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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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으로 공감을 할 수 '있구나'

어린이집 다니는 구나 (글, 그림 구나 / 네이버 웹툰 연재) 리뷰

2024-11-15 한유희

웃음으로 공감을 할 수 '있구나'

  사실 일상툰은 웹툰에서 가장 익숙한 장르다. 보통의 존재가 보통의 존재에게 자신의 삶을 드러내는 것은 웹툰의 시초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삶을 관망한다는 것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있다. 서로가 서로를 보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타자를 자연스럽게 나의 주변으로 인지하도록 한다. 일상툰은 공감이라는 감정을 통해 의 일상에 타인을 적극적으로 관여시킨다. 더 나아가 자신의 일상까지 댓글로 적극적으로 공유하며 당신의 일상을 우리화한다.

  그러나 이렇게 익숙한 일상툰이 최근 웹툰 플랫폼에서 연재되는 것은 더없이 새롭기도 하다. 많은 부분을 SNS에 넘겼기 때문이다. 일상툰이 인스타그램 및 SNS에서 연재되면서 대형 플랫폼에서 일상툰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물론 자까, 조석, , 난다 등 유명한 웹툰 작가들이 남아 있지만 새롭게 일상툰을 연재하기란 쉽지 않다. 공감과 공유라는 점에서 웹툰 플랫폼이 SNS를 넘어서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이집 다니는 구나>는 네이버웹툰에 조용히, 그리고 제대로 안착했다.

무해한 웃음

  귀엽고 무해하. <어린이집 다니는 구나>는 내내 밝고 명랑하다. 일상툰이되, 육아툰이기도 하다. 어린이집의 선생님의 일상이 에피소드가 되기 때문이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더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선생님의 시선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사랑이다. 작가 구나는 어린이를 사랑하는 어린이집 선생님이다. 어린이집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일상들을 재밌게 표현해낸다.

  웃음의 결은 다양하다. 웃음은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 웃음의 가치를 따진다면 모두가 웃을 수 있을 때가 최우선이 될 것이다. 대상화가 되는 존재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는지에 따라 웃음은 권력의 구조로 재편된다. 따라서 웹툰에서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웹툰은 몇 되지 않는다. 특히 전연령이 함께 볼 수 있는 웹툰도 많지 않다. 만화를 읽는 최우선 가치가 재미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모두가 공감하고 웃을 수 있는 작품은 분명 필요하다. <어린이집 다니는 구나>는 누구도 우스운대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행동을 어른들의 눈높이에서 재단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다.

  아이들이 재미있는 이유는 누군가에 대한 편견이 아직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곁에서 배운 것들과 자신의 생각이 더해져 새로운 말들, 행동들이 탄생한다. 반짝친구, 맛이 우울하다, 바지가 쫄깃하다. 아이들이기에 할 수 있는 말들에서 독자들은 무엇인가를 재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웃을 수 있다. 그야말로 무농약 웃음이다.

그랬구나라는 따뜻한 주문

  사실 웹툰의 묘미는 그랬구나라고 말해요!라고 적힌 소제목의 표지에 있다. 아이들이 말과 행동에 그랬구나하고 호응해주고 들어준다. 아이들이 지닌 동심을 지키는 주문과도 같은 말이다. 이는 선생님 구나와 작가 구나를 잇는 지점이다. 하지만 그랬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구나라는 작가가 지닌 따뜻한 시선 때문이다. 공감/경청하기-한계설정-대안제시-기다리기와 같은 아이의 보육과 교육과 관련된 이야기가 그저 재밌을 수 있는 것은 이미 선생님 구나가 그만큼이나 따뜻하게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보고 있다는 말과 동일하다.

  누구도 직장일이 늘 즐겁지 않다. 심지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들이 대상이 된다면 더욱 지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어려운 존재다. 그야말로 아이라는 세상이 펼쳐져 있지만 이를 이해하고, 수용하기란 쉽지 않다. 아이들은 아이답게 고집이 세고, 잘 울고, 변덕도 심하다.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 뭐든 한다. 제멋대로인 아이들을 구나는 이런 따뜻하게 바라본다. 구나가 표현하는 아이들은 토끼. 귀여운 토끼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을 기다려준다. 그렇게 사랑과 기다림 속에서 아이들은 아이들만의 세상을 펼친다.

어쩌면 서로를 믿는 것

  자신의 육아와 아이에 대해서 고민하는 부모들도 많다. 심심치 않게 터지는 어린이집의 학대 사고로 인해 어린이집-부모의 불신은 점차 깊어진다. 동시에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처우와 환경에 대해서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오해가 깊어질수록 등도 커진다. 사실 이 모든 일은 무섭기 때문이다. 연 나의 아이를 선생님이 제대로 파악하고, 잘 보듬어 줄 수 있는지 알 수 없기에 부모는 쉽사리 믿지 못한다.

  <어린이집에 다니는구나!>는 보육 기관과 부모의 관계를 적절하게 거리를 둔다. 직접적으로 화해를 권하거나 요청하지 않는다. 동시에 억지로 자신의 힘든 상황을 과장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을 낮추고, 아이들의 에피소드를 사랑으로 그려낼 뿐이다.

  구나는 예민할 수 있는 어린이집의 상황을 웃음으로 승화한다. 오히려 이런 웃음을 통해 부모들은 어린이집의 상황을 인지한다. 아이에게 단편적으로 들었던 원의 생활을 짐작하고, 사랑받았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웃음은 믿음을 만든다. 웹툰 댓글이 어린이집에 보내보았던(혹은 보내는) 부모들의 에피소드로 채워지는 것은 어쩌면 일상툰의 최선의 공감과 공유를 뜻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일상에 공감한다는 것은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나와의 관계가 가깝지 않을 때 공감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어린이집 다니는 구나>는 그렇기에 어쩌면 독자층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웹툰이 더 재미있었던 것은 나 또한 엄마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세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아이들의 특성을 알고 있고, 어린이집에도 보내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이집 다니는 구나>는 차 떼고, 포 떼도 재밌다. 개그 일상 만화의 순한 맛이다. 소재는 귀엽고, 표현은 더없이 사랑스럽다. 장난꾸러기 떤때미와 아이들은 오늘도 재밌는 일상을 보낼 것이다. 꼭 아이들답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