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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속 캐릭터 MBTI 심리 - ‘영감이 삶을 이끄는 원동력이다’ <정년이>의 캐릭터 윤정년

정년이(글 서이레, 그림 나몬 / 네이버 웹툰 연재) 리뷰

2025-01-24 윤정선

웹툰 속 캐릭터 MBTI 심리

- ‘영감이 삶을 이끄는 원동력이다’ <정년이>의 캐릭터 윤정년

  마이어-브릭스 성격진단 또는 성격유형지표라고 불리우는 MBTI는 개인의 성격을 외향성과 내향성, 감각과 직관, 사고와 감정, 판단과 인식의 4가지 기본 차원에 따라 16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MBTI는 사람들마다, 삶을 바라보는 독특한 선호가 있는 것에 주목한다. 독특한 선호가 서로 어우러져 독특한 성격을 만들어낸다는 것. 그래서 MBTI는 나와는 다른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매개체가 아닐 수 없다. 칼럼 <웹툰 속 캐릭터 MBTIi 심리>에서 MBTI라는 렌즈를 통해 웹툰 속 캐릭터의 심리를 흥미롭게 들여다보고자 하는 이유다.

  웹툰 <정년이>여성국극이라는 소재를 다룬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눈길을 끈다. 1950년대 대중의 엄청난 인기를 얻었지만, 어느 순간 급격히 쇠락해 간 여성국극은 소리와 연기, 춤이 하나로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다. 연기와 노래, 춤을 모두 완벽하게 소화하는 배우들이 국극 무대에 오를 자격을 갖는데, 배역의 성별과 상관없이 여성이 모든 역할을 한다는 점, 그중 가장 뛰어난 여성은 왕자 역할을 하는 배우가 되어 인기를 한 몸에 받는 동시에 많은 돈도 벌 수 있다는 점이 여성국극의 특징이다.

  주인공 소녀 윤정년은 여성국극 배우가 되기 위해 어느 날 홀연히 고향을 떠난다. 한때 판소리 천재로 불리던 엄마 채공선의 피가 정년에게도 흘러서일까? 고향 마을에서 소리 잘하기로 소문이 난 정년은 야심 찬 꿈을 안고 상경했지만, 세상은 결코 녹록지 않다. 연구생으로 들어가려는 매란 국극단의 단장에게서, ‘ 연기가 뻣뻣하다’, ‘소리에 가시가 서서 듣기 괴롭다는 등, 실망스러운 이야기만 듣는다. 단장은 이제 막 여성 국극 배우로서 한 걸음을 띄려는 정년이 낙담할만한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하지만 정년은 포기하지 않는다.

  아마도 정년의 MBTI는 외향적인 직관유형인 ENFP가 아닐까?

  이 유형의 사람들은 삶에서 만나는 곤경에 크게 자극을 받지만, 그 곤경을 해결하는 능력도 지닌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도 ENFP 유형은 다른 어떤 것들보다 자신에게 찾아온 영감을 소중히 여기고, 영감의 열정을 평생 추구하며 살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판단형의 사람들이 어느 한 목표를 설정하여 의식적인 의지력으로 꿈을 계획하며 실현해 나가는 것에 반해서,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직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충동적인 에너지에 의해 움직일 때가 많다.

  목포의 시장에서 모시조개를 팔던 정년이 어느 날 국극 배우가 되어 돈 많이 벌어서 돌아오겠다고, 고향을 떠나 상경한 것에서, 그 충동적인 에너지의 움직임을 만날 수 있다. 정년의 계획은 오직 자신의 열정뿐. 동네에서 소리 잘한다고 사람들로부터 칭찬받았던 경험은, 정년으로 하여금 낯선 곳으로의 모험을 용기 있게 떠나게 한다.

  또 국극 배우로 성공해서 부자 되는 것이 꿈이었던 정년이, 진정한 배우로 거듭나 성장해 가는 장면들도 인상적이다. 처음에는 무대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해서 돋보이는 것에만 신경 썼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정년은 주연배우가 빛나기 위해서는 그 뒤에 수많은 조연 배우들이 존재함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무대 위 주연 배우의 뒤에서, 보이지 않게 군무를 하며 움직이는 수많은 배우들의 존재를 보게 된 것이다.

  그렇다. 정년은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마침내 발견한다. 그것은 배우가 무대에 서는 일이 단순히 한 사람의 역할을 연기하는 것을 넘어서는 일임을 발견하는 것일 터. 배우가 무대에서 소리만 잘 뽑아내는 성능 좋은 기계와도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배우의 일이 곧 하나의 세상을 만드는 것임을, 정년은 깨닫는다.

  이렇듯 정년이 배우로서 성장해 가는 과정을 살펴보면 열정영감을 삶의 추동력으로 삼는 ENFP 성격 유형의 특성을 엿볼 수 있다.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생활을 선호하는 판단형 J유형이 보기에, ENFP와 같은 외향적인 직관 유형들은 뭔가 무계획적이고, 지루함을 참지 못하며 변덕을 부리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ENFP 성격 유형의 사람들에게 자신을 이끄는 삶의 계획이자 원칙은 바로 영감이다.

  이들은 그 영감을 삶의 원동력으로 삼아, 새로운 가능성에 늘 도전하여 삶의 반경을 확장시키는 사람들인 것이다. 정년이 자신 안에서 들려오는 직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무대 위에서 배우로서 자신의 가능성을 점점 넓혀간 모습이 그러하다.

  웹툰 <정년이>는 주인공 윤정년 외에도, 매력 있고 개성 있는 여성 캐릭터들의 등장으로도 주목을 끈다. 최고의 배우가 되고 싶은 꿈의 이면에 어머니에게 인정받지 못한 정서적 결핍을 가진 영서, 여려 보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 단단함을 품고 사는 주란 등, 이들은 정년이 꿈을 향해 돌진하여 마침내 성장한 것처럼, 당시 사회가 여성들을 가둬놓은 틀을 벗어나 각자의 상처를 극복하며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간다. 그래서 자신의 연기가 머리로 계산한 가짜 연기라고 생각하며 자조하는 영서에게 주란이 던지는 무대 위에는 진짜도 가짜도 없어. 사람이, ’가 있을 뿐이야란 말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정년이>는 여성국극이라는 독특한 소재 안에서, 개성 있는 여성 캐릭터들의 역동적인 관계성(關係性)진짜 나를 찾아가는 성장서사로 승화된 웹툰이다. 주인공 윤정년의 꿈을 향한 지치지 않는 열정, 영감을 찾아가는 탐구의 여정은, 그래서 성장서사를 튼실하게 세워가는 든든한 토대가 아닐 수 없다.

필진이미지

윤정선

만화평론가
<2021 만화평론공모전>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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