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세계의 이야기 (異界錄(이계록))
중국에 『요재지이(聊齋志異)』라는 책이 있다. 민간에 전해지는 온갖 신기하고 괴이한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일종의 기담집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청나라 사람 포송령이 썼다고 전해진다. 모두 12권으로 이루어진 『요재지이』는 중국 전기문학의 금자탑이라 할 만큼, 그 분량...
2004-05-19
하성호
중국에 『요재지이(聊齋志異)』라는 책이 있다. 민간에 전해지는 온갖 신기하고 괴이한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일종의 기담집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청나라 사람 포송령이 썼다고 전해진다. 모두 12권으로 이루어진 『요재지이』는 중국 전기문학의 금자탑이라 할 만큼, 그 분량과 다채로움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서유요원전, 암흑신화, 공자암흑전 등으로 이미 공포, 괴기 만화계에서 나름대로의 입지를 굳힌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그의 주된 관심사 중의 하나였던 중국 괴담을 기반으로 한 만화 기담집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하여 1987년 5월, 후타바샤의 「만화 액션」에 단편 『유산비기』를 싣게 되는데 이것이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간헐적으로 연재되며 오랜 기간에 걸쳐 한 권씩 단행본이 발매되고 있는 모로호시판 『요재지이』인 『제괴지이』의 제 1작이다. 이후 『제괴지이』 시리즈는 두번째 이야기 『견토』에서 처음 등장한 도사 오행선생과 그 제자인 아귀가 활약하는 에피소드들과 중국의 민간전승, 야사, 정담 등을 바탕으로 작가가 창조한 에피소드들을 섞어가며 연재를 계속했다. 89년에 제 1집인 『이계록』이, 이어 91년에 2집 『호중천』이 묶여져 나왔으나 그 이후 연재가 중단되었고, 97년부터는 연견귀(오행의 제자 아귀의 성장한 모습)를 주인공으로 삼아 연재를 재개하여, 99년 3집 『귀시』가 발매되었다. 이후 다시금 연재가 중단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제괴지이』의 매력은 무엇보다 중국 지괴(志怪)소설의 테이스트를 충실히 재현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따라서 지괴소설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이 곧 『제괴지이』의 매력을 이해하는 것에 통하리라고 생각한다. 일찍이 중국 한나라 말기에 무속이 크게 성행함에 따라 귀신의 도가 번성하였고, 또한 소승불교의 유입으로 인한 불경의 고사 등이 이에 혼합되어 그 근간을 이룬 지괴소설은 서기 400년 경 육조시대에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지괴소설은 한대의 신선담을 계승한 신괴류, 도교나 불교 등의 설화가 기반이 된 종교류, 그리고 인물이나 사물에 관한 기록을 담은 세속류로 나뉘는데 『제괴지이』는 이 세 종류의 에피소드가 골고루 섞여있는 편이다. 지괴소설에 실린 이야기들은 인간의 상상력이 십분 발휘된 것으로서 풍자와 해학을 통하여 인간의 한계와 당시의 시대상을 비판하기도 했는데,『제괴지이』는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도 당대의 지괴소설 못지 않은 심도를 지니고 있다. 작가가 그려가고자 하는 시대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창작에 임하고 있음이 드러나는 부분일 것이다. 이러한 점은 작화상에서 풍물의 묘사를 봐도 알 수 있는데 각 시대별로 인물들의 복식에 차이가 존재하며, 실존했던 군주의 묘사 등에서도 실제의 자료를 참고하여 고증을 살리고 있는 듯 하다.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그림이 썩 뛰어난 작가는 아니지만, 그것을 보충 할 만큼의 해박한 지식과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 이야기들은 그의 그림이 아니면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로 느껴질 만큼 독특한 분위기와 재미를 갖고 있어, 그림에 대한 논의 자체를 함구시켜 버리는 것 같기도 하다. 포송령이 수백편의 이야기를 창작하는 데에는 그 소재의 확보에 있어 많은 이들의 도움이 존재했다고 전해지는데, 현대에 그것도 중국본토도 아닌 이국 땅에서 또 하나의 『요재지이』를 창조하겠다는 작가의 의지는 일견 터무니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모로호시 다이지로"라는 귀재의 업적을 돌이켜보면, 그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으리라는 기분이 드는 것도 부정할 수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