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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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가 직장에서 사서 고생하는 이유 : <사서고생!>

사서고생!(글, 그림 몽실/네이버웹툰 연재)리뷰

2024-06-19 최기현

은수가 직장에서 고생하는 이유 : <사서고생!>

  많은 고등학생이 좋은 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을 꿈꾼다. 대학생의 소원은 무엇일까?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대기업 취업을 꿈꾼다. 물론 취업이 끝이 아니다. 천신만고 끝에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막상 직장인이 되어서도 고민은 계속된다. 취업의 기쁨은 한두 달이 채 못 간다.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지 고민한다. 지금까지 적은 내용이 만약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린다면 웹툰 <사서고생!>에 충분히 몰입 가능하다.

  직장에서 능력 있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꽤 기분 좋은 일이다. 능력 있다는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일을 잘한다는 뜻이다.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맡겨진 업무를 문제없이 잘 처리하면서 일 센스도 있어야 한다. 거기에 더해 성과를 내면서 인간관계도 좋다. 다른 사람도 배려하면서 두루 사랑받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직장 생리상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 일이 더 몰린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속담은 있지만 사실 그다지 원하는 바는 아니다. 웹툰 <사서고생!>의 주인공은 이런 설명에 딱 맞는, 직장에 다니는 20대 초반의 여성 안은수이다. 은수는 직장에서 왜 사서 고생을 하는 것일까? 이 질문을 던지면서 웹툰을 읽으면 웹툰이 주는 재미를 조금 더 느낄 수 있다.

  <미생>, <상남자>, <재벌집 막내아들>, <운명을 보는 회사원> 등 직장생활을 다룬 웹툰이 그동안 여러 편 있었다. 주인공이 회귀하거나 먼치킨 캐릭터로서 살아가는 판타지 직장생활 이야기도 있었고, 판타지는 아니지만 <미생>처럼 현실을 그대로 담아낸 웹툰도 있었다. 웹툰 <사서고생!>은 판타지 직장생활은 아니다. 20대 직장인이 충분히 겪을만한 이야기를 마치 독자 자신의 고민처럼 느낄 수 있는 웹툰이다. 주인공 은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 가지 않고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똑 부러지게 일을 잘하지만 결코 회빙환이나 먼치킨 캐릭터는 아니다. 직장에 취업한 지 몇 년 지나서 일이 조금 손에 익을 법한 시점에서 겪는 직장인의 고민이 여기에 담겨 있다. 주인공의 고민은 그 시기 직장인이 충분히 겪을만한 결핍과 연결되어 있다. 먼저 경제적인 결핍을 느낀다. 은수네 집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지만 단란한 가족이었다. 그러다가 사기를 당하면서 가세는 더욱 기운다. 경제적인 결핍으로 인해 주인공의 꿈과 현실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두 번째 결핍은 직장 내 보이지 않는 처우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기업에 취업한 은수는 고졸 공채로 입사한 지원직군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입사한 일반직군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직군에 비해 급여의 차이는 물론 승진할 수 있는 한계도 명확하다. 호칭과 회사 내 대우는 구분되어 있다. 일반직군 신입직원 해영의 실수로 인해 해영과 엮이면서 은수는 해영이 일을 잘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정작 해영의 주변 사람들에게 족보 꼬이게 하지 말라는 말까지 들으며 차별을 겪는다.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은 어느 곳에나 있다. 직장 보이지 않는 처우와 차별은 은수를 힘들게 한다.

  <사서고생!>20대 직장인 더 나아가 직장인 누구나 현실적으로 고민하는 지점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20대 직장인의 일과 우정, 사랑에 관한 진솔한 고민은 다른 웹툰에서 보지 못했던 공감을 독자에게 더해준다. 공감의 결과로 댓글 창에서는 독자들의 현실적인 조언이 이어진다. 특히 해영과 얽힌 일에서는 굳이 주인공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는 의견과 신입사원이니 도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팽팽하다. 거기에 <사서고생!>은 한 사건을 중심에 두고 주인공의 시점과 다른 사람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내기 때문에 등장인물의 심리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에서 장그래가 바둑을 복기하듯 그날 있었던 사건을 여러 사람의 입장에서 복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직장생활은 여러 사람의 상호작용과 예상치 못한 변수가 만들어내는 사건의 연속이기 때문에 <사서고생>의 스토리와 연출은 직장인의 고민을 풀어내는 데 보다 효과적으로 접근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직장생활은 궁극적으로 돈으로 귀결된다. 35화 전후에 나오는 주인공의 독백은 여기에 결정타를 날린다.

  ‘취업하기 전에도, 취업 후에도 여전히 돈은 문제다. 쓸 수나 있을지도 모르는 학비, 그다음은 가늠도 안 되는 결혼 자금, 내 집 마련은 멀게만 느껴지고, 벌써부터 걱정해야만 하는 노후까지. 숨쉬기만 해도 돈 나가는 일투성이인 인생, 미래를 내다볼수록 더해지기만 하는 압박감. 최소한 남들만큼은 살아보겠다며 아등바등 스펙을 쌓고, 몸값을 올리고. 머리 아파.’ 돈을 내는 쪽은 갑, 돈을 받는 쪽은 을이다. 돈을 지불해서 사는 것은 상품이다. 상대를 막 대할 수 있는 권한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수모를 겪고도 을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킨다. 오늘도 무사히 하루가 지나기를 바라면서.

  은수는 직장에서 왜 사서 고생을 하면서까지 힘들게 살아갈까? 웹툰을 읽으며 떠오른 키워드는 좋은 사람이라는 키워드였다. 직장에서 은수가 사서 고생을 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이유는 은수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책임감 있게 처리하면서 동시에 인간미를 잃지 않는다. 좋은 사람은 상대를 배려한다. 환경에서 주어지는 위치에서 사람을 무시하지 않고 상대가 더 잘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직장에서 좋은 사람이 되기는 정말 어렵다. 배려하면 고마운 줄 알아야 하는데 호구로 보는 사람도 있다. 선한 의도로 타인을 도와줄 때도 어느 정도까지 도와줘야 할지 선을 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고 포기할 것은 아니다. ‘좋은 사람은수의 선한 행동은 웹툰이 진행되면서 조금씩 빛을 발한다.

  누구나 직장에서 좋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되기도 어렵다. 다만 은수가 직장에서 고군분투하는 것을 보면서 주변 사람이 힘을 얻는다면 이는 결코 의미 없는 행동은 아니다. 웹툰 속 은수가 앞으로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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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현

문화예술 분야에서 일하며 퇴근 후에 만화를 읽고 글을 씁니다. 공연, 전시를 관람하는 것과 만화 정책에 관심이 많습니다. 최근 글로는 <만화산업 중장기 계획(5차)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과제들>(2022 대한민국 만화평론공모전 우수상),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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