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아르바이트, 보일러 상담사, 텅 빈 영화관을 지키는 직원이,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기이한 이야기
황벼리의 〈믿을 수 없는 영화관〉(한겨레출판사, 2024)은 자신을 갑자기 떠난 타인을 어떻게 이해할지 묻는 텍스트이자 자신과 다른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묻는 테스트이다. 나이스 보일러 상담사로 일하는 이이소,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고무섭, 이곳이 아닌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다고 믿는 텅 빈 영화관을 지키는 곽풀잎의 서사를 탐닉하고 있노라면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고 느끼고 바라보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무섭과 이소가 엉뚱한 풀잎을 점점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잔잔하면서도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여기서 감동적이었다는 말은 만화가 황벼리가 연출해 낸 서사도 서사이지만, 만화만이 가지고 있는 연출이 참신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는 동시대의 가장 뜨거운 담론을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이 새롭지 못함을 만화의 형식으로 극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다가온다. 물론, 이런 굵직한 주제 외에도 이이소, 고무섭, 곽풀잎이 겪은 개별적인 이야기 또한 흥미로운데,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삶을 향해 도약한다. 〈믿을 수 없는 영화관〉은 한 편의 성장 만화이기도 한 것이다.
△ 카페에서 일하는 고무섭, 보일러 상담사 이이소, 영화관 직원 곽풀잎
이들은 각자 자신만의 공간을 찾아 나선다.
동시대는 타인과의 관계가 복잡하다는 것을 강력하게 어필하는 시대이다.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은 이 사실을 강박적으로 보여준다. 개인이 아닌 ‘작품’이 그런 소재를 지속해서 반복한다는 것은 징후 적이라는 점에서 여러 생각할 것들을 제공한다. 성 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은 이미랑 감독의 영화 『딸에 대하여』(2024)도 그렇고, 미야케 쇼의 『새벽의 모든』(2024)도 그렇고 장성욱 소설가의 『기억의 몫』(2024)도 최근 시집을 준비하고 있는 이기현 시인의 시집도 그렇다. 만화의 영역에서는 <그랑비드>(이숲, 2023)도, 마영신의 <아티스트>(송송책방, 2019)도, 에리크 스베토프트의 <SPA>(교양인, 2022)도 결은 현격히 차이가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타인을 어떻게 ‘이해’하고 공감해야 하는지 묻는 텍스트 같다. 따라서 이런 작품들이 동시대에 지속해서 출현한다는 것은 나와 타인과의 관계가 세대나 시기와 상관없이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함과 동시에, 지금, 이곳에서는 자신과 전혀 다른 이질적인 타인을 어떻게 이해하고 느낄 것인지에 대해 지속해서 질문하고 있다는 말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니까 철학자 아도르노의 말처럼 진정성 있는 예술작품은 작가나 사회의 ‘대리물’이라는 점에서 작품은 개인이자 사회가 바라보는 하나의 풍경이자 진단된 사회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황벼리의 최근 작품 〈믿을 수 없는 영화관〉은 특별할 것이 없다. 동시대 담론의 자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작품이 다른 작품과 구별해 개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만화적 연출이 흥미롭다는 것이다.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으나 내용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즉,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 만화가는 고심했고 이 의도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1. 만화 속 영화적 연출
우선, 이 텍스트에서 곽풀잎의 직업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녀는 영화관에서 일한다. 영화관에서 일한다는 것은 동시대의 흐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오래전에 개봉한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영화 『시네마 천국』(1990)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오래전부터 필름 영화는 시들해졌고, 관객 역시 극장을 떠났다. 어디 필름 영화뿐이겠는가. 넷플릭스의 등장으로 대중들은 이제 더는 영화관을 찾지 않는다. 기술도 현격히 발전해 커다란 티브이를 통해 가정 안에서도 얼마든지 국경을 넘나드는 수많은 영화를 유익하게 감상할 수 있다. 그러니 그녀가 영화관에서 일한다는 것은 고독한 일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이 작품에서 풀잎은 텅 빈 영화관에서 소수의 사람만을 응접 한다. 그래서 풀잎이 일한다기보다는 영화관을 지키고 있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그런 곳에서 그녀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 만화 속 영화들
그런데 영화관이라는 ‘공간’은 곽풀잎이 고독하게 일하는 장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텍스트에서는 실제로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구성되었다. 물론, 직접 상영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만화가 황벼리는 만화책 속에 여러 단편 영화를 연출했다. 그 서사를 풀어낼 때는 다른 페이지와 변별해 노란색을 써넣었다. 이 과정에서 책을 읽는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한 편의 짧은 영화를 관람하게 된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엔딩 장면 역시도 영화적 연출을 통해 고백(독배)의 목소리를 강조한다. 이러니 독자들은 텅 빈 영화관에 홀로 들어와 있는 느낌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마지막 장면을 편지 형식으로 처리하는 방식은 고백의 특징을 더욱 부각한다.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는 『바이올렛 에버가든』(2018)의 마지막 장면처럼 ‘편지’를 통해 작중 인물의 간절함을 잘 담아 놓았다. 이러한 연출은 만화를 영화‘화’한다. 상상을 매개로 시각‘화’한다. 그밖에 칸과 칸이 세워지고 허물어지는 연출을 눈여겨보면 흥미롭다.
2. 환유적 흐름
그다음으로 눈여겨볼 부분은 환유적 연출이다. 하나의 이야기가 직선적인 시간의 형식을 품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와 이야기가 맞물리면서 인물과 인물 사이에 긴장과 이어짐을 쉬지 않고 작동시킨다. 가령, 이야기 속에서 아이스크림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왔다면, 이 아이스크림을 소재로 다른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다. 이는 텍스트의 주요 인물인 곽풀잎, 이이소, 고무섭의 관계가 친밀하다는 것을 말해줌과 동시에 이 친밀함이 끌어졌을 때 더욱 단단하게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세 명의 인물이 펼치는 드라마를 더욱 애절하게 만든다. 이런 연출을 따져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3. 공간과 장소
공간과 장소 역시 흥미롭다. 이 텍스트에서 공간과 장소가 흥미로운 것은 곽풀잎이라는 인물이 갑자기 사라지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이곳이 아닌 다른 세계로 간절히 가고 싶어 했고, 이런 바람으로 인해 실제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게 된다. 현실에서 불가능하지만 인간의 마음이 작품에 재현되었으니 상상과 바람은 현실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곽풀잎과 이이소와 고무섭이 만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이소는 다른 공간에 있는 곽풀잎과 소통할 수 있어서 애인 관계였던 무섭과 풀잎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만화가는 이런 연출을 통해 말과 말이 오가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간접적으로 전달해준다.
△ 곽풀잎과 고무섭이 소통할 수 있게 사이에서 말을 전달하는 이이소
그러니까. 이 작품에서 활용된 ‘영화’나 ‘편지’, ‘환유’, ‘공간’ ‘장소’ 등의 연출은 세 인물의 애절한 사연과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동원된다. 따라서 독자들은 젊은 청년인 풀잎과 무섭과 이소가 어떤 사연을 품고 고민하고 갈등하고 이해하고 성찰하는지 천천히 느리게 텍스트를 넘겨볼 필요가 있겠다. 이 과정을 탐닉하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타인의 살결과 숨소리가 나와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이 과정을 음미하는 과정에서 나 역시 누군가를 함부로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즉, 타인이 품고 있는 맥락을 조심스럽게 따져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