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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지는 감각을 마주하기

파도의 포말(글, 그림 라떼 / 네이버 웹툰 연재) 리뷰

2025-01-22 한유희

부서지는 감각을 마주하기

  <파도의 포말>은 전형적이지 않은 로맨스 판타지다. 분명 로맨스 판타지 장르에 속해있고 귀족도 영애도 나오지만, 그저 이야기를 위한 배경일 뿐이다. 나라는 혼란스럽다. 북부와 남부로 나뉘어 알력 다툼이 일어나고 있으며,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북부의 영애인 마가렛은 주변의 상황과는 상관없이 그저 자신의 사랑에만 몰두한다. 전운이 감도는 위태로운 상황은 오히려 자신의 낭만적인 사랑을 극대화하는 장치에 여길 뿐이다. <인어공주>의 주인공처럼 운명을 걸 수 있는 상대를 찾았다며 기뻐하던 마가렛은 가장 행복했던 순간 자신이 사랑하던 연인 스콜에게 살해당한다. 그에게 들었던 마지막 말은 저를 절대로 용서하지 마십시오.”. 어떤 목적과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가던 마가렛은 생의 마지막 순간 새로운 인물로 환생한다. 그리고 마가렛이 죽고, 7년이 지난 후 이야기는 시작된다.

소중한 것을 잃은 사람들

  매그가 된 마가렛이 살게 된 곳은 벤틀리 마을이다.물자가 넉넉하지도 않고, 많은 사람이 거주하지도 않지만, 그들은 스스로 풍요의 마을이라고 칭한다. 국경 가까이에 존재하는 탓에 마을은 북부로 편입되기도 하고, 남부 지역으로 남아있기도 한 위태로운 환경에 처해있다. 언제든 침략당할 수 있는 곳이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잃은 경험이 있다. 따라서 마을 주민들은 타자를 배척할 수밖에 없으며, 적극적으로 배제에 동참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지금의 일상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뿐이다. 작금의 현실을 만들어낸 마녀 마가렛을 원망하고, 자신들을 침범하고 있는 북부군을 증오하며 살아간다. 이런 자세를 지녀야만 그들이 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잃은 것들에 매몰되어 살아간다.

  사랑하는 것을 잃어 하자가 있는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주인공 매그, , 스콜 또한 마찬가지다. 예민한 귀로 인해 마가렛은 주류에서 빗겨나는 삶을 살게 된다. 결국 사랑하는 연인 스콜의 배신으로 죽게 되며, 사랑하는 사람을 용서할 수 없게 된다. 매그로 환생한 후에도 마음의 상처 때문에 목소리를 잃고 만다. 잭은 사랑하는 어머니가 화형 된 후, 삶의 의지를 잃는다. 타인을 병적으로 돕지만, 죄책감으로 인해 스스로를 돌보지 않게 된다. 스콜 또한 선천적으로 팔 한쪽을 쓸 수 없다. 비슷한 처지에 처한 마가렛을 사랑하게 되지만, 그녀의 목숨과 남부인들의 삶을 맞바꾸며 영웅이 된다. 그러나 스콜은 자신을 사랑해주던 연인을 영영 잃게 되고, 심지어 마가렛의 존재 또한 마녀로 상징되도록 한다. 그들은 소중한 것을 잃은 후유증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상처받은 사람들은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아갈 뿐이다.

녀와 마녀

  마가렛은 사랑으로 인해 죽고, 그녀의 죽음은 남북 전쟁을 발발하는 기폭제가 된다. 전쟁의 촉매제였던 그녀는 사람들에게 마녀가 된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한 가여운 아가씨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파도의 포말>에는 흥미롭게도 진짜 마녀가 존재한다. 진짜 마녀는 결국 마녀로서 화형당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녀가 누구인가, ‘진짜마녀였는가가 아니다. ‘마녀로서 존재할 수 있는가가 주요하다. 마녀라는 존재자로서의 의미보다 희생양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된다. 역사가 만들어낸 마녀마가렛과 진짜 마녀 레일라는 오히려 마녀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게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명분이기 때문이다.

  진짜 마녀인 잭의 엄마 레일라는 미래를 볼 수 있었고, 동시에 새로운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남편은 마녀인 그녀를 편견없이 레일라자체로 받아들인다. 그녀는 결국 모든 운명에 순응한다. 남편의 죽음과 자신의 죽음까지도. 아들인 잭의 선택으로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고, 이로인해 잭이 홀로 남을 것을 알고 있던 레일라는 잭의 안녕을 위해 마가렛의 환생을 안배한다. 잭의 잘못된 선택을 되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동시에 마녀였던 마가렛이 매그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매그의 존재는 모두에게 이전과는 다른 삶의 자세를 견지하도록 한다. 물론 평탄한 여정은 아니다.

직면直面을 선택하기

  마가렛이 매그가 된 후, 지속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언사다. 이 말은 단순히 매그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 모두와 마을 사람들까지 움직인다. 소중한 것을 잃고, 전쟁의 상흔으로 과거의 삶에 매몰된 그들은 스스로 변화를 택한다. 포기 대신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전쟁으로 인해 서로를 증오하던 북부인과 남부인들은 화재로 무너진 무대를 같이 세우고, 연극을 같이 관람하기도 한다. 결국 벤틀리 마을 사람들은 과거와는 다른방식으로 살기를 선택하며, 모든 것은 변화한다.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주인공 모두는 잘못된 선택을 했던 경험이 있다. 사랑을 위해서,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서, 혹은 최대한의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공통적으로 그들의 선택은 결국 누군가를 희생을 담보로 한다. 희생을 알면서도 선택했던 일들에 큰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그들은 너무 늦게 깨닫는다. 죄책감과 후회로 그저 주어진 현재를 버틸 뿐이었다. 하지만 또다시 선택을 앞둔 순간 그들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을 택한다. 자신들이 저지른 실수를 마주하고, 새로운 방식의 미래로 나아간다. <파도의 포말>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컷이 있다. 매그의 뒷모습을 통해 앞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이는 곧 내 앞에 다가선 모든 것들을 명확하게 바라보겠다는 의미다. 나의 선택으로 인한 모든 짐을 스스로 짊어지고 용서를 구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의 표명이다.

도가 치는 풍경

  어쩌면 <파도의 포말>은 따뜻한 동화처럼 보인다. 사랑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고, 결국은 새로운 사랑을 만나면서 행복하게 끝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캐릭터들의 면면을 살펴보다 보면 이야기는 ‘2024년의 우리들과 닮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전히 우리는 사람들의 명분에 의해 휘둘리며, 영향을 받는다. 또한 잘못된 선택으로 현실에 매몰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싸울 때싸우지 않아야 할 때를 명확히 구분한다. 벤틀리 마을 사람들이 전쟁에 동원되다가 스스로 무기를 놓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결국 자신의 의지로 스콜과 레오나의 편에 서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켜낸다. 202412, <파도의 포말> 속 상황과 대한민국의 복잡한 시국은 묘하게 평행선을 걷고 있다. 거친 파도도 종국에는 모두 포말이 되어 부서진다. 작금의 거친 상황도 분명 <파도의 포말>처럼 해피 엔딩이 되기를 소망한다.

필진이미지

한유희

문화평론가. 제 15회 <쿨투라> 웹툰부문 신인상으로 등단.
2021년 만화평론 공모전 우수상 수상.
경희대 K-컬처 스토리콘텐츠 연구원으로 웹툰과 팬덤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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