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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도서관 환생 북클럽> : 헛되고 찬란한, 과거라는 낙원에게

'남산도서관 학생 북클럽(글, 그림 송송이 / 카카오웹툰 연재) 리뷰

2024-05-07 김민경

<남산도서관 환생 북클럽>

헛되고 찬란한, 과거라는 낙원에게

0.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저서 <레트로토피아>에서 현대사회를 향수병에 걸린 거대한 환자 집단으로 진단한다. 그에 따르면 현대인이 암담하고 불안정한 미래 대신 한 차례 보증된 과거라는 안정성을 갈망한다는 것이다.

  현재 카카오웹툰에서 일요일마다 연재 중인 <남산도서관 환생 북클럽>은, 작금의 대한민국을 도화지 삼아 바우만이 주장한 레트로토피아라는 개념을 맘껏 재해석하는 듯한 작품이다. 1980년대에서 90년대 사이 유행했던 일명 시티팝 풍의 그림체와 더불어 현실과 과거가 교차되는 연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주연인 하준하와 썸머 모두 말 그대로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기 때문이다.

1.

  남산도서관 낡은 보존서고에서 지내는 썸머는 유령과 같은 존재로 1999년 1월 이후 만들어졌거나 태어난 사물 혹은 인간과는 교류하지 못한다. 그런 썸머의 목표는 기억을 되찾고 자신이 살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윽고 도서관에 새로 온 사서 하준하가 예외적으로 썸머와 교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얘기는 시작된다.

  여기서 좋아하는 것 하나 없이 그저 부모님의 뜻에 따라 열심히 공부해 명문대 의예과에 수석 입학한 하준하는 대한민국의 독자에게 낯설지 않다. 문제는, 썸머다.

<남산도서관 환생 북클럽> 3화

  엄청난 노래 실력의 소유자로 언젠가 대한민국을 호령하는 가수가 되는 게 꿈인 썸머는 분명히 이 작품의 중심에 있지만 실제로 그에 대해 제공되는 정보는 많지 않다. 왜일까? 독자에게나 하준하, 심지어 본인에게조차 1999년이라는 숫자와 당시 유행했던 대중가요와 스타일로밖에 존재하지 않는 썸머라는 인물은, 사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과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시 말해 하준하는 현대를, 썸머는 과거를 대변한다. 앞서 언급한, 현대인이 집단으로 걸린 향수병이란 질병이 이 작품에서는 연분홍색 머리를 하고 찬란하게 웃는 썸머를 향한 하준하의 감정으로 표현된다. 문학 연구자 스베틀라나 보임은 향수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향수(nostalgia)란 상실과 전이의 감정이지만, 자신의 판타지와 교감하는 “로맨스”이기도 하다.

2.

  그렇다면 생기는 질문 두 가지. 첫째, 과거는 정말 아름답기만 했는가? 둘째, 우리는 언제까지고 과거에 매인 채로 살 수밖에 없는가? 정답은 둘 다 아니오, 다. 

<남산도서관 환생 북클럽> 85화

  썸머의 과거이기도 한, 막 태동하는 한국의 여성 아이돌 산업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 속 과거는 그 배경인 연예계만큼이나 반짝거림과 어둠이 공존하는 시대다. 과거 썸머와 함께 가수가 되려 했던 유겨울은 인기 연예인이자 프로듀서 도재성으로부터 데뷔를 대가로 성관계를 가질 것을 종용받으며, 이는 다시 썸머와 유겨울의 새 프로듀서이자 과거 걸그룹 터치의 멤버 김리하를 통해 업계의 구조적인 문제로 확대된다. 환한 조명이 비추는 무대 뒤로 한철 지나면 그만이라는 부당한 평가, 절박한 마음을 교묘히 이용한 강요 아닌 강요로 가득한 과거는 결코 아름답기만 할 수 없다.

3.

  둘째, 우리는 평생 과거만을 좇으며 살아갈 것인가? 작품은 이에도 또한 반대하는 듯하다. 이를 이해하려면 작품의 또 다른 주연인 유리오를 언급해야만 한다.

  과거 썸머의 주위에는 두 인물이 있었다. 함께 데뷔를 준비하던 유겨울, 그리고 현재는 정상급 프로듀서인 정우혁이다. 유리오는 유겨울의 딸이자 정우혁의 소속사에서 막 데뷔를 앞둔 가수 지망생이다. 썸머의 망령에 사로잡힌 두 사람은 유리오를 가수로 만들려고 하지만, 사실 유리오가 진짜로 원했던 건 좋아하는 책을 읽고 문학을 공부하는 것이다.

<남산도서관 환생 북클럽> 57화

  작품 내내 사랑하는 엄마와 자신의 꿈 사이에서 내적인 갈등을 겪지만, 썸머라는 과거 위에서만 숨을 쉴 수 있는 유겨울이나 정우혁, 즉 레트로토피아의 거주민들과는 달리 유리오는 끝내 데뷔를 포기하고 제 발로 걷기를 택한다. 그것이 끝내 영혼의 일부가 엄마가 사라져간 어둠의 방향을 바라보는(61화) 결과를 초래할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유리오는 우리가 기어코 과거라는 향수로부터 결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하준하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동생을 핑계로 결정을 내리는 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음을 깨달은 하준하는, 점차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유겨울-정우혁과 달리 유리오-하준하의 다음 세대가, 레트로토피아라는 거짓된 환상을 떠나는 모습을 그리며 작품은 그래도 오늘의 우리가 어제보다는 나아질 거라고 말한다.

4.

  썸머(Summer)는 여름을 뜻하는 영어 단어다. 여름은 아름답고 성가신 계절이다. 과거 또한 그러하다. 아름다움에 홀려 밖에 나갔다간 피부가 벌겋게 타겠지만, 절로 가는 시선을 멈출 수는 없다. 과거의 아름다움과 성가심을 모두 받아들이고 우리에게 찾아올 또 다른 여름을 기다리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닐까.


필진이미지

김민경

만화평론가
2021 만화평론공모전 최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