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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을 포획한 조직이라는 코스믹 호러, <민간인 통제구역: 일급기밀>

민간인 통제구역: 일급기밀(글, 그림 OSIK / 네이버 웹툰) 연재

2025-01-28 이현재

개인을 포획한 조직이라는 코스믹 호러, <민간인 통제구역: 일급기밀>

 

△ <민간인 통제구역: 일급기밀> (출처: 네이버웹툰)

상식 밖의 진실이 주는 공포

  수많은 문학 작품에서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은 종종 공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가령, 추리문학의 거장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 1890~1976)가 스스로 자신의 10대 작품 중 하나로 뽑았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Ten Little Niggers, 1939)는 등장인물이 차례대로 살해되는 과정을 통해 사건의 진위와 진실을 드러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드러난 진실의 중심에는 자신의 살인 충동을 해소하기 위해 판사가 된, 평범한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인물 워그레이브가 있다. 이렇듯 진실을 어렵사리 드러낸다고 해도, 그 진실을 이해하거나 받아드릴 수 없다는 상태는 종종 독자의 공포를 자극하는 힘을 만들어낸다.

  OSIK 작가의 <민간인 통제구역: 일급기밀>(이하 일급기밀’) 또한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실이 가진 공포의 힘을 작품의 주요한 동력으로 삼고 있다. <일급기밀>이 독자의 공포를 자극하는 방식은 작품의 주요한 배경이 되는 군조직의 시스템을 묘사하는 데에서 온다. <일급기밀>은 수사관 박두일의 시선을 카메라 삼아 작품 내 군조직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세세히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독자는 <일급기밀>의 주인공 수사관 박두일의 시선을 카메라 삼아 군조직 시스템의 작동을 따라가며, 박두일이 느끼는 시스템 앞에서의 무력감에 공감함과 동시에 공포를 느끼게 된다. 이는 러브크래프트의 코스믹 호러(Cosmic Horror)와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 『공포 문학의 매혹(출처: Internet Archive)

스믹 호러, 무력함이라는 공포

  코스믹 호러란 러브크래프트의 활동을 통해 정립된 공포 문학의 하위 장르로, 무심하고 광활한 우주와 그에 대비되는 인간 존재의 미약함과 무력함을 통해 공포 감정을 자극하는 공포 문학을 일컫는다. 러브크래프트가 직접 집필한 에세이 공포 문학의 매혹(Supernatural Horror in Literature, 1927)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인간 본성의 감정은 공포이며,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공포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다("The oldest and strongest emotion of mankind is fear, and the oldest and strongest kind of fear is fear of the unknown.")라는 문장을 통해 공포라는 감정을 정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공포에 대한 정의 중 가장 유명한 문장이기도 한 러브크래프트의 정의는, 훗날 S.T. 조쉬(Sunand Tryambak Joshi, 1958~)와 같은 러브크래프트 연구자들에 의해 무력함을 중추로 한 감정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평가는 종종 러브크래프트를 허무주의자 혹은 염세주의자로 분류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조쉬가 집필한 러브크래프트 전기 Against Religion: The Atheist Writings of H.P. Lovecraft(2010)에 따르면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을 철저한 유물론자로 여겼다고 한다.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을 허무주의자나 염세주의자로 오해하는 지인들에게 자기자신을 우주적 무관심론자(Cosmic Indifferentist)라고 표현했다고 하는데, 조쉬는 러브크래프트의 이러한 자기인식이 우주가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기계처럼 작동한다는 그의 독특한 믿음에서 기인했다고 주장한다.

  ‘인간과 무관하게 작동하는 기계적인 우주라는 러브크래프트의 믿음은 그의 작품 안에서 종종 인간의 무력감을 강조하는 공포로 표현되는데, 가령 그의 대표작 크툴루의 부름의 주인공 는 고대 종교의 흔적을 추적했으나, 주인공 의 노력으로 발견한 것은 세상을 멸망시킬 힘을 지닌 크툴루와의 조우였다. 주인공 는 크툴루와의 조우를 통해 고대 종교를 추적하던 그의 사명을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크툴루라는 거대한 존재를 통해 문명의 존재가 무의미해지는 무기력을 체험한다. 이러한 러브크래프트의 독특한 표현은 코스믹 호러(Cosmic Horror)라는 공포 문학의 하위 장르가 정립되는 바탕이 되었다.

△ <민간인 통제구역: 일급기밀> 73화 중 (출처: 네이버웹툰)

조직에 포획당한 개인, 개인에 무심한 조직

  <일급기밀>의 주인공 수사관 박두일 역시 어릴 적 형의 죽음을 목격하는 생애체험을 통해 사건의 진실로 다가가야겠다는 다짐을 갖게 된다. 그러나 박두일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고통스러운 생애체험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쏟아부었던 노력과, 그 과정을 통해 얻은 상식들과는 하등 관계없는 군조직 시스템의 운영 원리였다. <일급기밀>은 수사관 박두일이 자신이 가졌던 상식과 관계없이 운영되는 조직의 시스템과 그 운영 원리를 공들여 묘사한다. <일급기밀>의 주요 사건인 유영식 총기난사 사건과 관련된 부대원들의 진술들이 수집하는 과정에서 박두일은 군조직의 어떤 소속이 유영식 관련자들과 접촉을 막는지 상세하게 소개되는가 하면, 후반부에서는 군조직 각 소속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세세히 묘사된다.

  이는 작가의 데뷔작이었던 <민간인 통제구역>의 프리퀄인 <일급기밀>이 전작과의 차이점을 만드는 지점이기도 하다. 전작 <민간인 통제구역>이 각 인물의 무슨 위계에 속해 있고, 그 위계에 따라 어떤 순서를 따르게 되는지 추적하는 질서에 대한 묘사였다면, <일급기밀>은 각 조직의 어떤 소속들이 무슨 원리에 따라 낱낱의 부분을 이루게 되는지 탐방하는 체계에 대한 묘사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일급기밀>은 체계가 개인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냉혹한 원리를 따라간다는 것을 지적하며, 어떤 과정을 통해 조직에 속한 개인이 소외되고 처분되는지 차분하게 따라간다. 그리고 그 끝에서 우리가 확인하는 것은 조직이 개인의 삶을 포획하고 있지만, 조직은 개인과 무관하게 흘러간다는 무력함이라는 공포다.

  우리는 얼마 전 그 무력함이라는 공포를 목격할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개인에게 무심한 조직이 어떻게 개인과 집단을 위협하는지 체험할 수 있었다. 대통령이 종북좌파를 척결하겠다며 발동시킨 계엄령은 비상식적인 풍경을 넘어, 초현실적이기도 했다. 조직의 생태가 개인의 사정을 따라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괴리가 커질 때, 조직은 터전이라기보다는 목적을 실행하는 공포의 존재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우리가 조직을 위해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이고, 조직과 맞서야 할 것은 무엇일까. 현실에서 러브크래프트의 코스믹 호러를 목격한 우리가 <일급기밀>에서 건져야할 질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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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

경희대학교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 리서치앤컨설팅그룹 STRABASE 연구원. 「한류 스토리콘텐츠의 캐릭터 유형 및 동기화 이론 연구」(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한국콘텐츠진흥원) 「저작권 기술 산업 동향 조사 분석」(한국저작권위원회) 등에 참여했다. 2020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 2021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부문 신인평론상, 2023 게임제네레이션 비평상에 당선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