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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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석의 나라

[기생수]로 국내에 알려져 있는 일본 만화작가 Iwaaki Hitoshi의 작품들은 독자들에게 현실을 벗어난 ‘만화 보기’를 선사하지만 그 뒷맛은 다시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4권으로 완결된 이 작품 [칠석의 나라]는 짧지만 탄탄한 짜임새의 이야기 구조로 독자를 흡입한...

2004-08-27 주재국
[기생수]로 국내에 알려져 있는 일본 만화작가 Iwaaki Hitoshi의 작품들은 독자들에게 현실을 벗어난 ‘만화 보기’를 선사하지만 그 뒷맛은 다시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4권으로 완결된 이 작품 [칠석의 나라]는 짧지만 탄탄한 짜임새의 이야기 구조로 독자를 흡입한다. 국내에서도 번역 출판된 ‘그레이엄 핸콕’의 [신의 지문-사라진 문명을 찾아서]를 본 독자라면 이 만화의 이야기에 쉽게 빠져들게 된다. ‘핸콕’의 주장은 정통적인 역사 계보에서 초기를 차지하는 고대 이집트 문명을 훨씬 더 초월하는 초고대문명에 대한 접근으로 이루어진다. 그 접근 방식이 고고천문학, 지질학, 고대신화의 과학적 분석 등에 의한 방대한 자료에 의한 것이라 쉽게 반론하기가 불가능하다. 세계의 고대 신화를 분석하기 위해 전 세계를 여행하며 흔적을 꿰어 맞춘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고대문명 이전에 알 수 없는 선행 문명이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게다가 전 지구적으로 다가왔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역사와 문명 발전의 단계를 거스르는 그의 증거 자료들은 누군가로부터 주어진 문명이라는 결론 외에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한 이야기 중 하나의 조각을 담아 엮어낸 이야기가 이 만화 [칠석의 나라]이다. 일본의 시골 마을인 마루카미 고을에서는 다른 지방에서도 행해지는 ‘칠석제’를 전통적으로 치루고 있다. 마을만의 축제였던 이 행사는 현재에 이르러 베일을 벗게 된다. 마루카미 혈족에게 전승되는 신비한 능력의 비밀을 찾는 마사미 교수와 또 다른 후예 요지는 마을이 아닌 도시에서 살았지만 자신의 능력을 인지하게 된다. 그 능력이란 마음만으로 구체 형태의 에너지를 만들어 고체에 접촉시키면 그 질량만큼 소멸시킬 수 있는 것이다. 마을의 혈족에게만 전승된 이 능력과 마루카미 마을의 칠석제 진행 방식을 ?아 마을로 간 주인공 일행은 그 행사의 뿌리가 초고대에 하늘에서 내려 온 또 다른 지적 생명체와의 재접촉을 위한 신호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작품 속에서는 다른 생명체의 공간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을 ‘창을 여는 자’ 혹은 ‘손이 닿는 자’로 표현한다. 그 영역을 가본 이가 없기 때문에 그것은 공포로 사람들에게 작용한다. 그렇게 남겨진 공포와 초능력에 의한 놀람은 흔히 경외감으로 압축되고 이것은 일반적인 신앙의 핵심과 같다. 수천 년 간 지속된 이 억눌린 공포, 접촉의 중단, 의구심 등이 작용하여 인간은 새로운 선택을 한다. 작품 말미에 지금까지 후예 중 가장 강력한 능력을 지녔던 요리유키는 그 능력이 그저 대상을 소멸시키는 재주가 아니라 지구의 현재와 창밖의 세계를 이어주는 이동수단으로 판단한다. 결국 자기 자신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이동되어 지도록 칠석제 기간에 산 정상과 함께 자신을 소멸시켜 버린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죽음, 혹은 사라짐으로 남지만 그 날 이후 마을은 전통을 계승하며 살아가게 된다. 인류 문명이 자생적인 것인지 혹은 타의적인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문학에서 다루어지는 사례가 많다. 만화로 한정한다면 이현세의 [아마게돈]이 그렇고 영화 [맨 인 블랙] 역시 마찬가지 소재이다. 가보지 못한 곳,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대상을 한정적으로 말 할 수는 없다. 인류의 역사는 짧고 우주의 역사는 길다. 지구는 우주에서 하나의 작은 부분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우주 공간과 유사 이전의 시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상상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 날들 속에 만화에 그려진 무한한 상상의 이야기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이야기들은 없을 것이다. 지금도 창밖의 세계는 창 안의 세계보다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