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분한 회사 생활을 뜨겁게 보여주다. <들어는 보았나! 질풍기획!>
사람은 돈을 벌어야 살 수 있고,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일을 하는 과정은 힘들고 고되고, 같은 일의 반복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우리의 일상적인 회사 삶과 다소 동떨어진 회사 코미디 작품에서 재미를 느끼곤 한다. 곽백수 작가의 <가우스 전자> 그리고 이현민 작가의 <들어는 보았나! 질풍기획!>(이하 질풍기획)이 그러하다. 이 중 질풍기획은 회사를 다룬 웹툰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감성을 지니고 있다.
회사를 다니면서 드는 감정은 지루함, 힘듬, 긴장, 등등 여러 가지다. 하지만 그런 감정들 중 어떠한 것도 ‘열혈’ 과는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 열혈은 주로 액션 활극에서나 떠오를 감정이지, 회사생활과는 딱히 연관되지 않는 듯 하다. 그런데 질풍기획은 이 열혈을 회사생활과 재미있게 엮어서 그려냈다. 사회인이 한 번 쯤은 겪는 일인 지각, 경쟁, 상사와의 갈등, 거래처와의 갈등, 일로 인한 가족관계 소홀, 악천후 속 퇴근길 등을 뜨거운 피가 흘러 뭐든지 열심히 해내는 주인공 김병철, 그리고 주변 인물들인 심영희, 이일순, 송치삼, 박팔만, 조현철 등이 겪으면서 그 과정에서 재미를 보여준다. 과거 곰인형 탈을 쓰고 연기했을 때의 감정에 푹 빠져 진짜 곰보다 더 곰처럼 연기하는 취업준비생 등의 일들을 캐릭터들이 뜨거운 가슴에 열정을 품고 기합을 외쳐가며 해낸다.
이러한 개그 연출을 잘 살리는 것 중 하나가 의외로 뛰어난 작화와 액션 연출이다. 열혈 개그를 보여주는 만큼 질풍기획은 캐릭터들이 큰 동작을 취하거나, 아예 개그 겸 액션씬을 찍을 때가 많다. 가령 늦잠을 자는 바람에 지각하게 생겼을 때 회사에 시간 내에 도착하기 위해 옆 건물에서 장대높이뛰기로 뛴다거나, 그 장대높이뛰기에 실패하자 스프레이에 불을 붙여 부스터 삼아서 날아가 사람을 잡고, 택시를 잡기 위해 눈을 파고들어 움직이는 직장인, 광고를 원하는 회사에 가기 위해 창문을 깨고 들어가는 등 역동적인 개그가 많이 나오고, 이러한 개그를 날카로운 선과 크고 화려한 동작, 그리고 그런 동작을 돋보이게 해주는 여러 효과가 살려준다. 이현민 작가는 포토샵을 사용해 작품을 그렸는데, 포토샵 내 기능을 활용해 색이 있는 집중 효과를 넣어 배경을 생략하고 인물의 동세를 강조할 때 화려하고도 빠른 느낌을 주는 집중 효과 덕에 그 동세가 더더욱 살아나 타격감이나 인물의 심리 연출을 잘 살려냈다.
캐릭터들의 성격 차이와 개성 또한 작품 속 재미를 살리는 요소 중 하나다. 뜨거운 피의 열혈 남아지만 사고뭉치인 김병철 사원, 소심하고 과묵하지만 힘을 낼땐 목소리를 크게 내며 의외로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박팔만 차장, 엄청난 식신이자 괴력의 소유자인 미인 이일순 대리, 정상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듯 하지만 은근히 사고에 휘말리며 사는 송치삼 대리, 리더쉽이 뛰어나지만 의외로 마음이 약해 잘 삐지기도 하는 조현철 부장, 그리고 태생적으로 물건을 고장내는 손을 갖고 태어난 신입사원 심영희까지, 이들이 얽히면서 여러 일들이 일어난다. 캐릭터들간의 개성과 성격 차이가 뚜렷하고, 그러면서 생기는 캐릭터들간의 조화가 상당히 자연스러워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다 하면 그 사건에 얽히게 되는 캐릭터들만 보고도 어떤 대사나 행동이 오고갈지가 예상이 되면서도, 그런 예상만으로도 웃게 만드는 재미가 존재한다.
또 한가지 빼먹을 수 없는 장점은 바로 열혈물에 걸맞은 명대사다. ‘열혈’을 주제로 만들어진 만화인 <울어라, 펜>부터 시작해서 <천원돌파 그렌라간>, <용자왕 가오가이가>, <킬라킬> 등의 작품을 보면 작품에 걸맞은 명대사가 최소 하나 둘 씩은 나온다. 단순히 기술 이름을 외치는 명대사부터 시작해서, 누군가의 좌우명이 되기도 하는 명대사까지 다양하게 나와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도 그 명대사를 응용해서 쓰는 경우도 종종 나온다. 질풍기획 역시 이런 열혈물의 법칙을 충실히 지켜냈다. 특히 회사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우리의 일상을 다루는 작품이기도 하기에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게 만드는 명대사들이 많다. 사람들의 모함으로 망해가는 회사의 사장, 한덕배가 “누구를 원망하고 무엇을 탓하겠는가! 태양은 스스로 뜨고 지지 않더냐!” 라 말하며 회사를 살리기 위해 나아가는 모습, 그 한덕배 사장과 같은 회사에 경쟁 PT로 맞붙게 된 김병철이 얼마 전 그와 진솔한 대화를 나눈 것 때문에 마음이 약해지자 이를 본 조현철 부장이 긴장의 끈을 놓치 않게 하기 위해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한 얼굴을 하는 건 전력으로 싸우는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라 다그치는 등, 가슴을 울리는 뜨거운 명대사들이 자주 나온다.
이런 장점들이 맞물려 질풍기획은 네이버 웹툰에서 큰 인기를 자랑했다. 과거 네이버 앱부터 시작해 네이버에서 광고를 기획할 때, 또 다른 회사에서 광고를 기획할 때, 높은 인기, 그리고 내용이 광고회사를 다루다보니 어느 회사 광고와도 어울리는 점 때문에 광고용 콜라보 웹툰을 자주 내기도 했고, 후속작 <나의 목소시를 들어라!> 가 끝난 뒤에 시즌2로 <아직도 못 들어 보았나! 질풍기획!>으로 다시 한번 나와 독자들의 환호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질풍기획은 시즌2에서 제대로 된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조기종결 됐고, 이후 2017년 말, 이현민 작가가 무리한 연습 도중 신경을 다치는 바람에 더는 연재될 일이 없어져 버렸다. 작가는 기존의 작화 외에 스토리와 각색이라는 다른 길을 찾아 <역대급 영지 설계사>의 스토리 각색을 맡아 다시 호평을 받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직도 완성되지 못한 질풍기획을 다시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아직도 작가가 열혈 개그 쪽에 욕심이 있는 만큼, 다른 사람이 작화를 담당했다 해도 좋으니 언젠가 다시 이현민 작가가 스토리를 맡은 질풍기획의 속편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