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요즘 젊은 애들은 어딜 가든 두세 시간 만에 도착하는 걸 아주 당연히 여기지만 거기엔 그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 애쓴 수많은 인생과 막대한 시간이 쌓여있단다. 그걸 잊어서는 안돼, 자신의 ‘편안함’의 대가는 반드시 누군가가 대신 떠맡고 있기 마련이지, 커다란 기술에 묶...
2008-07-31
안성환
“요즘 젊은 애들은 어딜 가든 두세 시간 만에 도착하는 걸 아주 당연히 여기지만 거기엔 그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 애쓴 수많은 인생과 막대한 시간이 쌓여있단다. 그걸 잊어서는 안돼, 자신의 ‘편안함’의 대가는 반드시 누군가가 대신 떠맡고 있기 마련이지, 커다란 기술에 묶여있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잊어버린 다는 건, 정말로 무서운 일이란다.” 만화책들을 읽다 보면 내 눈을 확 뜨이게 하는 천재들을 아주 가끔 발견하게 되곤 하는데 그럴 때의 느낌은 한 단어로 딱 꼬집어 표현하기가 어려운, 아주 미묘한 느낌이다. 굳이 추렴하자면 “경외감” 또는 “경이스러움” 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무리 작가의 재능이 뛰어나도 상업적으로 팔리기 위해 제작된 작품은 어느 정도의 규정화된 특성이랄까, 정해진 규칙 같은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주 가끔씩, 일반적인 만화단행본의 특징과 형식, 내용을 완전히 뛰어넘어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형식을 창조해내는 천재들의 작품이 있다. 그런 작품들이야 말로 완전히 ‘새로운 세계’다. 이번에 애니북스에서 출간된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마녀”는 긴 스토리의 장편으로 이루어진 만화가 아니라 세계 각국에 존재하는 신비한 능력을 지닌 여인들을 ‘마녀’라는 역사적인 하나의 주제로 묶어 만화화한 묵직한 단편집이다. 일본 만화계에서 ‘젊은 천재’라 칭송 받고 있는 ‘핑퐁’의 마츠모토 타이요가 극찬하고,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로까지 제작되어 인기를 끌고 있는 ‘충사’의 우루시바라 유키가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하는 천재작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마녀”는 놀랍게도 펜을 거의 쓰지 않고 볼펜만으로 그려낸 작품이라고 한다.(실제로 작품을 읽어보면 이것이 정말 볼펜만으로 그린 작품인가 싶을 정도로 세밀하고 정교하며 아름답다, 정말 놀랍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이가라시는 졸업 후 진로가 정해지지 않자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정말 세상에 천재는 존재하나 보다. 단순히 작화에서만 작가의 천재성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마녀”는 모든 에피소드 에 등장하는 ‘신비로운 힘을 가진 자’로 통칭되는 그녀들의 능력이 ‘세계의 비밀을 꿰뚫고 있는 자’의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에게 ‘마녀’라 불리며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그녀들이 무언가를 인위적으로 조작하거나 억지로 이루려 하지 않고 그저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같이 호흡하고 느끼면서 동화되어 살아가는 ‘자연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들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 삶의 비밀과 대우주의 법칙이 숨어있고, 작가는 아주 간단한 대사 한마디나 멋진 그림 한 컷으로 그녀들을 통해 구현되는 비밀스러운 진리를 하나 하나 우리에게 보여준다. 고도화된 문명사회에서 살아가는 현재의 우리로서는 매우 접하기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예전엔 시골의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알고 있던 민간요법처럼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자연과 동화되는 것이다’라는 단순하지만 거대한 진리를 천재작가는 ‘마녀’라는 존재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