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적막감과 외로움이 시각적으로 표현된 : 톰 골드 <달과 경찰>

톰 골드의 그래픽노블 〈달과 경찰〉은 달에 홀로 남은 경찰관의 일상을 통해 인간의 외로움과 관계 단절, 기술 발전 속 감정의 부재를 그리며, 결국 인간적 소통의 필요성을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다.

2025-10-17 최기현

적막감과 외로움이 시각적으로 표현된 : 톰 골드 <달과 경찰>

『달과 경찰』, 톰 골드

올해는 추석 명절 연휴가 유난히 길다. 글을 쓰면서 밖을 보니 보름달이 보였다. 추석을 맞이한 보름달이 다른 날보다 무척 밝았다. 리뷰로 다루는 만화의 소재가 우연히 연결되었는데, 바로 이다. 톰 골드의 그래픽노블 <달과 경찰(mooncop)>은 달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다. 달을 떠올렸을 때 일반적으로 신비감이 느껴진다. 전래동화에 등장하는 떡방아 찧는 토끼나 중국 신화에 나오는 달의 여신 항아 덕분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우리가 떠올린 신비로운 분위기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달과 경찰>을 읽다 보면 그 기저에 적막함과 외로움이 흐른다. 만화는 본질적으로 시각을 중심으로 하는 매체다. 서사에서 외로움이 느껴지는 것 외에도 작품 속 시각적인 요소를 통해 달의 적막함이 고조된다.

먼저 달 표면의 거친 질감이 등장하면서 생명의 부재가 드러난다. 표면이 움푹 팬 크레이터가 계속된 회색 지형, 먼지로 뒤덮인 황량한 풍경, 거주자가 별로 없는 달 공간은 인간의 온기를 느끼기 어렵다. 거기에 어두운 밤하늘을 재현한 차가운 색감이 반복되면서 이는 단순한 배경 묘사를 넘어 작품 전체에 쓸쓸함을 더한다. 외로움과 적막한 분위기는 질감과 색감 등 시각적 요소들이 축적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정서는 달 공간과 등장인물을 대비하면서 인간의 존재감을 축소한다. 인간이 별로 살지 않는 달 공간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은 인간관계의 단절과 고립을 느낀다. 처음 달을 개척할 당시만 해도 많은 사람이 달로 이주하여 살았지만, 이제 달에서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살던 사람들도 지속적으로 지구로 이주하는 추세다. 경찰관은 달의 치안을 위해서 근무하지만, 이곳에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사건 사고도 그다지 일어나지 않는다. 사건이라고 해도 집을 나간 강아지를 찾아달라는 정도의 작은 사건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의 수가 점진적으로 줄어들면서 공간의 허전함이 표현되며 인물 없이 펼쳐지는 풍경 컷은 독자가 그 공간 속 외로움을 상상하게 한다. 화려한 액션이나 극적인 장면 대신 정적인 풍경의 반복을 통해 오히려 더 강렬한 정서적 효과가 나타난다.

주인공인 경찰관은 사건 없는 일상 근무를 이어가고, 제한된 만남 속에서 시간을 보내기에 당연히 외로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외로움이 깊어지면서 본서에 근무지 이동을 요청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요청마저 반려당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작가가 경찰관의 내면 심정을 직접적인 감정 발산으로 표현하지 않고 소소한 행동의 변화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인물의 내면을 설명하는 대신 행동과 상황을 통한 정서 변화를 드러내는 부분이 잔잔하면서도 꽤 인상적이다. 경찰관의 감정 변화를 관찰하는 것도 이 만화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지루한 일상의 반복, 로봇과 나누는 대화, 건물의 점진적 소멸은 모두 비언어적 요소로 기능한다. 특히 로봇의 등장과 건물의 사라짐이라는 대비는 의미심장하다. 인간의 흔적이 지워지는 동시에 인공적 존재가 그 자리를 대체하는 현실은 이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음식점의 키오스크다. 예전에는 카운터에서 사람과 대면하여 음식을 주문했다면 이제 사람과 대면할 필요 없이 기계와 대면한다. 변화를 편리하게 느끼는 젊은 세대가 있는가 하면,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운 어르신도 있다. 음식점의 키오스크 예를 들긴 했지만 지하철이나 고속버스터미널의 매표소나 영화관의 티켓창구도 없어진 지 이미 오래다. 편리함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사회양식은 인간의 흔적이 지워지고 인공적 존재로 대체되는 식이다.

작품 속 경찰관과 로봇과 대화는 소통의 형식은 갖추고 있지만 진정한 교감은 부재하다. 형식에 맞게 대화는 하고 있지만 프로그래밍 된 형식에 맞게 패턴이 출력되었을 뿐 감정의 교류는 없다. 로봇과 대화는 효율적이지만 감정은 부재하다. 말하자면 굳이 감정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Chat GPT가 그렇지 않을까? “~해 줘로 통칭하는 일방적인 대화 속에서 우리도 AI에게 감정의 교감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필요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제공받으면서 대화에서 느끼는 감정은 배제된 무심한 대화는 <달과 경찰>에 등장하는 로봇과의 대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인간의 외로움은 인공적 존재의 등장과 함께 작품 속 시각 외적인 요소로도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로움이 작품 전체를 덮지는 않는다. 도넛 자판기가 철수하면서 대신 생긴 도넛 미니 카페, 거기에서 일하는 직원의 등장은 모두가 떠나버린 달 공간에서, 외로움 속에서 소통이 회복될 것이라는 조그마한 실마리를 남겨놓는다.

개인적으로 만화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게임인데, <달과 경찰>을 읽으며 게임 하나가 생각났다. 닌텐도 게임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이다. 몇 번을 거듭했는지 모를 정도로 N회차 플레이를 하며 몰입하고 있는데, 이 게임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 중 하나가 바로 외로움이다.

100년 전 재앙 가논의 등장으로 황량하게 된 하이랄 땅은 몇 개의 마을을 제외하고 대부분 사람이 살지 않는다. 100년 동안 잠들어 있던 주인공 링크는 주어진 임무를 해결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황량한 하이랄 전역에서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하다 보니 우연히 사람을 만나는 것(물론 NPC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게임 속에서조차 사람과의 단절이 외로움으로 느껴지다니. <달과 경찰>을 읽으면서 이 게임이 생각난 것은 인간이 가진 외로움이라는 공통적 정서가 연결고리로 작용했을 터이다.

관계의 단절은 외로움을 불러일으킨다. 멀리 떨어져 살던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시간은 바로 명절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설이나 추석 명절을 계기로 일가친척이 모여 한동안 단절되었던 관계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시 이어진다. 만남을 통해 단절된 관계는 다시 이어진다. 이런 부분은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시간이 지나도 로봇이나 AI가 메꿀 수는 없을 것 같다. 

필진이미지

최기현

만화평론가. 인천문화재단 예술지원팀장 
2020 만화웹툰평론공모전 신인부문 가작
2021 만화평론공모전 우수상
2022 대한민국만화평론공모전 우수상


관련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