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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계급 사회의 축소판 <피라미드 게임>

피라미드 게임(글, 그림 : 달꼬냑/네이버 웹툰) 리뷰

2024-08-27 김진철

새로운 계급 사회의 축소판 <피라미드 게임> 

  우리는 누구나 평등하다고 하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하지만 정말 평등한 사회인가를 생각해 보면 물음표가 떠오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신분적 계급은 이미 100여 년 전에 사라졌지만, 다양한 이유로 각양각색의 보이지 않는 계급은 여전히 공고하게 남아있다. 경제적 부유함에 따라, 권력의 힘에 따라 형성되는 서열화는 우리 사회의 암울한 그림자이다.

  웹툰 <피라미드 게임>은 사랑고등학교 2학년 5반에서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 5교시 HR 시간에 진행되는 피라미드 게임을 통해 계급 사회의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반 아이들은 인기투표를 실시해 각자의 등급을 정한 뒤 등급이 높을수록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고, 등급이 낮을수록 다른 아이들의 폭언과 폭행을 감당해야 한다. 주인공 성수지는 사랑고등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면서 피라미드 게임 속으로 던져진다. 

1. 약점을 이용하기 VS 진정성 있게 다가가기

  성수지는 사랑고등학교로 전학을 오자마자 불행하게도 피라미드 게임의 먹잇감이 되고 만다. 그런 상황에서 성수지의 선택은 게임의 방식에 순응하여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의 판을 엎어버리는 것이었다. 다만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한 이유는 정의감에 의한 것이 아니다. F등급을 받아 반에서 공식적으로 왕따를 당하게 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목적으로 피라미드 게임을 없애려고 한다. 아이들의 표 분배가 공고해진 상황에서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한 노력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성수지의 선택은 자신의 안위를 위한 선택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또한 철저히 다른 학생들의 약점을 가지고 협상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피라미드 게임을 없애는 데 동참한 명자은은 성수지와는 전혀 반대 성향의 캐릭터이다. 그녀는 게임으로 인해 왕따를 당하면서도 그것을 그냥 받아들여 왔다. 이 게임이 자신 때문에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만 견디면 다른 학생들이 피해를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학생들의 약점을 이용하는 성수지의 방식을 좋아하지 않고, 서툴더라도 진심으로 다가서는 방식을 선호한다.

  초반에는 학생들의 약점을 이용하는 성수지의 방식이 통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게임의 주동자인 백하린에 의해 모두 파훼 되고 만다. 그런데 오히려 명자은의 진심에 감화되는 학생들이 생기면서 게임을 없애는데 도움을 주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게 된다.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하는 성수지의 방식과 진정성 있게 다가서는 명자은의 방식. 웹툰에서는 진심을 다한 진정성이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현실에서도 과연 통할 수 있을까. 

2. 게임의 방관자들

  2학년 5반의 피라미드 게임은 강제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다. 게임은 모든 아이들의 동의에 의해 시작되었다. 각 등급의 권리와 의무 역시 누군가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동의를 거쳤다. 그렇게 결정된 등급에 따른 차별을 반 아이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 결정으로 피해를 보는 대상이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F등급이 되는 아이는 거의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F등급이 아닌 아이들은 현상 유지만 하면 불편함이 없었다. 그렇게 반 아이들은 게임이 진행될수록 방관자 역할에 익숙해졌다. 물론 임예림처럼 게임에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결국은 다수의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었고, 그들도 역시 방관자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게임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오히려 게임의 시스템에 포로가 되고 만다. 등급을 높이거나 유지하기 위해 항상 표를 신경 쓰게 되었고, 반 친구들과의 관계도 표를 주고받을 수 있는가를 중요하게 여기게 되고 말았다.

  게임이 자연스럽게 뿌리내리기까지 또 다른 방관자는 교사들이다. 이사장 딸인 백하린의 말을 모두 들어주면서 자신의 비리를 감추는 이사장, 자신의 욕망만 채우려고 하는 담임, 아이들의 괴롭힘을 장난으로 치부해 버리는 교사들은 게임의 조력자들이다. 2학년 5반만의 별도의 교실, CCTV의 사각지대, 이사장실에 자주 드나드는 백하린 등 의심스러운 점들을 애써 무시하면서 다른 학교의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눈을 돌렸다. 현실을 폭로했다가는 자신의 자리가 위태롭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게임의 폐해를 막을 권한이 있었음에도 교사들은 나서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피라미드도 어쩌면 방관자가 있기에 유지되는 것은 아닐까 한다. 피라미드의 상위층에 있는 이들은 피라미드가 무너지지 않도록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어느덧 피라미드에 익숙해진 우리는 당신도 노력하면 피라미드의 상위층에 올라갈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 피라미드의 방관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3. 무너지는 피라미드 게임

  계속될 것 같았던 2학년 5반의 피라미드 게임은 결국 무너지고 만다. 성수지의 계획과 반 아이들의 변화, 깨어있는 교사가 서로 도와 만들어낸 기적 같은 일이다. 하지만 결국 피라미드 게임을 없앨 수 있었던 것은 대중의 힘이다. 대중이 무관심했다면 피라미드 게임의 부조리가 폭로되었어도 그냥 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권력의 정점에 있던 백하린의 집안도 대중의 여론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대중들의 진실을 바라보는 힘이 피라미드를 무너뜨리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렇듯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중의 힘은 부조리한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러니 대중들이 옳은 일에 호응을 하고 성원을 보내면 피라미드 게임과 같은 일들을 단죄할 수 있다. 하지만 대중들이 잘못된 일에 무관심하거나 박수를 보내게 되면 사회 곳곳에서 또 다른 피라미드가 세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웹툰 <피라미드 게임>은 학교에서 사회의 피라미드 게임을 재현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 피라미드 게임과 같은 일을 가장 일찍 경험하는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학교이다. 지금 우리나라 교육에서는 성적으로 전국의 학생을 서열화한다. 높은 점수를 받을수록 학교에서의 대우가 달라진다. 상위등급자가 되는 것이다. 하위권 학생들은 학교에서 부적응자로 낙인찍히거나 투명인간처럼 지내기도 한다. 상위권 학생들의 생기부 활동을 위해 들러리가 되기도 한다. 이런 경험을 한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면 어떻게 될까. 피라미드 게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회가 피라미드에 점령이 되었더라도 오히려 학교에서는 사회의 피라미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재력, 권력 등의 차이는 어쩔 수 없더라도 그로 인해 상대방이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점. 그것이 진정한 민주사회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시민 의식이기 때문이다.

필진이미지

김진철

동화작가, 만화평론가
《낭이와 타니의 시간여행》, 《잔소리 주머니》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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