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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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토란테 파라디조>&<젠떼>: 던져진 세상 안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꿈꾸는가

2020-03-23 손유진



<리스토란테 파라디조>&<젠떼>: 던져진 세상 안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꿈꾸는가

 <리스토란테 파라디조>는 이탈리아에서 일어나는 로맨스를 그린 작품으로, 중년의 신사가 소재로 등장한다. 재혼한 어머니에게 앙갚음하기 위해 로마로 올라온 ‘니콜레타’는 어머니의 새 남편이 운영하는 식당 ‘카제타 델로르소’의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니콜레타’가 종업원으로 일하는 친절한 노신사 ‘클라우디오’를 좋아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이 스토리의 골자이다. <젠떼>는 ‘리스토란테 파라디조’의 프리퀄 격인 작품으로, 카제타 델로르소의 종업원들이 겪는 드라마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작가인 오노 나츠메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삶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오노 나츠메의 세계관은 살아 숨쉬듯 생생하다. 각각의 인물들은 자신만의 서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들의 서사를 타인과 공유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던져진 세상에 대한 표현이다. 현실적인 공동체를 만들어냄으로써 작가는 우리의 실제 삶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본 작품들 속에서 리얼함을 드러내는 장치들은 다양하다. 우선 배경인 이탈리아의 국민들이 가지는 국민성이 재현되었고, 인물들의 관계는 유기적이며, 인물들의 정서는 과장되지 않고 진실된 모습을 띤다.

 첫번째 장치는 작품 정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즐거움을 추구하고 낙천적인 성향을 가진 이탈리아인들은 작품의 주제인 사랑을 표현하기 적절한 구성원들이다. 그들은 스스럼없이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다. 이러한 인간적인 이야기들은 작품의 진정성을 부각시킨다.

 두번째 장치는 구현하기 매우 어려운 것으로, 작가의 예리한 관찰력을 보여준다. 각 인물은 다른 인물들에 관해서 다양하고 다면적인 감정을 갖는다. 예를 들어, 리스토란테의 셰프인 ‘테오’는 동료인 ‘푸리오’에게는 관대한 모습을 보이나 다른 셰프인 ‘반나’와는 적대적이다. 그러나 테오가 반나에게 가졌던 반항심은 점차 호감으로 바뀌며 반나에게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며 친밀감을 쌓게 된다. 여기서 아버지와 테오의 관계와 테오와 반나의 관계가 중첩된다. 반나는 테오가 자신에게 호감을 느끼는 이유가 자신과 테오의 아버지가 닮았다는 점이라 생각하고 갈등을 빚는다. 반나가 떠난 후 새로 들어온 푸리오에게 테오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 관계에 대한 노력하게 된다. 이렇듯 세 인물의 관계는 서로 상호작용하며 연속성을 띤다.


 캐릭터 간의 서사가 이어지게 만드는 것은 지대한 노력과 센스를 필요로 한다. 설정의 균형을 맞추고 캐릭터 간 역할 배분이 잘 이루어져야 한다. 작중 인물들의 서사는 하나라도 허투루 쓰이지 않는다. 스쳐가는 조연마저 메인 캐릭터와 깊은 관계를 맺으며 서사를 만들고 이야기와 어우러진다. 각자에게 배분된 서사는 동일하되 각 캐릭터의 비중은 다양하고 그것이 이야기의 굴곡을 만든다. 오노 나츠메는 사람에 대한 통찰력을 통해 이를 구현해내고 있다. 특히 작품 속 대사들은 그가 인간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보여주는 현실적인 언어이다. 이것이 바로 세번째 장치이다.

 여느 만화가 그러하듯 두 작품의 핵심은 대사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한 가지 집중해야 할 점은 그 대사가 대단히 현실적이고 동시에 깊이 있다는 것이다. 작품 속 대사와 감정들은 절대 과장되는 법이 없다. 그들은 현실의 언어로 말하고 있다. 작은 호의로 갑작스레 사랑이 전개되지도 않고 캐릭터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 또한 만화적이기보다는 예의 바르고 점잖다.

 <젠떼>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사비나’는 남편의 불륜에 괴로워하며 거리에서 눈물을 흘린다. 그에 마음이 동한 바람둥이 ‘리초’는 위로를 건내지만 사비나는 “날 울린 남자한테 없었던 게 당신한테는 있을 거라고 착각하지 말아요.”라며 받아 친다. 상대의 결점을 직설적으로 비난하지는 않지만 거절의 의사를 명확히 드러내는 이 대사는 작중 대사가 가지는 담백한 묘미를 보여준다.


 비슷한 예시로, 종업원 ‘비토’가 그의 여자친구에게 건냈던 말이 있다. 비토의 여자친구는 비토와 사귀기 전에 비토에게 즉석사진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지 않아도 추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사진을 찍으러 가자고 하자 비토는 이렇게 응한다. “안 찍어. 카메라로 찍은 거 뽑아서 줄게. 널 위해서 카메라 한 대 새로 살까봐.” 비토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이 장면은 둘의 만남이 지속될 것을 넌지시 암시한다.

 또한, 본 작품은 로맨틱한 감정에 집중하지만 반드시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니콜레타’의 사랑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리스토란테 파라디조>에서 클라우디오는 단숨에 니콜레타의 마음을 받아주지도 않고 그에게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는 니콜레타를 조용히 바라본다. 작품은 그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알려주지 않은 채 막을 내린다. 서사가 ‘예’와 ‘아니오’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복잡하고 섬세한 작품의 언어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현실적으로, 동시에 낭만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리스토란테 파라디조>와 <젠떼>에서 나타나는 삶의 형태는 사랑의 모양을 하고 있다. 작품의 등장 인물들은 서로 만나고 헤어지고 일에 몰두하기도 하지만 결국 다양한 형태의 사랑-가족애, 연애감정, 유대감- 속에서 살아간다. 세계에 대한 사실적인 표현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는 메시지는 더욱 명확해진다. 인간의 본질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삶을 꿈꾼다. 혹자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하여 회의적인 입장을 비치기도 한다. 사랑만으로는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그것이 과대포장된 허상이라고 비판한다. 두 작품은 사랑이 위대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사랑은 어쩔 수 없이 인간 삶의 일부임을 드러낼 뿐이다.

 <젠떼>는 주인공들의 일상을 그려내고 있는데, 여기에는 자연스럽게 사랑이라는 요소가 녹아 든다. 종업원 ‘루치아노’는 아내와 사별하고 자신의 손자인 ‘프란체스코’와 삶의 낙을 나누며 살고 있다. 어느 날 자신의 딸을 통해 알게 된 바이올리니스트 ‘사비나’와 가까워질 기회를 만나지만 그는 자신의 아내를 생각하여 사비나의 마음을 거절한다. 이 이야기는 인물의 일상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는 종업원으로서, 그리고 프란체스코의 할아버지로서의 삶을 살아가면서 동시에 사랑을 만난다.

 니콜레타의 모친은 새 남편과 이어지기 위해 니콜레타의 존재를 숨겼다. 새 남편인 ‘로렌초’가 아이가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니콜레타는 모친을 원망하지만 그가 있는 로마로 올라와 그와 직접 만나면서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고 자신의 사랑을 어머니의 도움으로 찾아간다. 니콜레타의 어머니 ‘올가’는 사랑과 삶을 동등하게 중시하는 인물이다. 그는 성공한 변호사로서, 하루종일 일에 열중하지만 사랑만큼은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거기에 니콜레타가 개입하게 되고 올가는 남편에 대한 사랑만이 아닌 딸에 대한 사랑 또한 되찾게 된다.

 이 작품은 사랑만을 별개로 떼어놓고 묘사하는 법이 없다. 삶 속에 사랑이 있고 곧 사랑 속에 삶이 있다. 두 개의 작품은 언뜻 로맨스 장르의 색채를 띠는 듯하다. 왜냐하면 각 인물들이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니콜레타’는 ‘클라우디오’를, 니콜레타의 어머니는 그의 남편을, 종업원들은 자신의 반려자를 사랑한다. 그러나 두 작품은 로맨스라는 장르로 압축하기에 충분치 않다.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더욱 비중 있게 묘사되기 때문이다. 오노 나츠메는 사랑 그 자체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 사랑이 어떻게 개입하는지 사랑으로서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작품의 사실성과 사랑이라는 주제의식이 결합되었을 때 결론은 이러하다. 작가가 작품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것은 이 세상에 대해 직접적인 문제의식을 제기한 것이며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사랑하는 삶을 산다. 사랑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을 통해 우리가 관계 맺으며 살아갈 이유를 찾고 새로운 희망을 갖기 때문이다.
이 세가지 이유(관계, 생존, 희망)는 사람의 삶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다. <리스토란테 파라디조>와 <젠떼>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이 세가지 요소를 열거하고 있다. 반나와 새로운 관계를 만든 테오, 사랑에 의해 낙담했지만 다시 타인이 베푸는 자애로 살아갈 힘을 얻는 ‘단발 여성’, 그리고 클라우디오에게 새로운 사랑의 희망을 갖게된 니콜레타를 통해 작품은 자신만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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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유진

만화평론가(2019 만화평론 공모전 신인 부문 가작 수상)
텍스트의 의미를 중심에 두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