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주름이 아름다운 이유
어릴 땐 ‘넌 꿈이 뭐니?’라는 질문의 답변은 미래에 갖고 싶은 직업이지만, 지금의 꿈은 아주 소소하기도하고 매우 원대하기도하다. 그 크기가 어떻던 굳이 묻지 않아도 누구나 마음 속에 꿈을 품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꿈은 권태로운 일상을 살아갈 원동력이 된다.
백원달 작가의 웹툰 <노인의 꿈>에 시선이 머무른건 ‘노인’과 ‘꿈’이란 단어가 한 문장 안에 들어있어서다. 꿈을 이루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두 단어가 이질적이라고 보는 것부터 나부터 꿈은 젊은이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은 자신의 상황에 맞게 변화시킬 수 있다. 꿈꾸는 데 자격이 필요한 건 아니다. 누구든 꿈을 이야기하며 눈을 반짝이는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매력적이다. ‘항혼을 향해 걸어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이야기 소개는 그래서 뭉클하다. 도파민 경쟁 틈바구니에서 판타지를 쏙 뺀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짜릿한 희망을 품은 채, <노인의 꿈>은 독자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미술학원으로 간 할머니
동네에서 작은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원장 ‘봄희’는 50세가 된 여성이다. 백세시대(百歲時代), 인생의 절반에 당도하였거나 어쩌면 인생 후반전에 진입한 나이다. 하늘의 뜻을 아는 지천명(地天明)이라지만 봄희는 여전히 세상에 의문이 많다. 아이들을 성심성의껏 가르쳤지만, 학부모는 젊은 선생님을 찾아 새로운 학원에 아이들을 보낸다. 중년에 접어든 나이 주름진 얼굴도 낯설다. 봄희는 낡은 상가에 있는 작은 미술학원을 운영하며 늙어가는 자신의 처지를 새삼 발견한다. 그런 봄희를 찾아온 81세 할머니 수강생 ‘심춘애’. 봄희는 수강생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춘애의 주름진 얼굴과 손을 보며 동질감을 느껴 춘애를 수강생으로 맞이한다. 할머니가 무슨 그림을 그리고 싶은 걸까? 춘애가 그리고 싶은 건 자화상이다. 자식들 편의대로 찍은 마음에 들지 않는 영정사진을 대신할 자화상을 그리려 봄희를 찾아온 것이다. 다시 사진을 찍지 않고 자화상을 그리는 건 비효율적이지만 봄희는 춘애의 꿈을 그저 응원하고 싶다.
또 다른 노인의 꿈
봄희와 춘애는 열 번의 수업을 약속한다. 그림을 처음 그려보는 춘애가 자화상을 스스로 완성할 수 있게 맞춤식 수업을 진행하는 봄희. 춘애를 보면 돌아가신 엄마가 떠오른다. 모녀 사이에 있던 해묵은 갈등 탓이었을까 봄희는 언제고 엄마가 꿈이 있다고 했을 때, 응원하지도 돕지도 않았다. 시간이 흘러 엄마가 끝내 꿈을 이루지 못했고, 그것은 봄희와 아버지에게 어떤 계기가 된다. 봄희에겐 노인의 꿈을 무시할 수 없게, 혼자가 된 아버지에겐 인생의 회환을 새로운 꿈을 꾸는 것으로 연결된다. 봄희의 아버지는 과거 아들만 편애하고 제멋대로 가족들 위에 군림했다. 그는 <노인의 꿈>에서 또 다른 이야기 축으로 꿈을 통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타인과 세상을 향한 편협한 생각도 우물처럼 좁은 세계를 확장시키며 성장한다.
내 남편의 딸
우리나라 민법에서 가족은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졌다고 규정한다. 혈연을 중시하던 전통적인 가족관은 퇴색됐지만 여전히 재혼가정에 대한 편견은 존재한다. 봄희는 미술학원 수강생이던 ‘꽃님’의 아빠 ‘정채운’과 가정을 이루고 세 사람은 가족이 된다. 그러나 봄희의 주변사람들은 봄희와 꽃님이 혈연관계가 아니라서 불편할 것이라고 속단한다. 꽃님에겐 엄마를 잃고 새엄마와 사는 불쌍한 아이라며 쉽게 이야기한다. 무심코하는 무신경한 말이 꽃님에게 상처가 될까봐 봄희는 늘 조심스럽다. 그러나 피를 나눈 가족임에도 남보다 못하고 속물적일 수 있다. 대학생이 된 꽃님은 생각보다 단단하고 생각이 유연하다.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았던 자신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대응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마음을 지킨다. 어쩌면 봄희와 꽃님의 관계는 혈연이라는 천륜으로 맺어진 관계보다 스스로 선택에서 맺어져 소중하고 운명적인게 아닐까.
구원같은 다정함
웹툰 <노인의 꿈>에는 우리의 일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편견이 등장한다. 작중 봄희와 같은 상가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한아름 사장은 아이를 낳은 경험이 없다. 인생의 과제처럼 주어진 임신, 출산, 육아를 이행하지 않은 여성들이다.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선택한 삶이지만 주변 사람들은 아이를 생산한 적 없는 여성은 사회의 일원으로써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것 같다. 걱정을 가장한 무시과 비아냥은 일일이 대응하기도 지겹다. 편견은 스스로를 한계에 가두고 타인의 마음을 상처낸다. 그런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건 누군가의 다정함이다. 봄희의 남편은 폐경을 완경이라고 표현하고 새로운 출발선상에 선 봄희를 응원하고 위로한다. 그로인해 “내 나이에 상관없이 나 자신이 가치있다고 느껴진다.”는 봄희의 소회는 우리가 얼마나 다양한 관점에서 나이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는지 보여준다. 젊음을 숭배하고 동안을 칭송하는 현대인에게 주름이 아름답다는 말은 공감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주름이 추억이 쌓인 흔적이라는 다정한 말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좋은 사람, 좋은 만화
봄희는 주변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란 평을 종종 듣는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밑거름으로 움츠러든 타인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받은 차별과 편견이 지금의 자신을 형성했음을 안다. 누구에게나 편견은 있을 수 있다. 다만 그 생각을 쉽게 말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누구나 편견의 대상이 되고 있고, 누구나 늙는다. <노인의 꿈>에 공감하고 감동하는 건 이미 나이듦에 고민을 해봤거나 언제고 노인이 될 우리의 모습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문득 좋은 만화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혐오와 차별이 팽배한 사회에 사는 독자에게 한가지 편견을 없애고 나아가 세상의 편견 하나를 없앤다면 좋은 만화가 아닐까. 최소한 나에게 <노인의 꿈>은 노인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해주었다. 주름진 얼굴 때문에 속상해하지 말고 주름 걱정 없이 활짝 웃고 싶다. 꿈꾸는 노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