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인간관계의 열쇠
1. 빌런과 보석
생각이 많고 자존감이 낮은 21살 여대생 사리는 어디 하나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인물이다. 단 하나, 모델 일을 하고 있을 정도로 예쁜 단짝 친구, 수정이가 있다는 것 빼고는 말이다. 누가 봐도 예쁘다고 생각할 만한 외모를 가졌지만, 기분파에 자기중심적인 수정이는 사리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친구였다. 하지만, 수정은 사리에게 있어서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한 전학생일 때 먼저 다가와 준 소중한 친구였고, 무엇보다 둘은 같이 있으면 재밌고 즐거웠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붙어 다녔던 둘도 없이 친한 사이였지만, 어느샌가 사리는 수정의 들러리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는 모두 예쁜 수정이를 좋아했고, 직설적인 수정이는 간혹 자신의 외모를 깎아내리는 듯한 말을 하기도 했다. 어디를 가던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수정이의 예쁜 외모를 부러워하는 사리. 사리의 단란한 가정과 큰 키를 부러워하는 수정. 둘은 서로를 아끼면서도 동시에 질투를 하기도 하며 자격지심을 느낀다.
위태롭고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유지하던 둘은 설상가상 이성 문제로 몇 번이고 부딪히게 된다. 고등학생 때부터 싸워도 보고, 속마음을 터놓고 서로를 위로하고 공감해 준 것도 여러 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쌓여가는 불쾌한 감정들은 둘 사이의 관계를 뒤흔드는데.. 둘은 끝까지 서로에게 좋은 친구로 남을 수 있을까? 사리의 소중한 보석이 되는 관계는 몇이나 될까?
현재, 좋았던 기억과 나빴던 기억이 동시에 존재하여 혼란스럽게 하는 존재가 있다면, 손절하기는 애매한 인간관계로 고민하고 있다면,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 중인 쪼 작가의 <사리네 보석함>을 읽어보자. 우리의 복잡한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 속에서 그 해답을 찾을지 모른다.
2. 입체적인 연출의 장단점
주인공은 모두 착해야 할까? 악당은 정말 악하기만 할까? <사리의 보석함>은 모든 인물의 장점과 단점을 번갈아 보여주며 스토리를 보다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이지만 마냥 선하기만 한 인물이라고 할 수는 없는 사리는 여느 사람과 같이 좋은 면도, 나쁜 면도 가지고 있는 보통의 인물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배려하는 세심함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남에게 서운한 점을 털어놓지 못해 친구를 답답하게 만들기도 한다. 갈등을 회피한 채 일방적으로 관계를 끊으려 하거나, 쌓여있던 서운함으로 친구의 험담에 가담하는 실수를 하기도 하는 사리의 모습은 절대적으로 선하다고 표현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런 사리의 실수를 도덕적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리가 저지른 실수들은 우리 모두 어렸을 적 한 번씩은 저질러 본 실수일지도 모른다. 남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자신의 말만 하지만, 뒤끝 없이 서운한 점을 말하고 푸는 수정이 또한 절대적인 악인으로 볼 수는 없다. 세상에는 사랑이 담긴 말투를 배워본 적이 없어 표현 방법이 서툰 사람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곁에 있으면 한없이 초라해지고, 은근히 무시당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친구임에도 사리가 수정이를 제대로 쳐내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일 것이다. 이렇듯 모든 사람은 착하기만 하지도 않고, 나쁘기만 하지도 않기 때문에, 혼돈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좀먹는다는 걸 알면서도 쉽사리 끊어내지 못하곤 한다. <사리의 보석함>은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흔히 느끼지만,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불쾌한 감정들을 섬세히 표현해낸다.
다만, 이 모든 감정을 다 담아내고자 하기 때문일까, 가끔은 인물의 독백이 지나치게 많아 가독성이 떨어지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한 컷에 너무 많은 글자들이 배치되는 컷들은 시선을 분산시켜 혼란스러움을 야기하기도 하는데, 이는 어지러운 사리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너무 자주 사용될 경우에는 자칫, 작품이 전반적으로 소란스러워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이마저도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을 엿보는 듯한 작품 특유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하나의 요소가 될 수도 있겠지만, 말풍선 및 컷 사이의 간격을 효과적으로 조절한다면 더 깔끔한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3. 평범의 힘
드라마, 영화, 웹툰 등 모든 작품의 주인공들은 본인을 특별하지 않은 일반적인 인물이라 칭하지만, 다들 현실에선 없을 특별한 경험을 하곤 한다. 죽음의 문 앞에서 회귀를 하거나, 지나치게 잘생긴 꽃미남들의 마음을 동시에 얻는 등의 특별하고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이야기 전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삶을 살아가는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마치 본인이 작품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한 일종의 장치 중 하나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웹툰 속 '평범'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단어와는 거리가 멀어져 버렸다. 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 사리는 드디어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평범하다.'라는 단어의 정의를 그대로 구현해낸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사람이 많은 지하철에서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이 부끄러워 내릴 정거장을 놓치거나, 모두에게 친절할 뿐인 사람이 자신을 좋아한다 착각하기도 하는 사리의 모습은 왜인지 우리의 속내를 샅샅이 들추어내는 듯하여 공감성 수치가 느껴지기까지 한다.
앞서 말했듯, <사리네 보석함>은 현실에서 한 번씩은 느껴보았지만 말로는 설명하기 묘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데 능한 작품이다. 기분은 상하지만, 쪼잔하게 보일까 말하지 못한 상황들을 기가 막히게 표현해 내는 장면들은 독자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댓글 창에는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대화의 장이 열리게 만든다. 어느 순간부터 사리에게 자신을 투영하며 작품을 읽게 되는 독자들은 수정이에게 열등감을 갖고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리의 모습에 함께 아파하고, 또 응원하게 된다. 이러한 소중한 경험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리와 닮은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사랑하고 응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모든 관계는 양가적일지도 모른다. 어느 때는 더 없는 힘이 되어주기도 하다가, 또 어느 때는 자존감을 갉아먹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친구’라는 단어가 가끔 자기 자신을 잃게 만들면서도,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족쇄가 되어버린 경험이 있다면, <사리네 보석함>은 그 족쇄를 끊어낼지 말지 결정할 용기를 주는 열쇠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