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청춘연가

소쩍이 운다(글, 그림 박흥용 / 카카오웹툰 연재) 리뷰

2024-11-04 신경진

청춘연가

1.춘연

  나의 청춘을 생각해 보면, ‘그때의 만남과 이별은 꽃이 피고 지듯, 멀리 몇억 광년을 날아온 별빛이 그리운 밤을 비추는 일처럼 대자연의 섭리 같은 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만큼 담담하게 겸허히 받아들였어야 할 찰나의 계절이었고, 때로는 절제가 요구되는 시기였지만, 순리에 어긋난 작위적인 행동들로 감정의 소용돌이속에서 역류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던, 철없는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전기 회로보다 복잡한 그 역류의 나선은 어느 하나의 감정선을 차단한다고 해서 곧장 멈추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힘이 다할 때까지 히스테리적인 자기 파괴의 반영을 전부 드러내야 비로소 그치는 멍울진 마음의 폭발이며, 성찰이 동반된 성인의 지혜를 습득해야 치유가 가능한 감정의 재해입니다.

  자연재해에 버금가는 저 분노의 역류를 예방하는 수단으론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방법이 있습니다. 혁명가 체 게바라는 말했습니다. 자신은 자기 의견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모험가라고 말입니다. <소쩍이 운다>의 꽃두레 진경이 역시 청춘의 역류 속에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 ‘창문 흔들리는 소리에 돌아보는 마음이 지겨워 모험을 결심하고 시집도 안 간 여잔 대문의 문턱을 넘을 수 없다는 시대의 금기에 반기를 내걸어 자신의 청춘을 증명하기 위해 투쟁적으로 여행을 강행하는 인물입니다.

  경신 대기근으로 도덕이 무너지고 질서가 무너진 와중에 정치적으로 당파 간 분쟁이 극렬하여 극단적인 암살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어 호위 없이 조선 팔도를 유랑한다는 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기에, 혁명적 모험을 서두르는 여식의 안위가 걱정된 아비는 일찌감치 조선제일검 소쩍이를 호위무사로 고용해 대동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동행하게 된 두 청춘. 죽을 때까지 평범한 삶을 희구하는 기근에 시달려야 하는 숙명을 지닌 조선제일검 소쩍이와, 혁명가 기질이 다분한 지체 높은 대감 집의 여식, 진경이의 사랑 이야기가 대자연의 섭리 속에서 펼쳐지게 됩니다.

2. 청춘의 덫

  ‘혁명은 사랑입니다. 혁명 없이 사랑 없고 사랑 없이 혁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작은 투쟁이라도 결행하면 우리의 삶은 혁명이 되고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청춘 남녀의 로맨스물이 그렇듯이, 그들은 대지 위에서 타오르는 혁명의 불길처럼, 두 갈래의 물이 한데 모이는 아우라지처럼 서로에게 매료되고 맙니다.

  그렇게 작품은 수채화풍의 풍경화를 한결같이 고수하며 세계를 관조하는 듯한 대자연을 시점 삼아 풍경과 인물들 간의 공간적 대비가 세밀하게, 그렇지만 대조적으로 이뤄지도록 두 청춘이 등장하는 정경은 초로의 부부가 신선세계를 한가로이 거니는 듯하게, 입체감 있게 표현해 내는 반면에, 시대의 군상은 비참함이 느껴지게, 쓸쓸하게 인간사 덧없음을 묘사합니다.

  그렇다고 작품이 등불을 밝히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풀죽 앞에서도 비관하지 않는 아이는 신명나게 꽹과리를 울려 사람들의 경직된 마음을 녹이고, 처신을 버린 군관의 외아들은 어린 나이임에도 벌써 나라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무사가 되려 하고, 도도평장이 판치는 세상에 한 고을의 강건한 훈장은 아이들이 장차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도록 위대한 교육현장을 장려합니다.

  진경이는 그런 등불 앞에서 말합니다. “사상이나 이념이 정해 놓은 길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닐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의미심장한 질문에는 광해군의 중립정책을 몰아낸 인조의 북벌론친명배금정책이 당대의 청춘들을 죽음의 에 이르게 한 비열한 정치공작에 불과하다는 것이 담겨 있습니다. 삼전도의 굴욕으로 마무리된 반정의 역사조차 어떠한 명분도 희망도 없이 불거진 등불일 뿐, 새로운 나라를 위한 혁명의 방아쇠는 여전히 개인의 양심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또한 역설하는 것이며, 그만큼 조선이란 나라가 격동의 시대를 맞이하였음을, 왜란 이후로 청춘들의 삶이 가장 힘든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3. 세계의 끝, 청춘

  그러나 이러한 나라의 향방과는 달리 진경이의 양심은 올곧게 점점 소쩍이에게로 향합니다. 무사는 무사답게 칼의 무게를 깨닫는 일에만 치중하지만, 무사의 숙명을 짊어진 소쩍이는 자신을 따라다니는 기근을 잘 알기에, 사뭇 그녀와의 삶을 꿈꾸지 않을 뿐이죠.

  그래도 그녀는 먹빛으로 빚어진 세계에서 당신이 정해준 길을 따라 짚신을 처음 신어보고 발이 부르트고 절뚝거려도 마지막까지 당신의 기근을 나누길 호소합니다. 무사는 여자의 눈물의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끝까지 무심하지만, 소쩍새 어디선가 슬피 울어 내 칼끝이 설혹 내 목을 겨냥하여 주저앉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을 위험에 빠트리는 일은 없을 거라고 홀로 다짐할 뿐.

  과연 소쩍이는 발이 아픈 그녈 위해 등을 내줄까요, 그녀는 등이 다가와도 부르튼 발 내놓기가 부끄러워, 감히 업힐 엄두를 못 내는 건 아닐까요, 도대체 청춘의 끝에 도사리고 있는 계절의 색깔은 제 삶의 빛깔과 일치하기는 할까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과분한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걸 깨닫지 못한다는 건 그걸 가질 자격도 없다.”

  우리는 청춘의 을 너무 두려워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는 뒷걸음질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과정을 즐길 뿐. 그러니 청춘들이여,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청춘의 계절을 이제 막, 즐겨봅시다. 우리네 삶은 하늘에서 휘슬이 울릴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필진이미지

신경진

만화평론가


관련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