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배드로>: 잃어버린 어른을 찾기 시작한 ‘회빙환’
△ <킬러 배드로> 포스터 (출처: 네이버 시리즈)
어른을 소환하기 시작한 ‘회빙환’
네이버 웹툰 주간 순위 Top 10 내를 꾸준히 기록하며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는 <킬러 배드로>는 ‘회빙환’ 장르의 변화와 분화 방향을 드러내는 작품 중 하나다. <킬러 배드로>는 오랜 킬러 생활 끝에 암을 얻고 은퇴를 준비 중이었으나, 자신의 자산을 노린 후임과 동료들의 배신으로 암살당한 후 20대 자신의 몸으로 회춘한다. 이후 자신의 딸을 위해 모았던 자산을 되찾고 암살에 대한 복수를 위해 신영광 고등학교에서 암살자로 양성되고 있는 학생들과 함께 자신이 몸담았던 암살단 ‘글로리’의 12사도들과 대결을 벌인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킬러 배드로>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회춘, 정확하게는 회귀의 당사자인 주인공 ‘배드로’가 대의를 위해 오랜 시간 암살을 수행하다 암을 얻고 은퇴를 준비하던 노년층이었다는 점이다. <킬러 배드로>가 은퇴자를 회귀의 주인공으로 설정한 데에는 젊은 육체 얻은 백전노장을 먼치킨의 설정으로 삼기 유용하다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를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지칭하기 수월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은 <킬러 배드로>의 1화 에피소드에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배드로는 자신을 암살하러 온 신영광 고등학교 학생 이유나를 돌려보내고자 한다. 그 이유는 이유나가 자신의 딸을 닮았기 때문도 있지만, 이유나가 동생을 책임지는 가장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킬러 배드로>는 이러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배드로가 자신의 해하려는 자가 어떤 맥락에서 자신을 해하려는지 파악하고,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인물임을 강조하고 있다. 나아가 악행은 악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일러주고, 이를 교화하는 실력 또한 반복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주인공 배드로는 1화에서 등장했던 이유나에게 암살을 수행해야 하는 이유와 목적을 제시하기도 하고, 자신과 대결을 벌였던 ‘사도 시몬’의 보호자이자 진정한 실력자였던 ‘카케오’에게도 그가 암살자가 된 경위를 위로하고 더 나은 암살자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렇게 은퇴자의 신분에서 회귀하여 주변인들에게 교화의 기회를 제공하는 주인공은 비단 <킬러 배드로>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서인하 작가의 웹소설 『재벌의 품격』을 원작으로 둔 동명의 네이버 웹툰 연재작의 주인공 ‘손중길’에게서도 배드로와 대단히 유사한 면들을 발견할 수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재벌 기업 ‘재경’의 총수였던 손중길은 1990년 노환으로 숨을 거두었다가 2022년 손자의 몸에서 환생한다. 손자의 손중길은 자신이 일군 재경이 쇠퇴했다는 것을 깨닫고, 주변인들이 더 나은 직장인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돕는 방식으로 재경의 부활에 조력한다.
이렇게 ‘회빙환’ 장르들이 어른을 소환하기 시작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추측된다. 하나는 ‘회빙환’ 장르가 큰 인기를 얻으며 양산되기 시작하자, 그와 차별을 두기 위해 ‘회빙환’의 대안 중 하나로 회춘을 선택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보다 중요한 이유로는 웹소설·웹툰의 주된 소비층인 1020을 겨냥하여 그들에게 부재하고 있는 어른의 이상향을 제시하기 시작한 것으로 유추된다. 이는 달리 말해 서사 장르가 1020이 겪고 있을 고난의 책임이 그들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실제로 1020이 ‘그럴싸한 어른을 찾지 못하고 있다’라고도 생각해볼 수 있다.
△ NAVER 검색엔진의 대한민국 내 ‘회빙환’ 검색 추이 (출처: 네이버 데이터랩)
‘회빙환’, 어른에게 책임을 묻기 시작하다
‘회빙환’이 특정한 장르를 지칭하는 조어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국내 검색 엔진들의 검색어 추이를 비교해볼 때 그 시기는 21년에서 2022년 사이로 추정되는 데, 2019년에 약간의 검색 바이털이 잡힌다는 점에서 2020년 이전에도 ‘회빙환’이라는 조어가 존재했었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다만, 단어가 대중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시기는 2020년 이후로, 2021년 이후부터 검색어 상승 스파이크들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이는 ‘회빙환’이라는 조어에 대한 대중적 인식은 코로나 시기에 시작되어 포스트 코로나 시기를 거쳐 정착되었다고 볼 수 있는 근거라 할 수 있다.
대중적 인식이 이렇다 하여 오늘날 ‘회빙환’과 유사한 서사들이 2020년 이전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던 건 아니었다. 가령, 네이버 웹툰에서 활동했던 미티 작가의 <남기한 엘리트 만들기>(이하 <남기한>)를 생각해볼 수 있다. <남기한>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꾸준한 인기를 구사하며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그 줄거리를 돌아본다면 오늘날 ‘회빙환’ 서사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남기한>은 취업 시장에서 낙오되고 있던 27세의 주인공 ‘남기한’이 16년 전으로 회귀하여 학창시절부터의 경험을 다시 통과한 끝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는 성장 서사를 가지고 있다. 정보 격차를 활용하여 즉각적인 결과를 만든다는 점에서 오늘날 ‘회빙환’과 다소 차이가 있으나, 주인공 서사의 큰 골자 내에서 ‘회빙환’의 서사와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다만, <남기한>의 경우 남기한의 고통의 원인이 자기 자신에게 있었다는 점을 깨닫는 반성의 모습들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그러한 반성의 자리에는 정보 격차를 이용한 경쟁우위의 점유들이 풍경처럼 자리 잡았었다. 이는 많은 평자가 지적하듯, 개인의 노력으로는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없는 시대의 풍경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웹콘텐츠들은 변화의 맹아를 지닌 주체들로부터 눈을 돌려 더 나은 세상을 제시할 능력을 잃어버린 어른들에게 고통의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배드로가 암살자일지언정 학생들에게 더 나은 길과 진로를 제시하는 모습은 예민한 창작자들이 자신의 독자들이 세상에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추측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더불어 회춘의 주인공들이 40대가 아닌 60대 이상의 고령자라는 점도 고민해봐야 하는 점이다. 대게 사회는 관습적으로 어른이라고 명사를 사회의 허리를 담당하는 40대로 내외의 인구구성원에 붙여왔다. 그러나 회귀의 주인공이 40대가 아니라 60대라는 점은 오늘날 1020이 40대, 즉 20대 이하의 시절을 90년대에 보낸 이른바 X세대를 어른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뜻일 수 있다. 오늘날 1020은 X세대가 거둔 사회적 성과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며, 그들의 지향점을 거부하는 것일 수 있다. 이는 유럽의 68세대가 실패했던 모습들이 ‘실패한 X세대’라는 풍경으로 오늘날 한국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