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린 ‘애국자’들의 이야기 – 웹툰 <조국과 민족>
『조국과 민족』, 강태진
웹툰 <조국과 민족>(강태진, 네이버웹툰)을 시작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제목인지도 모른다. 언제나 궁서체로 쓰여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이 진지한 제목은 독자가 선뜻 스크롤을 내리지 못하도록 만든다. 때로는 죽음조차 싱겁게 느껴지게 하는 가벼우면서도 활기찬 작품의 분위기를 생각했을 때, 이런 이유로 웹툰 앞에서 머뭇거리는 독자가 많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만큼 작품이 독자에게 던지는 문제의식은 묵직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사실 조국이나 민족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생경하다. 민족은 언제나 공기처럼 항상 우리 곁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한없이 낯설어지는 추상적인 관념이기 때문이다.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로 정의한 베네딕트 앤더슨의 논의도 함께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상상의 공동체’라고 해서 무시할 수 있는 허구라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그저 민족 역시 다른 여러 제도나 관습처럼 역사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드러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민족의 역사성을 인식한 다음에도, 민족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는 설령 우리가 민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는 없더라도, 민족을 운명이나 당위로 받아들일 필요 역시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족이라는 당위만을 강박적으로 추구하다 보면, 결국 민족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희생조차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지 모른다. 민족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무수한 억압과 강요는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무수히 반복되어 온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강태진의 웹툰 <조국과 민족>은 이처럼 우리 모두를 희생양으로 만들기를 주저하지 않는, 뒤틀린 애국자들이 빚어내는 우스꽝스럽지만, 서늘한 냉전 스릴러이다.

<조국과 민족> 1화. 작가가 ‘후기’에서 밝힌 것처럼, 우횡서로 적힌 문구는 조국과 민족에 대한 인물들의 뒤틀린 관념을 드러낸다.
<조국과 민족>은 1987년 군부 독재 정권하의 안기부 수사관들이 ‘빨갱이’와 싸우며 때로는 고문을 통해 빨갱이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사실적이면서도 우스꽝스럽게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인 안기부 수사관 박도훈은 전기 고문을 통해 자백을 받아내는 데 능숙한 ‘에이스’로, 그의 손에서는 평범한 운동권 학생도, 일본에서 온 유학생도 모두 손쉽게 간첩으로 변한다. 그가 고문을 준비하고 범인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어처구니가 없기에 웃기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평범했던 한 개인의 삶은 치명적으로 파괴되어 버리고 만다. 그러나 박도훈은 이 모든 것이 ‘빨갱이’와 싸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또 자신을 애국자라고 자찬하며 자신의 삶과 지위에 만족한다.
하지만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밀수에 관여하다 남파간첩 ’광명산‘에게 약점이 잡힌 다음, 순탄했던 박도훈의 인생에도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졸지에 이중간첩이 된 그는 어떻게든 자신의 진짜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막으려 하지만, 상사인 장세훈의 의심이 짙어지는 동안 언론 역시 고문 기술자인 그의 정체를 점점 더 추적해 들어오면서 그는 궁지에 몰리게 된다. 그로 인해 결국, 마치 아버지와 아들처럼 끈끈했던 장세훈과 박도훈의 관계 역시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수배를 당한 박도훈은 장세훈의 약점을 쥐고 협박하며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자 한다. 자신의 비밀을 틀어쥔 박도훈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조국과 민족만을 위한다는 장세훈의 가면 역시 조금씩 얇아지고 힘을 잃는다.
물론 조국과 민족을 위한다는 이들의 말이 전적으로 거짓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말은 자신이 언제나 조국의 편이며, 나아가 누가 조국의 편이고 아닌지를 알 수 있다는 확신에 근거해 있다. 그렇기에 자기 자신도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끝내 하지 못하는 이들은 조금씩 일상적인 도덕과 규범의 선을 넘어선다. 조국과 민족을 위한다는 생각은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나아가 내가 행하는 일이 모두 조국과 민족을 위한 일이라는 생각으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끝으로 이처럼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잔혹한 사건들이 지금의 우리와도 그리 멀지 않은, 어쩌면 우리에게 익숙하고 친숙한 시대의 풍경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조국과 민족>의 1987년은 <응답하라 1988> 그리고 <재벌집 막내아들>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 두 드라마가 모두 1987년을 한국 사회의 현재적 기원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조국과 민족>이 보여주는 1987년의 모습 역시 잊히고 지워진 한국 사회의 또 다른 기원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조국과 민족‘을 내세우며 새로운 희생양을 만드는 풍경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낯선 것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