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지쳤어도 연약한 것에 친절하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가 출연하는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가 여전히 인기다. 육아와 관련된 전문적인 의견을 들을 수 있는 방송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최근 아이가 없는 10대부터 30대도 해당 프로그램에 열광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실패해도 괜찮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등의 메시지가 어린 시절의 상처에 위안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SNS에서도 “부모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 “어릴 때 듣고 싶었던 말을 이렇게나마 듣는다”는 등의 반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년기에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꼭 흉터를 남기곤 하고, 다른 어린이가 받는 치유를 목도하는 것만으로도 내 흉터도 조금 덜 아파지는 모양이다. 최근 완결된 <마루는 강쥐>의 흥행도 어루만져진 많은 어른들의 흉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아지 마루와 단 둘이 무지개빌라에 살고 있는 우리. 어느 날 별똥별에 모종의 소원을 빈 마루가 다섯 살 아이로 변하고, 호기심 가득한 사고뭉치 마루를 돌보느라 우리는 자꾸만 동네 사람들과 교류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작품에서 가장 먼저 두드러지는 요소는 ‘마을 공동체’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지냈던 우리가 마루를 매개로 빌라 주민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게 되는 계기들이 <마루는 강쥐>의 에피소드를 구성한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마루의 가장 친한 친구인 서율이와 서율이를 돌보는 준호, 마루의 유치원 선생님인 순정, 우리를 잃어버리고 집에 돌아와버린 마루를 맡아준 미영 등 빌라 주민들 모두 마루를 키우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역할을 한다.
이들 어른들의 따뜻함은 어린이를 대하는 모습에서 나타난다. 순정은 아이들에게 덜 무섭게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미영은 일에 치여 마음의 여유를 잃은 중에도 마루를 보호해야 할 존재로 여기고 시간을 낸다. 마루가 일에 방해가 되자 짜증을 낼 뻔하다가도 마루에게 아침식사 기획안을 제출하라며 나름대로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미영의 모습은 은은한 감동을 준다. 어린이와 어른의 공존에 대한 작품의 태도는 어린이날을 맞아 우리, 준호, 마루, 서율이 놀이공원에 가는 57-59화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망해가던 꿈동산랜드의 직원들은 갑자기 찾아온 어린 손님들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손님인 척 줄을 서서는 범퍼카를 함께 타고,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흉물스러운 조형물을 필사적으로 꾸미고, 달랑 셋이서라도 퍼레이드를 보여준다. 연약한 것에 친절하고 어떻게든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려는 어른들의 모습이 코믹 시트콤 장르 속에서도 진지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아이들이 보기 전에 조형물을 가리기 위해 달려가던 직원 양숙의 “오월은 푸르르고 너희들은 자라야 해!!!”라는 외침이 대놓고 개그 포인트인 동시에 독자에게 찡함을 주는 이유다.
작품 속에서 마루와 상호작용하는 어른들은 마루에게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마루로부터 위안을 얻는다. 순정은 마루를 통해 용기를 내 유치원 아이들에게 다시 다가가며, 미영은 마루가 준 명함을 보고 웃고 마루가 낸 아침식사 기획안을 보고 샌드위치를 먹으며 힘을 내 출근한다. 마루를 통해 스스로를 세상과 다시 연결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301호 우주다.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후 히키코모리가 된 우주는 외계인이 나오는 영화 <에일리언 티티>를 보던 중 창밖으로 비친 화면 때문에 마루에게 외계인으로 오해받는다. 마루는 외계인과 대화한다고 생각하면서 자꾸만 작은 편지와 사탕 따위를 내밀고, 우주는 마루에게 겁을 먹고 맞춰주다가 점점 마루와의 교류를 즐거워하게 된다. 화재 경보기 오작동으로 빌라 밖으로 뛰어나와 처음으로 빌라 주민들을 만나게 된 우주는 마루의 친구로서 다시 세상과 관계하기 시작한다. 일에 지친 직장인, 타인에게 깊은 상처를 받은 사회초년생 등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에서 <마루는 강쥐>가 어루만진 것은 어른들의 내면 속 아이들만은 아니다.
마루가 주는 위안은 따스한 선의에 대한 진한 긍정까지 연결된다. 우주는 마루가 자신을 외계인이라고 생각하자 계속해서 외계인인 척 마루와 놀아주고, 마루로부터 선물받은 (박스와 페트병으로 만든) 산소 호흡기를 통해 다시 밖으로 한 발을 내딛게 된다. 52-53화에서는 다리를 다쳐 집에서 쉬던 중 마루가 보낸 종이비행기를 우연히 받은 학생이 ‘황금 독수리 님’이라며 마루의 종이비행기를 기다리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황금 독수리 님으로부터 응원을 받았다고 느낀 학생은 우리와 마루가 동전이 없어 장난감 차를 타지 못하자 선뜻 잔돈을 바꿔준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Be kind”라는 메시지를 절절하게 전했던 것처럼, <마루는 강쥐>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내가 세상으로 보낸 호의가 다시 나에게 되돌아온다는 카르마적 가치관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내가 베푸는 선의가 무의미하지 않다’고 믿고 싶은 어른들의 순수함을 건드린 것이 이 작품의 흥행 요인인지도 모르겠다. 자극적인 사이다 서사가 필수로 여겨지는 요즘 콘텐츠들 사이에서 어른의 순수함에 기대는 작품도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작품이다.
“나도 무지개빌라에 살고 싶다.” <마루는 강쥐>에 종종 달리는 댓글이다. 이웃과의 따스한 교류, 경계심 없이 선의를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의 존재에 대한 우리 세상 사람들의 갈증이 반영된 반응 같다. 그러한 교류가 쉽지 않은 현실과 달리, 우리와 마루가 사는 동네는 대책 없이 따뜻하기만 한 비현실적인 세계라고 할 사람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 모두 때때로 마주치는 따스한 순간이 분명 있다. 그 기적 같은 순간들을 모아놓은 세계라고 생각하면 마루네 동네가 현실이 아닐 이유도 없다. 그래서 나도 조금은 무지개빌라 같은 현실에 살고 싶다. 우리 모두 지쳤어도 연약한 것에 친절하자. <마루는 강쥐>의 인물들과 독자들에게서 느낀 것만 것 내가 가진 따뜻함을, 당신이 가진 따뜻함을 믿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