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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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먹고 누가 먹힐 것인가! <던전밥>

2020-06-01 손유진



누가 먹고 누가 먹힐 것인가! <던전밥>




  어느 날, 한 노인이 지하에서 올라와 광란의 마술사를 처치하는 자에게 자신의 왕국을 물려 주겠노라 약속하고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사실 그는 황금 왕국의 왕이었으며 광란의 마법사에 의해 나라는 퇴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이 지하는 던전이 되었고 모험자들은 왕국과 보물을 목표로 던전 정복에 도전하기 시작한다. 그 중 한 무리가 던전의 최저층에 이르렀으나, 배가 고픈 나머지 몬스터에 완패한다. 파티의 한 술사가 소환마법으로 다른 파티원들을 지상으로 돌려보냈지만 정작 자신은 드래곤에게 먹히고 만다. 술사 ‘파린’은 파티 리더 ‘라이오스’의 동생이었으며, 남은 파티원들은 ‘파린’을 찾기 위해 무엇이든 하기로 다짐한다. 그러나 장비와 돈을 모두 잃은 그들은 ‘라이오스’의 결정에 따라 던전의 몬스터들을 먹으며 행군하기로 한다.


 이는 2015년 출판된 『던전밥(ダンジョン飯)』의 내용 일부이다. 2015년 코믹 나탈리 대상 제 1위와 2016년 이 만화가 대단하다! 1위를 수상한 이 작품은 식사라는 행위를 통해 삶과 죽음을 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라이오스에게 몬스터란 인간의 반대편에 서있는, 먹음의 대상이다. 그는 심지어 인간과 비슷한 외관을 가진 몬스터라도 서슴지 않고 먹으려 한다. 작가의 관점에 가장 가까운 존재인 라이오스는 몬스터의 죽음에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객관적인 시각을 갖고 몬스터를 철저한 타자로 다룬다. 게다가 던전에 걸린 마법으로 인해 모험자들은 죽지 않기 때문에 사람의 죽음에도 담담한 태도를 취한다. 라이오스는 한편 몬스터의 생태에 관해서는 학적 열망이 뛰어나다. 몬스터에 열광하는 라이오스의 태도는 죽음을 방관하는 그의 무관심과 얼핏 상충되어 보인다.


 그렇다면 라이오스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타자의 죽음이란 무엇일까? 그가 몬스터를 대상으로서만 바라보고 취한다는 점에서 일면 그의 태도는 근대 계몽주의의 태도와 유사해 보인다. 칸트를 시작으로 주체가 대상을 겉도는 관찰자가 아닌, 능동적으로 대상을 움직이는 존재임에 적극적으로 찬동하는 계몽주의자들의 자세는 현대까지도 이어져 서양의 ‘객관적’ 시각이 되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자연은 넘을 수 없는 경계 저편에 서있는 존재이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그들에 동화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연을 갈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라이오스의 태도는 단지 근대 칸트주의만을 따르고 있을까?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그는 ‘애정’을 갖고서 대상을 바라본다.
 
 단지 그 애정의 질이 사람에게 향하는 그것과 다를 뿐이다. 실제로 그는 죽음에 대해서 초탈한 존재는 아니다. 파티원들이 전멸할 위기에 처하자 두려워하고, 동생 ‘파린’이 죽었다고 생각해 판단력을 잃을 뻔한다. 그는 사람의 죽음에는 전혀 태연하지 않다. 그런 그가 어떻게 몬스터의 죽음에는 태연하며 오히려 그 죽음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일까? 그것은 대상과의 동질감이 얼마나 높은 지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단적으로 그의 윤리관을 파악하기에는 모자라다. 다른 파티원들도 동질감의 정도에 따라 몬스터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윤리적 관점이 주체와의 동질감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라이오스의 ‘윤리관’이 작품의 중점이 된다.

 그는 상식적인 윤리관을 갖고 있지 않다. 대인관계에 서툴다는 점 빼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차이가 없으나, 문제는 그가 몬스터에게 윤리적 잣대를 세우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의 윤리관은 동질감과는 거리가 멀다. 그가 인간을 그와 같은 위치에서 대우하는 이유는 동질감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는 것 같다. 그의 행동 동력은 목표의식과 흥미, 지적 호기심이다.
그는 파린을 구하기 위해 마다 않고 궂은 여행을 떠난다. 심지어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짓을 행하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파린과 융합된 드래곤의 육신을 먹고자 함이다. 그러나 그에게 우선이 되는 것은 파린을 구하고자 하는 목적이므로 그에게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셈이다. 또한 몬스터에게 흥미를 갖고 호기심을 발휘하지만 몬스터가 도덕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다양한 기준에서 윤리적 잣대를 정초한다. 생존에 대한 유리함, 대상과의 거리감, 순수이성 등이 기존의 그것이라면 라이오스의 윤리관은 다소 파격적인 행동마저 시인한다.

 인간을 이성적인 존재로 놓고 본다면, 생존이나 생명 등 동물적 본능에 의해 윤리관을 세우는 것은 불합리한 처사이다. 결과적으로 라이오스의 윤리관에는 두가지 요소가 혼재해 있다. 이는 철저한 인간중심주의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지성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고자 하는 자세이다. 이는 마치 현대에서 바라보는 던전밥의 중세-근대적 세계관의 갭을 묘사하는 것 같다. 인간을 중심이자 주체로 보는 근대적 시각에 더하여 현대에서 나타나는 비자연적 윤리관이 라이오스에게는 동시에 나타난다.


 물론 라이오스의 관점과 윤리관이 전적으로 옳지만은 않다. 몬스터를 철저히 타자화하여 이용하는 것은 마치 우리가 학대에 가까운 환경에서 가축을 소비하는 것과 일견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라이오스를 통해 나타나는 작품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은 듯 하다. 윤리를 다각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 때가 왔고, 이를 이해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는 것이다. 던전밥은 수많은 요소들이 얽혀있는 복잡한 만화이지만 식사를 통하여 윤리의식에 도전하고자 하는 그의 태도가 돋보이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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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유진

만화평론가(2019 만화평론 공모전 신인 부문 가작 수상)
텍스트의 의미를 중심에 두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