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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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성장통 속 곪아버린 상처에 대한 이야기, <잘자, 푼푼>

잘자, 푼푼 (글, 그림 아사노 이니오/애니북스 출판)

2024-06-21 김민재

아픈 성장통 속 곪아버린 상처에 대한 이야기, <잘자, 푼푼>

푼푼...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 , , 명예... 물론 이러한 것들도 정말 중요한 것들이지. 하지만 가장 중요한건 네가 한 행동에 대한 책임이야.”

- <잘자, 푼푼> 7

  오늘 날, 코미디의 장르 중 하나인 블랙 코미디는 우울하거나 무서운 내용, 심오한 주제를 익살스러운 요소와 결함한 희극으로서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둡고 염세주의적인 작품을 말한다. 1940년 프랑스 초현실주의 작가 앙드레 브루통(André Breton)이 발간한 블랙 유머 선집(Anthology of Black Humor)에서 블랙 코미디라는 단어가 처음 쓰였다. 풍자와 희화화를 통해 웃음을 이끌어 내는 블랙 코미디는, 많은 이들을 하여금 밝은 웃음보단 어딘가 씁쓸한 웃음을 유발해 낸다. 그러면서도 냉소적이며 잔인한 풍자를 담고 있다. 그러나 블랙 코미디는 냉소, 풍자, 우울함 속 희극으로만 표현하기는 어렵다. 결국 독자들은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일부분의 희극만 보는 것이 아닌, 이야기 전체를 바라보고, 스토리가 지닌 형태와 구조 속에서 주제를 관통하는 작가의 생각을 유추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처야만 한다. 


  만화 <잘자, 푼푼>은 그런 블랙 코미디 중에서도 더욱 깊은 정서를 보여준다. 이야기는 주인공, 오노데라 푼푼의 시선에서 푼푼의 성장기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초등학생인 푼푼은 같은 반에 전학 온 아이코를 만나며 좋아한다는 감정을 품게 된다. 또 한 편으로는 부모님끼리의 다툼, 성적 호기심 등으로 마음이 복잡해진다. 초반의 푼푼의 이야기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같은 생각을 품게 되며 그리운 감정과 미소를 띄게 한다. 주변 인물들의 우스꽝스러운 표정들과 행동들도 웃음을 유발한다. 그러나 푼푼이 자라면서 이야기는 급작스럽게 전개된다. 푼푼은 자신의 상황에서 점점 도피하고, 회피한다. 이내 그 감정들은 푼푼의 마음속에 곪아간다. 푼푼은 그 곪은 상처들을 무시한 채로 그것들로부터 도망친다. 그리곤 어두워진 채로 끝내, 곪은 상처는 터지며 암울한 이야기로 끝을 맞이한다. <잘자, 푼푼>의 이야기의 첫 시작은 우울하지만 여전히 희망적인 반면, 결말은 잔인하면서도 냉소적이다. 이 대조적인 시작과 끝은 두 이야기를 서로 상충시킨다.

  <잘자, 푼푼>은 작가 아사노 이니오가 가장 잘하는 것들로 이뤄져 있다. 그가 그려낸 작품들은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또 직설적이다. 평범한 만화들처럼 주인공이 어두운 상황을 극복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현실의 사람처럼, 저마다의 아픔을 품고 그저 살아간다. <소라닌>에서는 음악을 좋아하지만 평범한 재능을 가진 주인공이 실패와 도전을 반복하는 이야기를, <바닷가 소녀>에서는 중학생들의 아픈 첫사랑 이야기를 그려냈다. <잘자 푼푼>의 주인공 푼푼은 초등학생에서 성인이 되어가며 겪는 사건들이 성장통이 되어 인물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들이 가지고 있는 결핍은 독자들 중에서도 하나쯤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것들로 이뤄져 있다. 아사노 이니오는 그런 결핍들을 꾸밈없이 그려냈다.

  독특하게도 주인공 푼푼은 단순한 형태의 새 캐릭터로 표현된다. 작 중 다른 인물들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보통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또 주인공이 한 말은 독자들에게 보여지지 않는다. 그저 주변 인물들의 반응에서 푼푼이 한 말을 유추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 독특한 표현 방법은 작가 아사노 이니오의 인터뷰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그는 얼굴 생김새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누구나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푼푼이란 독자가 자기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아바타, 즉 분신인 것이다.

  어느 누군가는 아사노 이니오의 만화들은 염세주의에 찌들은 비관론자의 만화라고 하기도 한다. 자신의 우울감을 배설하고 세상은 불합리하다며 울부짖는 루저라고 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의 작품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작품 전반에 깔린 어두운 분위기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계기가 되어 앞으로를 살아가는 용기를 얻길 바란다.

필진이미지

김민재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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