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레인보우 (Mr. Rainbow)
일반인들과는 다른 종족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이반이라는 용어 속에는 일정한 피해의식이 느껴진다. 그동안 사회라는 구조 속에서 보아왔던 이들 동성애자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편견이 그만큼 심했던 것이다. 반면, 이반이라는 용어를 동성애자들 스스로 사용했다는 점은 스스로 정체...
2004-08-26
김성훈
일반인들과는 다른 종족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이반이라는 용어 속에는 일정한 피해의식이 느껴진다. 그동안 사회라는 구조 속에서 보아왔던 이들 동성애자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편견이 그만큼 심했던 것이다. 반면, 이반이라는 용어를 동성애자들 스스로 사용했다는 점은 스스로 정체성을 자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며, 이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가진다. 그렇게 본다면, 일본의 동인지 문화에서 건너와 정착된 용어인 야오이라는 장르 속에 나타나는 동성애와는 구분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동성애자들이 실제 느끼는 자신들의 성적 정체성은 단순한 애정의 과정이라기보다는 본질과 자각에 대한 문제가 아닐까. 송채성의 『미스터 레인보우』는 이처럼 단순히 소재적인 측면을 넘어 보다 동성애라는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적절한 시점에서 등장했다. 작가가 보여주는 남성 동성애자의 시선은 야오이의 그것보다 인간적인 측면에 더욱 진지하게 다가서고 있다. 단적으로 대학동창인 민영과의 관계가 그러하다. 여자동기들뿐인 유아교육학과에서 특별날 것 없는 외모의 민영은 덕구와 매우 편한 친구 사이였다. 그런 그들의 우정이 깨어진 것은 덕구를 향한 민영의 마음이 사랑으로 변한 시점에서부터이다. 남자에만 관심을 가진 덕구의 성적 정체성이 여성에 대한 무관심으로 반증되어 그것이 오히려 편하게 지내된 여자친구에게 연애감정을 불러일으키게 만든 것이다. 이처럼 남성동성애자와 평범한 여성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심리 변화는 야오이물에서는 쉽게 드러나지 못한 부분이다. 심하게 이야기한다면 야오이는 그저 동성애를 하나의 소재로 삼아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풀어갈 뿐, 이처럼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묘사에는 둔감하기 때문이다. 한편 밤에 일하던 업소에서 동료 게이들에게 민영이 받았을 상처를 이야기하며 “그런 상처, 또 다시 주고 싶진 않아”라고 이야기하는 덕구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동시대를 살아가면서도 무심했던 타자(他者)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작가는 뒤집어진 우정과 사랑의 관계를 여기서 끝내지 않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덕구의 정체성을 민영에게 직접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다시한번 일반이 이반에게 느끼는 거리감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다시금 너의 좋은 친구가 되고싶어”라며 손을 내미는 덕구의 마음에 냉정한 거절의 입장을 취하는 민영의 모습. 이를 통해 작가는 상처 입었을 친구, 상처입었을 사람 그것은 곧 민영인 동시에 덕구 자신이었으며, 동시대의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반이기 때문에 일반이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상처와 경험, 그것을 통해 현대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겪어야만 하는 감정의 상처 혹은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 등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밖으로 드러난 감정으로 인해 상처받은 경험이 민영과의 관계에서였다면, 미처 말하지 못하여 무심한 시간을 보내야 했던 것은 고등학교 동창인 승재와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고등학교 시절, ‘그 무렵의 인간관계란 건 좀더 솔직 담백해서 자존심쯤 버리고, 한발 먼저 다가가면 거리를 좁혀 나가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친하게 지내려는 덕구의 마음은 고스란히 승재에게 전해진다. 그러나 자존심마저 버리고 다가선 이에게 일반인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에 두려워했던 덕구. 그 두려움이 도리어 둘 사이의 관계를 멀어지게 했다는 사실은 10년이 다되어 가는 시점에서야 밝혀지게 된다. 갑작스레 다가온 작가의 죽음으로 아쉽게도 『미스터 레인보우』는 미완성으로 끝을 맺고 있다. 너무나 젊은 나이에 떠나버린 작가에 대한 안타까움만큼이나 아직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그들의 사랑 역시 안타깝다. 한 발자욱만 물러서서 보면 단지 방법만 틀릴 뿐, 내용은 다르지 않음을 사람들은 잊고 살아간다. 남녀 간의 사랑이든 혈육 간의 사랑이든 본질은 ‘인간’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언제쯤에야 알 수 있을까.
김성훈
만화 칼럼니스트
《만화 속 백수이야기》, 《한국 만화비평의 선구자들》 저자
http://blog.naver.com/c_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