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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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의 퀴어함

징크스 (글, 그림 밍과 / 레진코믹스) 리뷰

2024-08-06 이용건

BL의 퀴어함

0. BL과 퀴어

출처: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BL'boys love'의 줄임말로 네이버의 시사상식사전에 따르면(놀랍게도 BL은 시사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알아야 하는 용어이다. BL을 몰랐다면 시사 상식이 부족하다고 평가해도 괜찮다는 뜻일까?) "남성 간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소설, 만화 등을 통칭하는 장르"로서, "과거에는 음지 문화나 마니아층의 전유물로만 여겨졌으나 최근 웹툰, 웹소설을 넘어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장르로 확대"되고 있다. BL이 퀴어물이 아닌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다음 문장을 보자.

  "BL은 실제 성소수자들이 겪는 편견이나 혐오가 아닌 남자 주인공들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6599830&cid=43667&categoryId=43667)

  그러니까 BL은 인권 운동을 하지 않는다. BL(주인)(BL에서 은 삽입하는 사람, ‘는 삽입 당하는 사람이다. 너무나 부족한 설명이지만, 대략적인 이해를 위해 간략하게 적는다.)은 서울시청의 퀴어 퍼레이드 광장 사용 불허 판정을 지탄하지도 않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인권운동가 공'을 생각해 보라인권 운동을 폄하하는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인권 운동가분들과 독자분들이 이해해 줄 것이라 믿는다) BL의 문법에서 중요한 것은, 성소수자들이 실제 세계에서 겪는 차별이나 혐오가 아니라 주인공들이, 그리고 그들의 조합이 (특히나 성적으로) 매력 여부이다.

  BL은 충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페미니즘 이론을 통해 설명된 바가 있다. 이성애 여성을 위한 로맨틱 서사, 이성애 가부장제로부터 완전히 탈각될 수 있는 통로, 등장인물과 분리되어 오직 즐기기만 하면 되는 관음증적 욕망의 충족 등. 사실 BL이 페미니즘에 따라 정당화 여부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이 주 소비층인 장르를 통해 여성의 욕망을 해명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는 충분한 의의를 가질 것이다. 페미니즘과 BL은 양립가능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친화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퀴어와 BL이다. BL은 퀴어물인가? 반대로 게이 퀴어물은 BL인가? BL의 주인공들이 기이한(queer) 존재인가?

1. 가학적인 BL - <징크스>

레진코믹스에서 연재중인 <징크스> : 주재경, : 김단 (출처: 레진코믹스)

  레진코믹스에서 연재 중인 웹툰 <징크스>는 전형적인 BL 서사이다. 성공한 격투기 선수로서 잘생긴 외모와 부유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인 주재경은 경기 전날 섹스를 해야하는 징크스를 겪고 있다. 주재경은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가난한 물리치료사 김단과 징크스를 해소하기 위한 섹스를 한 후에, 자신의 물리치료사 겸 (섹스) 파트너가 되라는 제안을 한다. 사실 이는 BL에서만 허락되는 전개이다. 가령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수가 여자 주인공과 동일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실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넘어가줬으면 한다.) 월급을 받고 주기적으로 섹스를 해달라는 일종의 성매매를 제안하는 서사는 기획 단계에서 통과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BL에서 이는 문제되지 않는다. 1,400만 원을 월급으로 받는 대가로 언제 어디서든 주재경이 원할 때 섹스를 해줘야 한다는 조건을 김단이 수용하는 것은 로맨틱한 청혼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주재경이 섹스를 할 때 드러내는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성향은 주재 경을 더욱 매력적인 으로 만든다. 주재경의 가학적인 성향에 대해 수동적으로만 반응하는 김단의 욕망으로부터, 아주 오래된 문젯거리인 마조히즘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주재경과 김단의 섹스에서 각각이 수행하는 역할은 동등한 의사결정권자로서 민주적이고 올바르게 결정된 것이 아니다. 주재경은 김단을 돈을 주고 샀기때문에 어쩔 수 없이 김단은 그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 그런데 이는 BL에서 흔히 보이는 설정이다. ''는 섹스를 하고 싶어 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또는 상황 때문에공과의 섹스를 응해야 하는 상황은, 서로가 원해서 하는 섹스보다 더 로맨틱한 것으로, 또는 더 성적으로 매력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마조히즘의 모순적 구조는 마조히즘적 주체가 사디스트보다 주체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맞고자 하는 사람은 때리고자 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때려도 된다고 허락해야 하고, 마조히스트의 허락 없이 사디스트는 마조히스트를 건드릴 수조차 없다. 이것은 다소 특이한 취향으로 여겨지긴 하지만, 상호 합의 간에 이루어지는 건전한 섹스 방법이다. 물론 건전할수록 성적 욕망의 충족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때리는 것을 허락받는 사디스트는 강제적으로 당하는 것을 원하는마조히스트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강간과 섹스의 중간 어디쯤을 향휴하고자 하는 빻은욕망은 BL을 통해 현실화된다. 김단은 주재경과의 섹스를 거부할 수도, 원하지도 않는 상황이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고, 그것을 독자들은 은밀하게 관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BL의 독자들이 마조히스트이거나, 마조히즘을 즐긴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실제로 그러한 경험을 겪는 것과 자신과 완전히 분리된 등장인물이 그러한 경험을 겪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며, 특히 BL의 주 소비층이 여성이라는 점을 상기해 볼 때 그러한 안전한 거리감이 BL 소비의 한 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징크스>의 독자들이 즐기고 있는 욕망, 즉 김단이 강제적으로 섹스를 '당하는' 것을 즐기는 관음증적 욕망 또한 충분히 기이하다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다시 0'. BL의 퀴어

BL 드라마로서 성공한 시멘틱 에러’ (출처: 왓챠)

  그러나 BL을 향유하는 소비자들은 대체로 BL과 퀴어를 명확하게 분리하길 원하는 듯싶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 BL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게이라고, 특히 성소수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BL의 세계관 속에 진입하는 순간 남성과 여성의 사랑은 없고, 오직 남성과 남성의 사랑만 존재한다. 그들은 적어도 BL의 문법 속에서는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오싹해지거나 낯선 친숙함이 야기되는 기이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BL에서 기이한 존재들은 남성과 여성의 사랑이 가능할 것이라 믿거나, 이를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BL에서 주인공들의 사랑에 있어서 장애물은 그들의 성별이 아니라 까칠하거나 싸이코같은 의 성격이다. 그러나 이것이 주인공들 나아가 독자들이 퀴어 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박상영 작가의 책을 산 독자가 ‘BL인줄 알았는데 퀴어물이다.’라는 볼멘소리를 내뱉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성소수자들이 이성애 규범적 사회에서 겪는 차별과 혐오의 경험을 돈과 시간을 들여 소비하는 것은 소수자에 대한 정치적 감각을 고양시키지만, 정치적 감각이 고양된 정확히 그만큼 지루하고 피곤하기 때문이다. 또는 꼴리지않거나. 물론 그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사실은 나중 문제다. 그러나 나는 이 글을 통해 퀴어하다는 것은 단순히 성별 정체성만으로 결정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었다. BL이 가지고 있는 욕망의 구조는 소수자들이 이성애 규범 사회에서 겪는 차별과 혐오를 지적하는 것만큼, 아니 오히려 그것보다 훨씬 퀴어하며, 그러한 모순적 욕망이 소수자들의 욕망을 훨씬 더 잘 설명한다고 믿고 있다. 혹은 그래야만 할 수도 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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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건

만화평론가
2023 대한민국 만화평론공모전 대상 수상
2022 대한민국 만화평론공모전 최우수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