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만화, 그리고 재미 – 방구석 재민이
『방구석 재민이』, 뽈쟁이
사람들은 무언가를, 특히나 역사를 기록하길 좋아한다. 엄청난 영향을 끼친 큰 사건부터, 개개인이 겪은 사소한 일까지, 모든 것이 역사가 되고, 이를 기록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록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오고 가며 이야깃거리가 되어 준다. 이렇게 나누는 이야기는 교훈과 재미, 추억, 지식 등 여러 가지를 전달한다. 이런 기록은 책과 다큐멘터리, 영화, 그리고 일기로 존재한다.
하루에 겪은 일을 쓰고,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 당시 일을 회상하면서 추억을 되새기는 데 도움이 된다. 일기는 남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일을 적어 홀로 보관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겪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이들 또한 많이 있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이 이전보다 훨씬 크게 발달하면서 이런 자신이 겪은 일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미니홈피와 블로그가 만들어지며 개개인이 일기를 적을 공간이 생겼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다. 사람들은 댓글로 일기에 대한 소감을 남기고, 스크랩해 또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면서 글쓴이와 소통한다. 재밌는 일을 많이 겪거나, 평범한 일도 재미있게 적는 사람은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런 일기는 만화의 형식으로도 발달해 웹툰의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마린블루스>와 <낢이 사는 이야기>, <나이스진>, <생활의 참견> 등 수많은 일상툰이 나왔고, 크게 성공했다. 단행본으로 나오고, 웹툰 플랫폼이 성장하는데 밑받침이 되어주었다. 이 외에도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올렸으나 성공하지 못한 일상툰까지 합하면, 당시 일상툰은 현재 2020년대의 이세계, 회빙환 만큼이나 엄청난 인기를 끌고 웹툰 시장에서도 큰 위치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월이 흐르며 타 장르가 더 크게 흥하고, 영상 플랫폼의 발달로 나온 브이로그가 출연하면서 일상툰은 점차 줄어들었으나, 아직까지도 많은 웹툰 작가가 현재도 일상툰으로 독자에게 다가가고 있다.
현재 일상툰 장르를 찾는 독자들 사이에서 가장 화제인 작품을 뽑으라면 뽈쟁이 작가의 네이버 웹툰 데뷔작 <방구석 재민이>일 것이다. 이전에도 뽈쟁이 작가는 <뽈쟁이툰>이나 <뽈쟁이의 BBOL한 일상 만화>등 일상을 다룬 만화를 그리곤 했다. 다만 이게 주는 아니었다. 뽈쟁이 작가 데뷔 초창기부터 2023년까지의 주 장르는 게임, 그중에서도 인기 AOS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를 주로 다뤄왔다. 게임 패치, 대회 등 롤을 주로 다루고, 가끔가다 다른 게임이나 일상을 보여주었다. 뽈쟁이 작가 특유의 어설퍼 보이면서도 특징은 다 살리는, 못생김과 귀여움이 공존하는 그림체, 과장과 욕설이 섞인 개그, 딱 들어맞는 비유와 패러디는 일상툰의 성격에 딱 들어맞았고, 일상을 그리는 파츠의 경우 롤을 모르는 독자들도 많이 볼 수 있기에 호평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방구석 재민이는 롤에 대한 요소를 거의 배제한 채 일상만을 그리는 작품으로 나왔다.
방구석 재민이는 뽈쟁이 작가가 그동안 그려온 만화와 비교하면 다른 점이 상당히 눈에 뜨이는 작품이다. 작가가 데뷔 초창기 시절부터 계속해서 사용해 온 특유의 얼굴이 한 곳으로 뭉치고 목이 없는 캐릭터 디자인을 버렸고 사람과 닮으면서도 머리엔 풀이 자라있어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재밌는 디자인으로 바꾸었다. 작가의 대표작인 <뽈쟁이툰>이나 <뽈쟁이 LOL리그> 등, 이전에는 롤을 주로 만화 소재로 삼아왔다. 하지만 이번엔 게임 이벤트나 랭크, 게이밍 컴퓨터 세팅 등 컴퓨터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쉽게 공감할 만한 소재를 가져왔다. 기존 스타일에서 벗어난 과감한 도전은 기존 팬들에 이어 신규 팬들도 모으기에 충분했다.
게임 외에 또 다른 특징을 찾아보자면 일상 소재의 변화이다. 뽈쟁이 작가는 사회 초년생이던 시절부터 현재까지 10년이란 세월 동안 만화를 그리며 일상을 보여주었고, 자연스럽게 일상 속 겪는 일 또한 달라졌다. 과거 뽈쟁이 툰 시절, 뽈쟁이 작가는 신검을 받은 이야기나 여자친구와의 연애, 공익 신청 과정 등 20대 초반이 공감할 만한 내용을 위주로 일상을 그려왔다면, 방구석 재민이에선 아내와의 결혼, 주식, 처가 모임 등 20대 후반 사회인이 겪을 일상을 그려냈다. 뽈쟁이와 비슷한 나이대인 독자들은 작가와 함께 나이를 먹으며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일상툰 작가는 독자들의 공감을 받으면서 커간다. 만화를 통해 독자들이 공감할 만한 내용을 그려내고, 독자들이 이에 반응하면서 작가가 성장한다. 뽈쟁이 작가는 90년대 중후반생들의 공감을 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스낵 컬처’라는 말이 있다. 짧은 시간 동안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말한다. 웹툰도 일상툰이 대세였던 시절에는 스낵컬처였다. 하지만 웹툰 시장이 성장하면서 웹툰이 스낵 컬처라는 이미지는 점차 사라졌다. 짧은 스토리보다는 긴 대서사시를 그려내고, 높은 실력의 작화를 뽐내는 작가들이 많은 어시스턴트와 함께 작업하며 작화 또한 높아졌다. 시장이 변화한다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대서사시들 사이에서, 이전의 짧게 웃으며 볼 수 있던 웹툰이 그리워질 때도 있다. 길게 먹으며 배부른 코스요리가 아닌, 짧게 먹는 간식 같은, 배는 부르지 않아도 자주 찾게 되고 끊기 힘든 그런 재미. 뽈쟁이 작가의 만화는 그러한 재미를 보여준다.
<이말년 씨리즈>를 그린 이말년 작가는 이제 방송 스트리머로 전향해 웹툰을 더는 그리지 않게 되었고, <마음의 소리>로 유명한 조석 작가는 <마음의 소리 2>를 100화 연재 후 완결했다. 가스파드 작가의 <선천적 얼간이들> 또한 시즌 2를 끝으로 다시 한번 완결했다. 네이버 웹툰에서 일상 개그툰의 자리가 비는가 했지만, 뽈쟁이 작가가 이어받게 되었다. 한국 일상 개그 웹툰계에 큰 이름을 남긴 셋의 빈자리, 뽈쟁이 작가가 제대로 이어받을 수 있을까? 뽈쟁이 작가의 그림을 보면서 몇 번이고 웃은 나는, 그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고, 자격 또한 충분하다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