이루기 때문인데, 영화로 치자면 <스타트렉>이나 <스타워즈>, <듄> 같은 쪽에 가깝다. 소위 ‘자기만의 멋’이 있는 이런 설정에 깊게 이입하고 나면 무협 장르를 보는 즐거움은 배가 되지만, 바꾸어 보면 이는 진입 장벽이 상당히 높아서 작품을 보는 독자층이 한정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를 따라 정통 무협이라 부르는 작품군이 있다면, 어떤 설정이나 작법으로 작품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경우도 있는데 이러한 작품들은 어느 장르 못지않게 인기를 누리곤 한다. 가령 <화산귀환>이나 <나노마신>의 경우 부분적으로 회귀, 빙의, 환생의 3신기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고 <무모협지>처럼 아예 코미디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경우도 있다. 이때 각 작품의 특징을 꼽자면 다음처럼 요약된다. <화산귀환>은 미래로 온 과거인이고, <나노마신>은 미래의 힘을 빌린 과거인이다. <무모협지>는 사실상 현대의 관점으로 바라본 과거다. 

무협지의 이런 경향은 사실 <스타워즈>가 우주로 간 서부극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에서도 그리 이상할 건 없는 일이다. 그런 <스타워즈>조차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사무라이물인 <숨은 요새의 세 악인>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으니 두말할 것은 없다. <숨은 요새>가 수백 년 전에 있었을 수도 있는 과거로 향한다면, <스타워즈>는 수백 년 뒤에 있을지도 모를 미래로 향한다: 이렇게 작품들이 서로를 주고받아 영향을 주는 일에서 우리는 ‘과거’와 ‘미래’가 ‘현재’라는 낯선 장소로 귀결되는 일을 발견한다. 과거와 미래가 나란히 있을 때는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지만 그 둘에 변화가 생길 때 현재는 단순한 시제가 아니라 관객의 현실을 제시하는 장소가 된다. 즉, 무협지는 대개 ‘중원’과 ‘분파’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진행되나 이런 설정들을 현재에 가져오는 건 이들을 현대식으로 개조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무협은 그 안에서 과거와 미래를 오갈 때 비로소 독자들의 ‘현재’에 다가설 만한 게 된다.

<무모협지> 같은 경우 이 작품은 현대인들의 관점으로 당대 무협인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원작자가 한국인이 아닌 관계로 작품에 대한 평가나 이해는 다소 제한되지만, 확실한 건 만화가 응용하는 게 현재와 과거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하나의 낙차 삼아 관객에게 추락의 쾌감을 선사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가령 슬랩스틱 코미디는 상승보다 추락에 가까운 묘사들이지만 그럼에도 청중은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이는 코미디언의 신체가 우스꽝스럽게 휘날려서도 아니고, 대상이 나락(사회면이 아니라 본래 쓰던 뜻에서 말이다)에 빠지는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 자신의 삶을 희극화하는 것도 아니다. 장르적으로 정의된 행동들에서 이상을 감지하는 일은 당대의 분위기, 클리셰에서 벗어나야만 비로소 가능하며 그런 것들이 정말로 ‘이상하다’고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웃음 짓는다. 즉, 일종의 ‘착오’라고 할만한 것들에 관해 이들 무협은 서술한다고 볼 수 있을 테다. 

착오는 착각하고 오인한다는 두 가지 뜻의 조합이다. 이 정의를 가지고서 논의를 이어가보고 싶다. <북경신보>는 무림을 배경으로 삼아 진행되는, 저널리즘형 사회 고발 웹툰이다. 설명이 다소 이상하게 들린다면 정확히 본 것인데 이 작품에서 무협은 독자에게 다가서기 위한 ‘착오’에 해당한다. 일단 산업혁명의 기반이 된 에너지가 무공이라는 점에서 무공펑크 정도로 요약될 수 있을 이 세계관은 현실과는 다른 구성원리로 세워져 있다. 사회적 인프라와 물리 법칙은 사람들의 사고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기에 이들 세계는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 헌데, <북경신보>에서는 우리네 현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일들이 등장하며 그 제시는 무공의 탈을 쓴 사건사고들로 가득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고 있는 건 무공 스킨을 씌운 현실에 불과한 게 아닐까? 달리 말하자면 사건사고를 바라보기 위해 특정 세계를 준거점 삼지 않는 뉘앙스가 이 만화에 전제로 깔려 있다. 의협심은 꺾이지 않는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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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차미

< 만화평론가> 
* 2019 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상 신인 부분 
* 2019 한국예총 평론상 영화 부문
* 2020 서울시립대 영화평론 공모전 대학원생 부문
* 2024 부산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
* 저서 『안녕하세요 오즈 야스지로』,『포스트 시대의 영화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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