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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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힘을 믿지 않는 당신에게, <코다마 마리아 문학집성>

코다마 마리아 문학집성(미시다 요시하루, AK 커뮤니케이션즈) 리뷰

2025-11-24 김선준

문학의 힘을 믿지 않는 당신에게

『코다마 마리아 문학집성』, 미시다 요시하루

문학소녀에는 두 종류가 있어. ‘무엇을 쓸지에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과 어떻게 쓸지에 흥미가 있는 사람. 나는 후자야. 문학이라는 형식의 기술적인 면에만 관심 있어.”_5. 맹목의 문학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칠 때 가끔 형식내용의 구분에 대해 말하곤 한다. 세상의 많은 것들에는 형식적 측면과 내용적 측면이 모두 담겨 있다고. 물건에도, 사람에도, 예술에도, 언어에도. 네 쌍의 MBTI를 따라 세상과 자신을 보는 관점이 두 갈래로 갈라지듯, ‘형식내용중 어느 쪽에 더 관심이 있느냐로 사람을 분류할 수도 있을까? 가능하다면 그 비율은 어떨까? 누군가는 형식의 아름다움과 질서정연함에 매료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내용의 진정성과 변화무쌍함에 감화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형식과 내용 중 하나의 도구만으로 세상과 타자, 그리고 자기 자신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을까. 칸트의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형식 없는 내용은 맹목적이고, 내용 없는 형식은 공허하다.” 내용을 파악하는 것에만 익숙한 학생들에게 나는 형식의 중요성에 대해 알려주려 애쓰지만, 정말로 맹목적이고도 공허한 것은 그런 것을 가르치고 있을 때 날 바라보는 학생들의 눈빛이다. 작중 등장하는 한 대사처럼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애당초 문학에 무슨 의미가 있는데?” 

미시마 요시하루의 <코다마 마리아 문학집성>은 남녀 주인공, ‘코다마 마리아후에다 군을 통해 순수문학에 대해 말하는 학원 로맨스물이다. 코다마 씨는 문학부의 유일한 구성원이며 후에다 군은 문학부에 들어오기 위해 코다마 씨의 입부 테스트를 1년째 진행 중이다. 그 과정에서 코다마 씨는 후에다 군에게 비유, 어휘, 칭찬, 기호 등 문학의 형식적 측면들에 대해 가르친다.



이 점에서 작품은 학문으로서의 문학에 대한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교양만화의 성격을 띤다. 교양만화는 정보 전달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서사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캐릭터/관계 또한 선생 포지션과 제자 포지션 정도로 단순화시킨다. <코다마 마리아 문학집성> 역시 여기서 크게 어긋나지 않으므로 거창한 서사나 입체적인 인물 간의 긴장을 기대하고 읽는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코다마 씨와 후에다 군의 관계를 일방적인 사제지간 정도로 볼 수만은 없다. 후에다 군에게는 코다마 씨가 갖지 못한 능력이 있다. 코다마 씨는 서두의 대사처럼 문학의 형식에 대해선 빠삭하지만, 그 형식을 통해 표현할 내용은 갖고 있지 않. 반면 시력이 나쁜 후에다 군은 문학적 지식은 없지만, 눈앞의 흐릿한 현실을 자기 마음대로 재창조하는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 코다마 씨가 문학의 형식적 측면에서의 기술(技術)을 가지고 있다면, 후에다 군은 문학의 내용적 측면에서의 재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즉 형식과 내용의 관계가 그러하듯, 두 사람 또한 상보적인 관계로 이해할 수 있다. 코다마 씨는 자신이 가진 문학적 기술을 후에다 군에게 모두 가르쳐주면 그가 분명 대단한 문학가가 될것이라고 말한다. “나 같은 건 전혀 따라잡을 수 없는맹목적인 대 문학가가될 것이라고 말한다. 마치 자신이 성모 마리아라도 된 것처럼. 혹은 눈이 먼 호르헤 보르헤스를 보살피던 그의 비서이자 아내 마리아 코다마처럼.

 

여기서 <코다마 마리아 문학집성>은 로맨스물로서의 강점을 발휘한다. 똑똑한 냉미녀와 순수한 너드남의 케미스트리는 학원 로맨스에서 빠질 수 없는 공식이다. 서로에게 호감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다른 의미로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두 캐릭터 사이의 미묘한 긴장을 작가 미시마 요시하루는 섬세하게 표현한다. 이 작품의 탁월한 점은 그 미묘한 감정선이 각 화에서 다루는 문학적 지식과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1, ‘비유 연습의 도입부에서 코다마 씨는 이렇게 말한다.



목성 같은 이파리네. () 내가 비유해서 이 우주에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잎과 목성 간의 관계가 태어난 거야.”

여기까지만 보면 일반적인 교양만화처럼 표면적으로는 후에다 군에게, 이면적으로는 독자들에게 비유의 속성을 알려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몇 페이지를 더 넘기면 코다마 씨는 이렇게 말한다.

비유란 강력한 마법이기도 해. 어떻게 비유하냐에 따라 상대에 대한 자신의 가치가 정해지니까. 마치 사랑처럼.”

이런 식으로 각 화에서 다뤄지는 문학론적 지식은 후에다 군과 독자를 향한 가르침을 경유했다가, 코다마 씨와 후에다 군의 관계 속으로 은밀하게 안착한다.

하지만, 이 은밀한 경유의 목적은 단순히 로맨스를 강화하는 데 있지 않다. 더 중요한 목적은 문학에는 힘이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다. 앞의 대사에서처럼, 비유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관계를 창조해 낸다. 코다마 씨가 리타타리움이라는 단어를 지어내고 며칠 후 뉴스에선 새로 발견된 물질에 리타타리움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코다마 씨는 말한다. “우리가 말을 지어냈으니, 세상이 서둘러 의미를 만든 거야.” 문학이 실용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컴퓨터 연구회 스기하라 씨에게는 칭찬을 통해 문학의 힘을 보여준다. 코다마 씨는 새로운 문학 기호들을 지어내 후에다 군을 향한 수많은 마음을 만들어냄으로써 문학이 인류에게 새로운 마음의 종류를 만들어 진화를 촉구해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코다마 씨의 입을 빌려 작가 미시마 요시하루는 끊임없이 말한다. 문학은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새로운 마음을 만들어 낸다고. 엄밀히 말해 미시마 요시하루의 문학개념은 문학적 언어혹은 언어 자체로 그 범위를 뻗어 나간다. 그런 점에서 미시마 요시하루의 논지를 따라가다 보면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는 사피어-워프 가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혹은 김춘수의 <>을 떠올리게 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오늘날 인류는 형식에서의 특이점을 겪고 있다. 세계는 언어로 이루어져 있고, 우리는 그 언어의 형식을 점차 인공지능에 맡기는 중이다. 인공지능이 생성하는 언어의 양이 인간이 생성하는 언어의 양을 넘어서는 날이 온다면 문학은, 세계는, 인간은, 그리고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바뀌는 걸까. 형식의 주도권을 인공지능에 넘기고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내용을 지켜낼 수 있을까. 인공지능 시대에 문학과 예술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의미로 인간을 지키는 보루가 될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다른 무엇이 아닌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낸다는 증거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다시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러 집을 나선다.


필진이미지

김선준

만화평론가
2022 대한민국만화평론공모전 신인상 수상
2024 대한민국만화평론공모전 우수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