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그리고 사후세계
인간의 죽음은 필연적이며 미지로 가득 차 있다. 죽음은 누구도 경험해 볼 수 없기에, 사후 세계에 대한 모습은 사람들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해 왔다. 사람들은 죽음 이후의 모습을 누군가는 생사를 끝 없이 반복하는 윤회(輪廻)로, 누군가는 하늘의 부름으로 천국에 드는 소천(所天)으로, 또 누군가는 영원한 휴식의 영면(永眠)으로 비유한다. 과연 죽음이란 개념은 어떤 것일까.
1.
작품 <죽어 천국에 가다>는 주인공 고철수가 죽고 난 후, 천국으로 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늘 삶의 멘토가 되어 주었던 삼촌, 그런 삼촌은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부모님의 바람으로 의대로 갔던 고철수는 생명과학과 교수의 강연을 듣고 다시금 꿈을 꾸게 되고, 삼촌의 지원으로 다시 한번 재수해 생명과학과로 편입한다. 그곳에서 고철수는 교수의 연구원으로 들어가 교수의 연구를 돕다가 정말 천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바로 김철수이다. 김철수의 글을 우연히 본 고철수는 자신과의 괴리감에 좌절한다. 사회에 나온 고철수는 제약회사 연구원으로 들어가 위암을 치료하는 약을 개발하고자 했지만 좀처럼 결과는 나오지 않았고, 결국 다른 제약회사의 김철수가 다시 한번 그를 앞서나가 개발에 성공했다는 기사와 논문을 발표한다. 그러나 김철수의 논문은 너무 높은 난이도와 조작한 듯한 자료들로 범벅되어 있었고, 고철수는 그런 김철수의 논문을 반박하고 만다. 고철수는 천국의 심사관들에게 자신이 겪은 일들을 말하며 죄책감에 살고 있으며 자신의 인생은 쓸모없는 인간의 삶이였다며 한탄한다.
2.
사후세계에 관한 묘사는 인간사에서 끉임없이 묘사되어 왔다. 성경에서는 현생에서의 죄 유무에 따라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어 간다. 불교에서의 죽음은 윤회로서 끊임없이 환생하며 돌고 돌다 열반에 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과거 데카르트는 이원론을 주장했다. 몸과 마음이 뚜렷하게 구별된다는 이원론은 육체와 영혼은 분리가 가능하며, 육체가 사라져도 개인의 정체성을 유지시켜주는 존재가 존재한다고 봤다. 결국 어떤 종교든 개념이든 영혼의 존재가 있으며, 이 정체성이 유지되어야 윤회, 천국과 지옥등을 결정하는 심판이 이루어 진다. 수많은 추측들이 존재하지만 사후 세계는 현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경험할 수 없는 개념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추측과 믿음을 가지고 죽음에 대한 공포감을 상상력으로서 승화하여 자기 자신을 위로한다.
작품에서 보여지는 죽음 이후의 세계는 조금 다르다. ‘죽어 천국에 가다’에 나오는 저승의 모습은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게 묘사되고 있다. 휴게소에서 효능을 알 수 없는 물건들을 파는 잡상인들, 회사 인센티브를 위해 물건을 파는 가이드,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시위하는 저승사자들. 여기서 구매가 이루어지는 매개체는 모두 ‘공덕’이다. 여기서 공덕은 불교용어로서 좋은 과보를 얻기 위해 쌓는 선행으로, 생사윤회를 근본으로 하는 불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행위 중 하나이다. 선한 행위는 공덕을 낳고, 낳은 공덕은 자신에게 쌓여 사후의 운명을 결정한다. 석가모니는 사람으로 태어나 지위가 높고 낮음, 얼굴이 미인이고 추함 등 새로운 생의 조건을 결정하는 지표로서 작용한다고 했다. 여기서 죽은 사람들이 공덕을 화폐로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의문이 생긴다. 죽은 사람들에게 화폐가 필요할까? 댓글로 사람들이 많은 추측이 난무했지만 필자가 눈여겨 본 댓글은 공덕을 모아 환생하기 위함으로 보았다. 공덕이 환생할 때 지위, 미, 부유함을 결정하는 지표로 작용한다면 최대한 많은 공덕을 모아 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기 위함이 아닐까 추측한다.
3.
당연하게도 죽음에는 선택지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죽음이 먼 이야기인 것처럼 살아간다. 오늘을 즐겁게 살아가더라도 내일 당장 불운한 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여생을 살아가다 늙어 죽을 수도 있다. 작가는 그런 독자들에게 죽음의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인공 고철수처럼 삶을 돌아보고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준다. 후회 하지 않는 삶을 살 수는 없겠지만 만화를 읽는 독자들에게는 소중한 시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