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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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가 아닌 ‘다 같이’ 레벨 업

디펜스 게임의 폭군이 되었다(글 하정, 그림 굥, 원작 류운가람 / 네이버웹툰 연재) 리뷰

2024-08-16 이성호

나 혼자가 아닌 다 같이레벨 업

  나 혼자 하는 것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나 혼자 레벨 업’, ‘나 혼자 만렙 뉴비’, ‘나 혼자 네크로맨서등등 이름에 들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흔히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이라고 불리는 것들에서 주인공이 단연 돋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부조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치트능력을 갖춘 채 문제를 거침없이 해결해 나가는 장면은 카타르시스로 범벅되어 있어 보면 볼수록 도파민에 절여지는 느낌이 든다. 위기에 처하고 주변 인물이 위기에 관해서 설명해 주어도 주인공의 작중 역할을 생각해 보면, 걱정이 된다기보다는 어떤 방식으로 악인을 물리칠지 하는 기대만 남게 된다. 대부분의 회빙환 스토리가 도파민 중독과 같은 스토리가 수요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온라인 세계가 후광 반사 효과를 바탕으로 한 대리 만족의 장이 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와중에 회빙환에 게임을 더한 소재를 가지면서도 기존의 플롯을 벗어나는 방식의 스토리가 있다면 언제든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디펜스 게임의 폭군이 되었다>(이하 <폭군>)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폭군>은 다른 작품과 다르게 가상 현실을 바탕으로 한 RPG도 아니고, 현실에 게임이 덧입혀지는 것도 아니다. 디펜스 게임 속 인물에게 빙의하여 정보 말고는 어떤 치트 능력도 없이 웨이브를 헤쳐 나가야 한다. 정보는 다른 회빙환 작품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차별점이기도 하지만, <폭군>에서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끊임없이 발생하기에 정보의 중요성은 희석되고, 오로지 주인공의 전략과 확률에 의해서 매 순간 생사의 선을 넘는다. 등장인물이 중요해 보이든 중요해 보이지 않든 언제든 죽을 수 있다. 그래서 등장인물에게 애정을 주기 쉽지 않다. 애정을 주었다가 갑자기 등장인물이 죽거나 리타이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쥬피터와 같은 흥미로운 캐릭터도 황금광특성으로 갑자기 작품에서 빠질 수도 있는 것이 <폭군>이다. 이러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오히려 작품을 더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여서 독자들은 <폭군>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게임의 오펜스 & 디펜스 식의 구성과 개성 있는 NPC 등 전체적으로 조밀한 구성들이 <폭군> 스토리의 탄탄함을 보여주지만,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게임 클리어 과정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다 같이 스테이지를 넘기는 과정에서 다른 캐릭터들의 성장과 개성이 두드러진다. 물론 인물 하나하나에 서사를 부여하기는 쉽지 않다. 인물 하나하나에 서사를 부여하고 작품 끝까지 끌고 가다 보면 스토리가 늘어지고 플롯이 복잡해져서 설정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폭군>에서는 에반젤린, 쥬피터, 쥬피터 주니어 등의 인물들에 하나하나 서사를 입혀나가며 인원을 구성하는 데 공을 들인다.

  에반젤린의 경우 몬스터를 막는 크로스 가문의 마지막 후손이다. 샤를 크로스는 괴물을 막다가 아내를 잃고 딸인 에반젤린 마저 잃을 수 없어 에반젤린을 기사 학교로 보낸다. 에반젤린은 어머니를 잃은 것에 대해 아버지를 원망하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아버지는 고향을 지키다 죽고 그 자신도 결국 고향을 지키게 된다. SSR급 인물들은 특히 자신이 가진 과거의 상처를 바탕으로 영입되기에 서사에 정당성이 부여된다. 그리고 이러한 서사는 용병 영입 이후에도 인물들이 스킬을 얻거나 정신적으로 성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 서사에 공을 들인 만큼 인물이 성장할 여지가 늘어나는 구조로 인물의 성격과 게임적 능력을 연결 짓는 것이다. 서사가 곧 능력으로 연결되는 것은 게임을 소재로 했기 때문에 가능한 방식이다. 다시 말해 서사가 풍부하기 위해선 여러 인물이 필요하므로 회빙환과 같은 주인공 위주의 서사에도 불구하고 다른 인물들이 특색있게 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N등급의 디온 용병단에게도 조금씩 서사를 부여해 주고, 피리 부는 남자와 같은 빌런에게도 서사를 부여해 준다. 그 외에도 괴물이 된 호수왕국 시민들의 암시적인 말을 빌려 호수왕국의 진실을 드러내는 방식은 다양한 서술 기법을 통해 진실을 드러내 작품의 서사를 풍부하게 만든다. 앞으로 호위 기사인 루카스나 에버블랙 황가, 호수왕국 등의 스토리도 함께 진행되며 서사는 더욱 복잡해지겠지만 게임의 본질인 스테이지 클리어를 통해 스토리의 중심을 잡아가는 것도 게임이라는 소재를 잘 활용한 것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다 같이성장하지 않으면 게임은 클리어할 수 없다. 애쉬의 지휘관 특성상 더욱 그러하기도 하지만 회빙환에서 다 같이성장해야만 하는 서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보통 주인공이 먼저 성장한 뒤에 나머지 인원을 이끌어주는 것이 기본 서사이기 때문이다. ‘나 혼자 레벨 업이나 나 혼자 네크로맨서의 경우 본인이 수하들을 거느리는 것은 모두 죽어도 되는 몬스터에 한하지만, <폭군>은 한 명 한 명이 게임 캐릭터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기에 한 명 한 명 소중히 대할 수밖에 없다. 작품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애쉬가 어떤 상황에서든 그 누구도 잃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병사 단 한 명의 존재도 아낀다는 점에서 전문 게임 BJ 고전덕후로서의 개성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러한 아이러니함이 게임과 현실 사이의 윤리성을 조율한다. 애쉬는 캐릭터를 게임 클리어를 위한 존재로 보지 않고 하나의 같은 인간으로 본다. 이를 통해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버려야 하는 전쟁 속 생명의 무게가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게 다뤄진다. ‘다 같이라는 일념 아래 게임 세계를 버텨 나가는 게임 속 인물의 의지는 오히려 세계 속에서 더욱 살아야 할 의미가 있는 캐릭터들보다 처절하게 살아가는 것은 인상 깊을 수 밖에 없다.

  웹소설 원작이므로 읽는다면 그 진실의 끝을 알 수 있겠지만 <폭군>은 웹툰으로도 감정 표현을 잘한 편이어서 서사가 궁금하더라도 꾹 참고 기다릴 수 있을 만큼 미디어믹스가 괜찮은 편이다. 소재 선정부터 설정 구성, 캐릭터 등 다양한 면에서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어서 회빙환도 좋은 소재로 쓰일 수 있다는 방증이 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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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호

22년 만화평론공모전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