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죽음과 공감의 신생
죽음이란
假面을 벗은 삶인 것.
(기형도, 「겨울·눈〔雪〕·나무·숲」)
그럼에도 죽음은 결국 죽음 아닌가. 죽음은 생명체에게 아무런 위해도 가할 수 없다고 위로하는 에피쿠로스의 교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삶과 죽음의 냉철한 이분법에 기댄 그 교설도 단말마의 고통 속에서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는 허무를 어찌 달랠 것인가. 죽음을 둘러싼 불길한 어둠을 희석시키고 삶의 한 과정으로 의미화하기 위한 철학자와 예술가들의 사투를 떠올려 볼 때, 제니 진야가 쓰고 그린 만화책 『다정한 사신』(이 글에서 괄호 안에 쪽수를 표기한 것은 모두 이 책에서 인용한 것임을 밝힌다. 단행본과 달리, 영화는 겹화살괄호(《 》)로 인용했다.)(책공장더불어, 2023. 이하 『사신』.) 이 그 사투에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사신』은 이기적인 인간 중심주의로부터 탈피하여 비(非)인간적인 것들의 마음과 고통을 헤아릴 수 있는 공감 지평을 확장하는 데에 사력을 다한다. 범박한 과격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인간을 고등‘동물’로 보는 시선이 허용된다면, 『사신』은 동물의 죽음을 통해 새로운 감수성을 탄생시키는 만화라고 요약될 수 있겠다. 인간을 제외한 하등동물들의 물리적 죽음 앞에서 고등동물인 인간은 상징적으로 죽게 된다. 동물들을 고문했던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비정한 삶이 죽게 되는 것이다. 그 죽음으로써 비(非)인간의 고통에 절실히 감응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된다. 그런 의미에서 『사신』은 “되먹지 못한 사람들에게” (24쪽) 울리는 조종(弔鍾)이다.
그 종소리가 싸늘하기보다는 자꾸만 따스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 이유는 『사신』의 적극적인 공감적 태도에 있을 것이다. 공감은 자기중심의 생각과 감정을 잠시 ‘죽이고’ 타인의 입장에서 사유하고 느낄 줄 아는 변화를 근간으로 삼는다. 산/죽은 동물들의 마음속 내밀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장치로 해골 사신이 빈번히 활용되는 것은 공감의 이 변화성과 관련하여 이해될 수 있다.
동물들이 학대당하거나 유기당했던 삶의 장면이 사신의 이미지처럼 음울한 무채색으로 그려지는 반면, 죽은 동물들의 영혼이 “초록”(84쪽)으로 그려지는 현상은 눈길을 끈다. 초록은 자연의 색이다. 자연은 생명이다. 이러한 연출은 동물들이 죽음을 맞은 후에 生과 死를 분별없이 끌어안은 대자연의 세계로 편입되는 것을 보여준다. 명계는 또 다른 생명체들이 거주하는 “새 왕국”(73쪽)이다. 그 왕국의 군주는 사신이다. 그런 사신의 뼈다귀 손에서 초록색의 풀과 꽃이 자라나는 장면은 아름답다. 생명의 발아에 연동되는 죽음의 이면을 이미지로 압축하는 감각은 절묘하다. (이 장면과 비슷한 연출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영화 《모노노케 히메》(일본, 1997)에서도 발견된다. 그 영화에서 시시가미(사슴신)가 쓰러진 남자 주인공 아시타카를 향해 풀밭 위를 걸어가는 장면에서 시시가미의 발자국들에서 식물이 자랐다가 곧바로 시들어 없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生死가 긴밀히 상호 연관돼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두 장면은 유사하다. 그러나 『사신』이 죽음 후에 펼쳐지는 새로운 생명 세계의 존재를 보여주는 데에 집중한다면, 《모노노케 히메》는 시시가미가 삶과 죽음을 모두 관장하는 신령한 존재임을 보여주는 데에 의도가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인상적으로 연출된 장면은 그뿐만이 아니다. “생명의 여신”(131쪽)은 『사신』에서 독특한 존재감을 내뿜는다. 그 존재감을 강조하는 방식이 상당히 힘차다. 생명의 여신은 13장에서 처음 등장한다. 생명의 여신이 등장하기 바로 전 장면에서는 사신의 얼굴이 흑백 컬러로 클로즈업되는 반면, 황토색과 탁한 보라색으로 칠해진 생명의 여신은 그 상반신 부분이 그려진다. 생(生)과 사(死)의 대비를 박력 넘치게 장면화한 사례로서 손색이 없다.
챕터 20에서도 생명의 여신이 등장하는데, 이 장 역시 또 다른 의미에서 인상적이다. 그 난해성 때문에 많은 독자의 뇌리에 의아하게 남을 만하기 때문이다. 제니 진야가 각 장의 마지막에 첨부한 동물 학대 관련 정보 및 훈계는 대부분의 챕터에서 읽을 수 있는데, 20장의 뒤에는 그런 사실적 지식이 붙어있지 않다. 이는 작가의 심중에 깃든 어떤 메시지가 상징적 의미를 띠고 이미지화된 결과물로서 20장을 독해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20장에서는 노란 도로 중앙선에 위치한 고슴도치 1마리를 두고 사신과 생명의 여신이 그 고슴도치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관해 설전을 벌이며 망설인다. 그 도로 중앙선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선이다. 사신과 여신이 우유부단하게 꾸물거리는 사이에 고슴도치가 갑자기 4마리로 늘어났다가 고슴도치들이 많아진 그 사실에 둘 다 놀라워하는 사이에 고슴도치들이 전부 사라지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이 증식과 실종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고슴도치가 있었던 경계선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선 수많은 동물의 상황을 대변하는 것이리라. 그런 상황에서 사람이 망설이는 사이에 동물들이 살아남아 생식 기능을 발휘할 수도 있고 사멸할 수도 있으니, 인간이 최대한 빨리 움직일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죽음은 한 세계의 끝이자 새로운 다음 세계의 시작이다. 독자들이 『사신』을 접함으로써 많은 동물이 처한 아픈 현실에 “사형 선고를 내리는” (87쪽) 사신이 되어주기를 제니 진야는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사신이 된다면, 산 비(非)인간들뿐만 아니라 죽은 영혼들과도 교감하는 “친구”(124쪽)로서 세계에 어우러질 가능성도 미광처럼 솟아나지 않을까?
당신도 살아오면서 죽을 만큼 아팠던 적이 적어도 한 번쯤은 있었을 터. 그랬었던 당신이 『사신』을 감상한다면, 당신이 그동안 겪었던 무수한 공감과 변이가 타인의 아픔을 종식시키기 위한 간절한 순교였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죽음은 더 이상 참혹한 고통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고귀한 ‘성사’(聖死/聖事)로 승화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