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엄마손이 속삭일 때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은 무척이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선입견이나 편견은 차치하고서라도 자칫 작가의 관점이 한 쪽으로 치우치기라도 하면 독자로부터 사회적 차별이라는 민감한 항의가 제기될 수도 있는 문제이기에 상상력...
2008-08-01
김욱성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은 무척이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선입견이나 편견은 차치하고서라도 자칫 작가의 관점이 한 쪽으로 치우치기라도 하면 독자로부터 사회적 차별이라는 민감한 항의가 제기될 수도 있는 문제이기에 상상력의 자유로움을 전제조건으로 하는 창작이라는 영역에 있어 상상력을 제한하는 소제의 제약이 너무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비장애인인 작가가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그린다는 것 자체가 자신이 체험할 수 없는 감정, 경험, 관계 등을 표현하는데 있어 현실적으로 무척이나 힘든 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 작품의 1부 격인 “당신의 손이 속삭일 때”에서의 노하우를 잘 살려내어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훌륭한 감성을 탄탄한 세부묘사를 통해 다시 한 번 잔잔하게 펼쳐낸다. 전작에서의 포인트가 장애인 미에코와 비장애인 노베가 서로를 배려하고 난관을 극복해가는 사랑이야기에 맞추어져 있었다면 2부에 해당하는 “엄마 손이 속삭일 때”는 점점 성장해가는 딸 치츠루와 청각장애인 엄마 미에코간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이야기이자 청각장애인 엄마 미에코의 양육기에 포인트가 맞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리즈를 읽어 가면서 점점 더 그 생각이 굳어져 갔는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이런 만화가 나올 수 없는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일본에 비해 아직도 장애인에 관한 편견이 강한 우리나라로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무관심과 무지 속에 터부시되고 있는 문제겠지만 언젠가 개선되어야 할 문제임엔 분명하다. 만화왕국이라 불리는 일본에서도 장애를 다루는 것은 굉장히 금기시되는 소재로 알고 있는데 어찌 됐든 이런 시리즈나 그 유명한 명작 “머나먼 갑자원”, “사랑의 집”, “해피” 같은 작품이 나오는 걸 보면 어쨌든 시작은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2학년이 되면서 도쿄로 전학 오게 된 치츠루의 반에는 ‘히쭉이’라 불리며 아이들이 피하는 장애인 아야꼬가 있었다. 귀가 들리지 않는 엄마인 미에꼬를 보면서 자라난 치츠루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야꼬에게 다가가 침을 닦아주지만 그 일을 계기로 반 아이들은 치츠루를 멀리 하며 아무도 다가서지 않는다. 한 명의 친구도 생기지 않고 학교에서 점점 소외되어 가는 치츠루를 보면서 가슴이 아파 견딜 수 없던 미에코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장애가 있는 사람과 가까이 지내선 안 돼’라는 자신을 부정하는 말을 치츠루에게 해버린다. 그러나 치츠루는 꾹 참고 견디어낸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놀림 받고 괴롭힘 당하는 아야꼬에게 해맑게 다가가 안아주면서 ‘꼭 친구가 생길거야’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한 편 미에코는 치츠루의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전학수속을 결심하지만 아야꼬의 엄마가 찾아와 ‘저희 아이 때문에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자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자신의 모습이 아야꼬였음을 떠올리고 치츠루에게 “장애가 있는 삶과 가까이 지내선 안 돼”라고 말 하며 스스로를 부정했던 일을 후회하게 된다. 계속되는 따돌림 속에서 벌어진 운동회, 치츠루는 아무도 응원해주지 않는 달리기 시합같은 건 나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린다. 그러자 미에코는 치츠루를 일으켜 세우고 계속 따라가며 수화로 ’파이팅‘이라고 외치며 열심히 응원한다. 그 모습을 의아하게 여긴 치츠루의 반 아이들은 치츠루 엄마가 왜 저러는지 선생님에게 묻고 치츠루가 1등으로 골인하면서 서서히 아이들의 태도도 달라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