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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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는 오해의 하모니

천만청춘 (글, 그림 유월 / 네이버 웹툰 연재) 리뷰

2024-12-05 이성호

코미디는 오해의 하모니

  우리가 웃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연구는 간지럼과 같은 물리적 작용이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학자는 상대방과의 사회적 상호작용이라고 하기도 한다. 사전적 의미는 쾌적한 정신활동에 수반된 감정반응이기도 하다. 과학적으로 어떨지 모르겠지만 서사에서 독자의 웃음을 유발하는 것은 바로 반전이다. 칸트가 긴장이 무로 돌아갈 때 웃음이 나오고, 쇼펜하우어가 관념이 불균형일 때 웃음이 나온다고 했듯이 유머는 예상을 뒤엎을 때 나온다.

  웃음이 어떤 철학적 가치를 가질 필요는 없다. 웃음은 그저 황당하면 되고, 그로 인해 재미만 있으면 된다. 재미가 뒤를 계속 읽게 하는 원동력이니만큼 이야기의 이유는 거기에 있는 것이다. 코미디의 가치는 그래서 오해의 실타래를 꼰 다음 다시 풀어가는 그 참신성에 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예상되기에 흥미가 떨어지니만큼 적당한 긴장과 이완이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야 한다. 거기에 로맨스가 더해지면 두 남녀 사이의 오해가 로맨스 코미디라는 하나의 장르를 만드는 것이다.

  상대방의 진의를 묻지 않고 스스로 오해하여 생각하는 것은 로코의 첫 번째 발걸음이다. 유월 작가가 특히 그러한 오해를 유머러스하게 잘 풀어내는데 <동트는 로맨스> 때도 그랬지만 24년 하반기에 나온 <천만청춘>도 그런 오해의 연속이다. <동트는 로맨스>에서는 대학교가 배경이기에 술이라는 기억을 잃게 만드는 소재가 있어 새벽과 광채 사이 서로 오해하기 좋은 상황이 연출되었고, <천만청춘>은 다른 중학교, 같은 고등학교가 배경이어서 서로 알지 못하는 과거가 오해의 소재로 나타난다.

  <천만청춘>의 시작은 천만 원짜리 공모전에서 시작한다. 고등학생이 알바 이외에 벌 수 있는 수단인 공모전을 통해 많은 돈을 번 한영은 고등학교에 와서도 공모전의 꿈을 놓치지 않는 진정한 돈귀신이다. 그런 능력에 비해 사교성은 부족하여 발표와 팀플에 약해 팀 단위 공모전은 나가지 않는데, 고등학교의 공모전은 단위가 다르다. 팀 단위로 1등 상금 500만 원, 추후에 1,000만 원까지 올라가는 공모전이 나타나면서 한영은 반 창활 시간에 짰던 조 그대로 공모전에 나가기로 한다. 이때의 유머 포인트는 한영의 성격을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회의 신, ‘대신이라고 불리는 한영이 실제로는 공모전 상금에 미쳐있었다는 것,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자존심도 버릴 수 있는 캐릭터인 것은 그 살벌한 눈빛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유발한다.

  사실 이러한 로맨스 코미디 장르는 서로에게 속내를 털어놓지 않는 것이 기반이기에 솔직한 사람끼리 만나면 이런 장르가 탄생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이유가 필요한데, 보통 낮은 자존감이 그 이유가 된다. 능글거리게 굴면서도 쉽게 상처받는 천이삭은 이러한 성격으로 인해 자신의 진심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편이다. 이로 인해 자신을 숨기고 타인을 자신의 기준으로 이해해서 오해하게 되고 오해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연속된다. 이러한 오해의 연속은 쓸데없는 짓인 삽질로 이어진다. 천이삭이 한영이 자기를 싫어해서 머리를 잘랐다고 오해하는 것과, 중학교 시절 소문으로 인해 한영이 자신을 공모전에서 빼고 싶어한다는 오해는 생각보다 금방 풀리지만 그 풀리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한 솔직함은 당황과 황당을 섞이게 만들어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자신의 소문이 안 좋게 나고 급식실에서 싸움까지 날 뻔한 상태에서 세연까지 나타난 상황은 천이삭이 한영에게 빌게 만드는 상황을 만든다. ‘나 네가 생각하는 그런 쓰레기 아니야라는 아무도 궁금해하지도, 묻지도 않는 말을 혼자 하는 천이삭의 외침은 당연히 무시로 끝난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는 모습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우습지만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동트는 새벽>에서도 새벽의 낮은 자존감을 광채가 높여줬던 것처럼, 천이삭이 그런 외침을 할 수 있게 만든 것은 한영이 발표와 관련되어 진심으로 칭찬해 주어 낮은 천이삭의 자존감을 높여줬기 때문이다. , 로맨스에서는 자존감이 오해와 직결된다.

또한 고등학교 특유의 분위기도 한몫한다. 주제 하나만 있어도 그것 하나가 몇 달 동안, 혹은 1년 동안 회자되는 것이 고등학생이다. 천이삭에 대한 소문과 한영에 대한 소문뿐만 아니라 사소한 것도 마찬가지다. 작품은 천이삭이 회의 때 지각하고 나서 팀원들에게 양치하라고 했던 말 하나로도 끊임없이 웃음을 유발한다. 양치 한 번 지적한 것으로 상처받는 이새이와, 친구들과 지나가던 천이삭에게 백도진과 정열이 양치 안하냐고 언급하고 반격하는 것이 영락없는 고등학생들이다.

  물론 작품에 나타나는 오해의 하모니가 긍정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이성과 관련된 천이삭의 소문에 대해 친구들이 은근히 그럴 수 있다는 태도가 나타나는데, 안 좋은 소문이 더 빨리 퍼지는 것은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으레 그렇듯 소문보다는 옆의 친구가 더 중요하다. 자존감 낮은 천이삭이 소문에 버틸 수 있던 것도 옆에서 대신 나서주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이삭 대신 친구들이 대신 갑자기 화를 내는 급발진하는 것도 웃음 포인트 중 하나다. <천만청춘>은 웃음 포인트가 많으면서도 다양해 유머가 전혀 질리지 않는다. 전작인 <동트는 새벽>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찌질한 악역이 나와서 답답한 감도 없진 않지만, 주변의 사이다 같은 인물들이 많아서 고등학교 청춘을 시원하게 맛볼 수 있다.

필진이미지

이성호

22년 만화평론공모전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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