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이자 가해자였던 우리의 이야기
최근에 시로야기 슈고의 『내 딸이 — 왕따 가해자입니다』(빈페이지, 2024)을 읽었다. 이 텍스트는 학교나 학원 또는 특정 집단에서 다뤄지는 ‘따돌림’에 대해 다룬다. 동시대의 대부분의 텍스트가 왕따로 인한 피해자의 입장을 주로 서술했다면, 이 작품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입장을 무게감 있게 다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작품에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입장을 다루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가족을 통해서 부조리를 이야기 방식이 있다. 마바 지하루, 마바 다이키, 마바 고하루는 한 가족이다. ‘고하루’는 초등학교 5학년 학생으로 같은 반 친구인 마나에게 따돌림을 받는다. 이 사실을 알게 고하루의 부모 지하루와 다이키는 분노하게 되고 마나와 마나 부모를 찾아가 죄(罪)을 묻는다. 가해자 입장에 선 가족으로는 초등학교 5학년이며 고하루와 같은 반인 아카기 마나와 그의 엄마 아카기 가나코, 아빠 아카기 유스케가 등장한다. 이 가족의 특징은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인 가해자 마나가 등장한다는 것 외에, 그의 엄마 가나코가 학창 시절 왕따 피해자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딸이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누구보다도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었던 인물이 바로 가나코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텍스트의 작가는 이런 설정을 통해 ‘가해자’의 입장을 도드라지게 하고, 왕따 가해자의 ‘죄’를 어떻게 용서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한다. “용서하지 못해도 그 마음이 잘못된 게 아니란다.”(167쪽)라는 구절처럼 ‘용서’ 받지 못하는 가해자의 심정에 대해서도 논한다는 점에서 생각할 것들을 제공한다. 흔히 용서는 선한 것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주는 행위가 좋은 것으로 인식되는 믿음이 있다. 그러나 이 텍스트는 자비를 구하지 않는다. 죄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운명에 대해 말한다. 다음의 대사는 이러한 입장을 잘 서술해 놓는다.
다른 곳으로 도망친들 변하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왕따 가해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괴롭힘당한 사람의 상처는 사라지지 않으니까. 마나는 고하루의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없다.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야만 한다. 고하루가 용서해 주지 않아도 이 세상 그 누구도 용서해 주지 않더라도 혼자 두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함께 죗값을 짊어지고 살아갈 것이다.(172~176쪽)
160~161쪽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입장을 다루는 두 번째 형식적 방법은 바로 ‘색’이다. 이 작품은 피해자 가족을 ‘붉은색’ 계열로, 가해자 가족을 ‘초록색’ 계열로 표현한다. 아무래도 작가는 이런 의도적인 연출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시선을 통해 명징하게 드러내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시선이 무너지는 순간에 있다. 가해자의 부모 가나코가 어린 시절 왕따 피해자였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고하루를 따돌렸던 마나 역시 왕따를 시켰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이나 같은 반 친구들에게 질타를 받으니 말이다. 새로운 방식으로 가해자가 피해자가 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하지만 이 괴롭힘은 마나에게만 작동되지 않는다. 그의 가족 전체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이들 가족은 결국 마을을 떠나게 된다. 이러한 배경도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시선이 애매모호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니 작가가 ‘붉은색’ 계열과 ‘초록색“ 계열로 나누고자 한 것이 궁극적으로는 의미 없다는 것을 말해줌과 동시에, 당신도 누군가에게는 ’가해자‘였을 수도 있다는 ‘불안’과 ‘경각심’을 품게 한다.
169쪽
이 텍스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학부모 회의’ 때, 학부모들이 가해자 부모에게 격앙된 목소리로 몰아붙이는 장면이다. 말풍선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그 사과를 믿어도 되는 건가요? 어차피 또 같은 일을 지를 텐데요.”
“왕따 가해자는 이제 다른 아이들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해 주세요. 나쁜 물만 든다고요.”
“우리 유가 불쌍해요…. 얼마나 벌벌 떨면서 지냈을지….”
“부모로서 인지하지 못했습니까? 그렇게 심한 짓을 저질렀는데요.”
“가정에서는 대체 어떻게 교육하고 있는 거죠?”
“입 다물고 있지 말고 무슨 말이라도 해 보지 그래?”
“아무 말이나 해봐”
이 말을 듣고 가해자 부모인 가나코는 용서를 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고하루를 괴롭혔던 마나 역시 고하루를 왕따 시켰다는 이유로, 같은 반 학생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가나코는 “딸이 괴롭힘당하는 입장이 되어서야 겨우 사건의 중대성을 깨달은 못난 부모”라고 말한다. 이 목소리를 듣고 회의에 찾아온 학부모들은 거세게 반발한다. 하지만 이는 한 반에 있는 학부모의 자식들 또한 가해자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결국, 고하루와 마나가 지내는 교실에서는 희생당할 ‘한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 텍스트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애매모호하다는 것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이 텍스트를 읽고 있는 독자에게 당신은 어떤 사람이었느냐고 묻는 것 같다. 독자들에게 시로야기 슈고의 『내 딸이 — 왕따 가해자입니다』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