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감싸는 따뜻한 편직물 같은, <모퉁이 뜨개방>
관계과잉 시대의 외로움
인간의 외로움이란 사회적 존재라는 특성 상 어쩔 수 없이 겪을 수밖에 없는 근원적인 것이라고들 하지만, 오늘날 현대인의 외로움이라고 하는 것의 속성은 조금은 다른 듯하다. 한 사람이 가족, 학교, 회사 등 여러 사회적 관계망에 동시에 속함으로써 사회적 활동 범위는 넓어지고 매일 만나는 사람들은 많아졌다. 통신망의 발달로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면서, ‘사회’라고 하는 것의 범위는 훨씬 넓어졌다. 오늘날의 우리는 다양한 관계로, 휴대폰 속 연락처로, SNS로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 ‘관계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지만 그 많은 관계 속에서조차 외로움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과잉된 관계만큼 커지기만 한다. 인간관계가 복잡다단해진 만큼 표면적인 관계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직접적으로 대면할 필요가 없는 관계가 늘어난 만큼 더 그렇다. 표면적이고 피상적인 관계가 인간관계의 대부분을 이루는 만큼, 나를 직접적으로 지탱하는 친밀한 관계는 드물고 귀중하게 느껴진다. 친밀한 관계를 상실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떤 시대에나 뼈아프지만, 이런 시대이기에 소중한 관계의 상실은 오히려 더 안타깝고 허무하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소영 작가의 <모퉁이 뜨개방>에서 주인공 현이는 소중한 사람을 잃고 마치 회색이 된 것 같은 일상을 사는 사람이다. 의미 없는 하루만 반복하고 있던 현이의 눈에 우연히 한 뜨개방이 들어오고, 얼떨결에 뜨개방에 발 들이게 되면서 현이는 변화를 겪게 된다.
가시화되는 내면세계와 다정한 환상
<모퉁이 뜨개방>의 배경은 다소 독특하다. 현이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현실 세계에서 살고 있지만, 그녀를 지켜보는 ‘모퉁이 뜨개방’의 인물들은 다소 환상적인 존재들이다. 뜨개방의 털실 인형들은 자신의 의지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말도 할 수 있으며, 나름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뜨개방의 할머니는 마시면 기분이 나아지는 차를 만들고 실을 자아내 살아 움직이는 털실 인형들을 만들 수 있다. 털실이는 그런 뜨개방 할머니가 현이와 함께 만들어 낸 털실 인형으로, 현이가 모르게 그녀의 마음을 돌본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현이가 마법적인 공간인 ‘모퉁이 뜨개방’과 마주친 이후 뜨개방의 존재들이 현이의 삶에 관여하면서, 현실에 환상이 스며드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이의 ‘마음’이다. 환상의 영역에 있는 이들이 주목하는 것이 바로 현이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모퉁이 뜨개방>에서 현이의 마음은 가시화되어 표현된다는 것이다. 보통 마음은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환상의 세계에 사는 존재들에게는 그것이 시각적으로 드러난다. 직장 동료들은 자신들을 퉁명스럽게 대하는 현이의 행동만이 보이지만, 현이의 직장까지 따라간 털실이의 눈에는 현이의 주변으로 뾰족하고 탁탁 튀는 것이 돌아다니는 것이 보이기도 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거부하는 현이가 돌에 둘러싸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현이의 방에 떠돌아다니는 불면과 악몽, 선잠도 인격을 가지고 현이의 주변을 떠돈다.
현이가 스스로가 인식하지 못하는 곳에서 의인화 된 마음들과 털실 인형이 그녀의 마음 속 빈 곳을 찾아 채워주려 모험을 떠나는 것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모퉁이 뜨개방>의 서사는 현실에 발 닿아 있지만 그 속에서 몇 가지 요소들을 더함으로써 일종의 동화와 같은 세계를 구성한다. 보송보송한 털실 인형과 다정한 할머니가 함께 하는 이 환상적인 세계는 홀로서기가 어려운 현이와 같은 현실의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현실세계와 내면세계를 오가는 이중구조
<모퉁이 뜨개방>의 큰 골조는 뜨개방의 존재들이 현이의 마음 속 응어리와 어둠을 해소하고 치유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이를 중심으로 그녀의 심경 변화와 그에 따른 현실의 변화가 전개되는데, 중요한 것은 현이는 할머니를 제외한 뜨개방의 존재들, 즉 털실 인형들이 인격을 가지고 있고 그들이 현이의 마음 속 어둠을 찾아 해결하기 위해 그녀의 내면세계에 들어간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 작품에서는 털실이가 모험을 벌이는 현이의 내면세계와, 현이가 생활하는 현실세계가 어느 정도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이중 구조를 찾아볼 수 있다.
현이의 현실은 불만족스럽다. 하나뿐인 가족인 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먹고 자는 일상적인 생활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다. 현이는 자신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스스로도 알기 어렵고 그것을 말하기는 더욱 어려워서,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도 나빠져 있다. 현실세계가 현이가 처해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면, 현이가 잠든 후 털실이가 모험하는 현이의 내면세계는 현이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상징적으로 가시화하여 보여준다. 털실이가 찾아낸 현이의 마음의 중심에는 비어있는 서랍장이 있다. 그녀의 인생에서 중요했던 사건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덮어둔 탓에, 그녀의 마음은 제자리에 있지 못하고 공허하게 비워져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털실이가 발견하고 정리해 마음 속 제 자리에 가져다 두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현실에서의 현이의 삶의 태도도 변화하게 된다. 분절되어 있던 두 세계가 털실이와 현이의 노력으로 점점 연결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작중 인물인 현이 자신조차도 모르고 있었던 마음 속 미스테리를 조금씩 파헤침으로써 과거를 돌아보고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재미를 준다. 또한, 서사의 초점이 현실과 내면세계를 오고가며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면서, 현이의 내면의 변화 역시 가시화된다. 마음 속 풍경이 변화하면서 현이는 용기를 내 과거의 친구와 재회하고, 직장 동료와 대화하고, 언니의 유품을 들춰볼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기본적인 생존조차 힘겨워하던 현이가 스스로의 마음을 직시하고 현실을 직시하며 점차 자신의 앞날을 위해 스스로 행동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성장물의 재미 역시 느낄 수 있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정서
오늘날의 삶은 굉장히 효율적이다. 일상적인 삶의 행위, 먹고, 자고, 씻고, 일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므로, 어떤 뚜렷한 이득이나 대가를 바라고 하는 행위가 아닌 무언가는 다소 독특한 것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취미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일탈일지도 모른다. 평소에는 하지 않던 것, 딱히 하지 않아도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지만 취미생활을 한다는 것이 일상과는 또 다른 템포를 부여함으로써 삶에 활기를 불어넣기도 한다.
<모퉁이 뜨개방>에서는 어쩌다 한 번 해본 것으로 삶의 태도와 방식이 바뀌는 마법 같은 순간이 환상적으로 그려진다. 어찌 보면 뜨개질은 심오한 구석이 있다. 일단 첫 코를 시작해야 그 다음 코를 이을 수 있고, 아랫단이 있어야 그 위를 이어갈 수 있다. 시작할 때는 한 코 한 코가 어떻게 편직물이 될 수 있을까 싶지만 묵묵히 하다 보면 어느 덧 완성되어 있다. 어둡고 칙칙했던 현이의 마음이 밝아지고 그녀의 현실 또한 변화하는 과정은 이 뜨개질을 닮았다.
현이의 마음을 불안하고 괴롭게 했던 것이 단순히 언니의 죽음에만 기인한 것이 아니라 어릴 적 친구, 회사에서의 인간관계와도 관련이 있었던 것처럼, 모든 일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었음을 작품의 말미에서는 깨달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모퉁이 뜨개방>은 말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삶은 바쁘고 팍팍하지만, 그 속에서 내 마음을 들여다 볼 쉼표 하나를 언제나 찾으라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돌보다 보면, 그 경험들이 이어져 언젠가 따뜻한 뜨개 목도리처럼 나를 어루만져 줄 것이라고. 많은 사람과 많은 관계들을 맺고 있지만 정작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별로 없는 것이 오늘날의 세태이기에, 사람의 정서를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모퉁이 뜨개방>과 같은 작품이 더 환영받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