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을 설명하는 데 로맨스라는 단어가 충분하지 않은 이유
카카오웹툰 <타원을 그리는 법>(이하 타그법)이 로맨스로 분류되는 건 두 가지 이유에서 다소 부당한 일이다. 첫째, 타그법은 사랑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아니라 거기에서 균열이 발생하는 과정을 그린다. 등장인물 사이를 오고 가는 감정들은 예상하지 못한 갈등과 비밀에 의해 여러 갈래로 분해되고 또 재조립된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로맨스보다 로맨스 ‘스릴러’에 더 가깝다.
둘째. 여성 동성애자라는 중심인물들의 정체성은 작품의 전개에 밀접하게 상관한다. 유주하와 김민성은 자신들의 성적 지향을 분명하게 인지한 상태에서 (어플리케이션을 일부 매개로) 맺어진 사이이며, 유영애와 서미연의 주된 행보는 여성이자 동성애자인 그들에게 따르는 사회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한다. 성별과 무관하게 너이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식의 불분명한 테제로 이들의 사랑을 뭉뚱그리는 것은, 작품의 핵심적인 부분을 흐리는 일이 될 것이다.
즉, 타그법은 ①로맨스 스릴러, ②GL/백합이라는 키워드가 있어야만 설명될 수 있는 작품이다(물론 이들도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비록 로맨스라는 분류 자체가 틀린 건 아니지만, 이는 작품의 매력을 온전하게 담아내지는 못하는 듯 보인다. 로맨스 스릴러나 GL이라는 별도의 장르가 플랫폼에 있지 않으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다행히도 GL이라는 해시태그는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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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하와 김민성은 3년간 교제한 사이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두 사람 앞에 서미연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서미연이 유주하의 커리어를 볼모로 얻고자 하는 건 단 하나, 김민성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 미리 말해두자면 서미연과 김민성이 과거에 교제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표면적으로 보호자와 피보호자 관계였으며 서로를 누구로도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인식하기에, 유주하-김민성과 서미연-유영애라는 각자의 쌍이 존재하는 와중에도 김민성과 서미연은 서로를 계속하여 의식하고 끌어당긴다.
△ <타원을 그리는 법> 33화
김민성의 과거가 밝혀짐에 따라 위태로워지는 유주하와 김민성의 관계가 작품에 스릴러와 유사한 성격을 부여한다면, 타그법이 어째서 GL이어야 했는가에 대한 답을 보다 직접적으로 내놓는 건 서미연과 유영애의 이야기이다. 사회 초년생으로 묘사되는 유주하와 그 또래인 김민성과 달리 서미연과 유영애는 따지자면 사회에서 나름의 입지를 다진 기성세대에 속하는데, 그들의 부딪혀야 했던 시대의 특성에 더해 그들이 지닌 영향력만큼이나 그들이 여성이라서, 또 동성애자라서 겪는 사회적인 어려움 또한 훨씬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 <타원을 그리는 법> 3부 2화
ML 제약(구 명라제약)의 회장 유명진의 외동딸인 유영애는, 경영인으로서의 능력이 충분함에도 여자라는 이유로 고 이사를 비롯하여 회사의 주요 임원들로부터 차기 회장으로부터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으로는 회장이자 아버지 유명진과 유영애가 자신의 사람으로 만든 조선희 이사는 유영애의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서미연을 사랑하는 레즈비언으로서의 유영애는 받아들이지 못하여 이를 회피하거나 애써 감추고자 한다.
그렇다면 유영애는 이에 어떻게 대응할까? 타그법은 이 지점에서 유영애라는 인물에게 일과 사랑 중 어떤 하나를 포기할 걸 강요하는 대신 제3의 방법을 내놓는다. 유영애는 야구선수 임석호와 위장으로 결혼함으로써 견제를 피해 자신의 입지를 다져 사장으로 취임한 후, 서미연과 자신 사이에 아이가 있음을 밝힘으로써 사랑 또한 인정받고자 한다.
아쉽게도 유영애의 계획은 유명진의 건강 악화라는 예상하지 못한 일 등으로 인해 크게 틀어지고 결국 유영애와 서미연의 사이는 벌어진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자신을 내어주지도 사회를 포기하지도 않는 유영애는, 타그법이 동성 간의 사랑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그 특수성을 변두리로 밀어둔 채 보편성만을 강조하거나 반대로 현실적인 어려움을 그대로 내재화하여 씁쓸한 결말만을 택하지 않게 함으로써 작품의 정체성 중 하나를 강력하게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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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원을 그리는 법> 2부 68화
로맨스 스릴러와 GL이라는 키워드를 고르고 골랐지만, 타그법은 이외에도 다양한 소재를 다채롭게 언급하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김민성과 박은설은 재능이라는 문제를 두고 얽혀 있으며, 부쩍 가까워진 유주하와 유영애는 동시에 노동과 계급을 두고 가치관의 차이로 완벽하게 섞이기 쉽지만은 않은 사이이기도 하다. 깊어가는 감정 사이에 끼어든 이러한 깔끄러운 차이들 때문에 누군가는 이 작품이 사랑에 관한 이야기인지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겠지만, 도리어 순수하게 완결된 사랑과 이를 위한 장애물이라는 공식에 얽매이지 않았기에 타그법이 사랑이라는 현실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타그법은 장르의 어떠한 공식도 답습하지 않고 그 자체로서 하나의 장르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근래 보기 드문 작품이다. 많은 것을 담은 탓에 때로는 전개가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작품의 뛰어난 연출 덕에 독자의 집중력은 쉽게 흩어지지 않는다. 여섯이나 되는 주연들이 자신만의 색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 또한 작가의 능력 덕일 것이다. 현재 타그법은 피날레를 향한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 마지막 숨을 고르고 있으니, 이 틈을 타 이 독보적인 세계를 함께 합류할 것을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