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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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H (러쉬)

물론 모든 집단이 그렇겠지만, 가까이서 직접 접하기 어려운 집단, 특히나 폭력 조직에 대해선 많은 사람들이 환상 내지는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보기 마련이다. 다른 어느 곳보다도 과장과 억측이 심하다는 점도 이를 부추기고 있다. 그 결과 폭력 조직을 바라보는 많은 ‘선량...

2004-06-07 양준용
물론 모든 집단이 그렇겠지만, 가까이서 직접 접하기 어려운 집단, 특히나 폭력 조직에 대해선 많은 사람들이 환상 내지는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보기 마련이다. 다른 어느 곳보다도 과장과 억측이 심하다는 점도 이를 부추기고 있다. 그 결과 폭력 조직을 바라보는 많은 ‘선량한 시민’의 눈엔, 이들이 때로는 과거 무협물에서 볼 수 있는 ‘문파(門派)’나 ‘방파(邦派)’ 정도로 오인될 여지도 충분히 있다. 우선 이들의 문제 해결 방식은 법이나 도덕 혹은 사회 규범의 차원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주로 “폭력(暴力)” 혹은 “무력(武力)”이다. 무협물도 그러하지만, 폭력 조직을 다룬 만화나 소설, 영화, TV 드라마 등에 있어서 모든 은원(恩怨) 관계는 자신이 직접 해결하는 것이 일종의 원칙(?)처럼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들에게 있어서 경찰, 혹은 검찰이나 사법부 같은 공권력은 그저 무력 외의 또 다른 ‘동원 가능한 수단’ 정도의 역할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 이들 집단을 무협물에서의 ‘문파(門派)’나 ‘방파(邦派)’로 오인하게 하는 요소 중의 하나는, 일제(日帝)에 의한 식민지시기를 거치면서 공권력과 일본 제국주의를 거의 동일한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 것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 즉 공권력(公權力)이 곧 정의(正義)를 대변하는 것이 아닌 상황을 오래 겪으면서, 권력을 폭력의 다른 의미 정도로 여기는 문화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일제시대 말엽에 김두한, 시라소니 같은 인물들이 이른바 “협객(俠客)”으로 불리며 지금의 조직 폭력배들이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폭력 조직을 다룬 만화, 특히 우리나라의 성인 만화는 상당한 부분에 있어서 과거 무협물의 구조를 전형적으로 답습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 작품 『러쉬(RUSH)』에 있어서도 이 점에 있어서는 예외가 될 수 없다. 우선, 주인공인 유 신의 출신과 개인적인 능력에 대해 살펴본다면, 재개발 예정 지역에서 시장 상인인 할머니와 가난하게 생활하던 그는 군 제대와 동시에 뜻하지 않게 폭력 조직에 몸담게 되는데 군에서 배운 특공무술로 조직 내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함과 동시에 잘생긴 외모로 조직 두목의 딸과 결혼까지 약속하게 된다. 그러나 믿었던 친구에게 배반당하고 천신만고 끝에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아 복수를 결심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다른 사람들의 충성을 이끌어내는 천부적인 리더십도 발휘하는데, 이러한 모습들은 바로 모든 면에서 만능인 영웅(英雄)의 캐릭터 그 자체인 것이다. 여기에 그가 복수를 위해 전혀 제도권의 힘을 이용하지 않고 오로지 폭력을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점 역시 무협물의 전형적인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며, 유 신의 절대적인 조력자인 왕대봉이 비록 폭력 조직의 두목이긴 하지만 스스로 협의(俠義)에서 어긋나는 행동은 하지 않는 호걸이라고 자부하는 점 등은 그들과 대척점에 서 있는 이창희와 그를 돕는 무리들이 온갖 불법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 비겁한 무리들이라는 점과 맞물려 마치 정파(正派)와 사파(邪派)가 대결하는 것을 연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