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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중독자의 가족은 어떻게 고통받는가?

도박중독자의 가족 (글, 그림 : 이하진/카카오웹툰)

2024-08-19 최기현

도박중독자의 가족은 어떻게 고통받는가?

우리는 인생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가장 큰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그 고통은 우리의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쇼펜하우어-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생과 고통, 욕망 등에 관하여 인간 존재 자체가 비극이며 모든 개인은 고통과 실패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개인의 실패는 인생의 본질적 고통을 드러내며 단순히 그 한 사람에게 한정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까운 사람에게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개인의 실패가 가까운 가족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도박중독자의 가족>은 주식 중독에 빠진 가족 때문에 고통받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다. 제목에서 독자가 획득하는 키워드는 도박, ‘중독()’, ‘가족’, 크게 3가지이다. 도박 중독에 빠진 한 사람 때문에 가족 구성원 모두가 어떤 어려움을 겪는 이야기일 것이라 충분히 유추가 가능하다. 그러면서도 독은 도박이나 마약에 빠진 사람이 겪는 증상이며, 도박 중독자는 영화 <타짜>나 아니면 카지노나 노름판에서 볼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도박에 관한 이야기는 자신과 상관없을 거라 인식한다. 그러나 <도박중독자의 가족>공동 의존증이란 용어를 사용하여 도박 중독의 개념을 주식으로 확장하고, 주식 투자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한 사람 때문에 가족 전체가 고통받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공동 의존증은 도박 중독자의 가족들이 많이 걸리는 병이다. 도박 중독이면 슬롯머신이나 카드, 화투 같은 도박뿐만 아니라, 주식 중독은 도박 중독의 일종으로 도박 중독자 중 가장 학력이 높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부류이다. 또한 도박을 한다고 모두 중독이 되지는 않지만 그 중 큰돈을 벌어본 사람은 중독이 되기 쉽다. 큰돈을 따면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나오는데 이때의 쾌락은 세상 어떤 것보다 강력하여 뇌는 무의식적으로 이 쾌락을 좋고 자기 합리화를 하고 온갖 이유를 대며 중독 행위를 하려고 한다. 그렇게 지속된 중독행위로 일상에 지장이 생기고 만다.(주식 중독에 관한 개념 설명은 37~42쪽 요약. 만화에 등장하는 심리상담사는 독자의 이해를 돕고 중립적인 방향에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다.)

  주인공 남편의 셋째 동생은 주식 투자에 실패하며 주인공 가정의 돈뿐만 아니라 어머니, 둘째, 막내 등 가족이 투자한 돈 대부분을 날린다. 장이 좋지 않아서라고, 운이 나빠서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선물, 옵션에 손을 대며 점점 수렁에 빠져간다. 계속 빚이 늘어가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주인공은 심리상담사의 조언에 따라 지속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셋째의 요구를 무시하고, 주인공 내외의 결정에 시어머니를 비롯한 시댁 식구들은 주인공(며느리)에게 서운해한다. 자신과 가정을 지키면서도 시댁에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며느리의 진심은 독자에게만 공유되기 때문에 시어머니는 전혀 알 수도, 알아줄 생각도 없다. 도박중독자의 가족이 느끼는 어려움을 담은 만화이지만 지금까지 나온 작품들과 다른 점은 가족 안에서 주어진 역할과 거기에서 비롯된 등장인물의 감정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는 데 있다.

  만화의 표지는 주인공과 남편, 자녀가 그려져 있다. 남편의 입 모양과 손동작이 주목할 만하다. 굳게 다문 입과 아내 등에 얹은 팔에서 단호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가정을 지키려는 가장의 역할과 가족을 지키려는 맏형의 역할 사이에서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고자 노력하지만 조금 더 가정에 충실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다만 맏형이라는 역할 때문에 어머니와 셋째 동생을 무조건 외면할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에서 양쪽의 상황을 이해하는 독자 입장에서는 조금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독자에게 더 답답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시어머니는 셋째 아들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을 가진다. 가족인 자신들을 도와주지 않는 아들(남편)과 자기 아들을 조종하고 있다고 믿는 며느리에게 서운한 감정을 내비친다. 시어머니의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모습은 며느리와 동일 선상에 서 있는 독자와 거리를 만들어내며 생각과 행동의 시정이 필요한 존재가 되고 만다. 남편의 동생이자 시어머니의 아들인 셋째는 주식투자의 실패로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보란 듯이 성공해서 자신을 실패자로 생각하는 가족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마음을 동시에 가진다. 또 한편으로는 가족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 물론 이 마음 때문에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빠지는 결과를 맞는다.

  등장인물 간 갈등은 우리나라 가부장적 문화에서 기인한다. 미국이나 영국 등 서양에서도 주식으로 재산을 날린 사람들, 주식 중독자가 많이 있겠지만 이 만화에서처럼 가족 구성원이 공동 의존증으로 고통받을지 모르겠다. 며느리의 말을 객관적으로 듣지 않고 마냥 서운하게만 느끼며 자식을 우선하는 모습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을 것이라 추측한다. 수신지 작가의 <며느라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가부장적 문화는 대다수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 패러다임이 작동하며, 작품에서 다양한 에피소드의 형태로 재현된다.

  한국예탁결제원이 202312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식 소유자 수 1,416만 명으로 국민 3명에 1명꼴로 주식투자를 하고 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주식 투자를 하고 있으며 주식 중독이 아주 먼 나라 이야기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작가는 우리나라 가부장적 패러다임의 부정적인 모습을 지적하기 위해, 주어진 역할 사이에서 갈등하는 등장인물의 감정을 입체적으로 담아 메시지를 전달한다. 만약 독자 자신이 며느리의 입장이라면, 남편의 입장이라면, 또는 시어머니나 셋째의 입장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현실에서의 입장과 경험, 평소 가지고 있던 철학에 따라 각각 다른 선택을 할 것이다. <도박중독자의 가족>은 다소 극단적인 상황이지만 우리 주변에서 충분히 만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렸고 그 안에 담긴 문제점과 고민을 작품으로 공론화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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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현

문화예술 분야에서 일하며 퇴근 후에 만화를 읽고 글을 씁니다. 공연, 전시를 관람하는 것과 만화 정책에 관심이 많습니다. 최근 글로는 <만화산업 중장기 계획(5차)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과제들>(2022 대한민국 만화평론공모전 우수상),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