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페이지 미인상을 쏙 빼닮은 ‘빙그레우스’, 그러니까 2D 캐릭터가 빙그레의 공식 모델로 활동하는 일련의 과정은 한국 PPL의 정의에 이제 만화 또한 추가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인스타그램으로 천연덕스럽게 근황을 전하는 것도 모자라 뮤지컬 배우의 목소리를 빌려 웅장한 유튜브 광고까지 찍은(?) 것이 생각보다 어색하지 않다. 이는 그간 웹툰 내에 시나브로 지분을 늘려오던 간접광고의 영향이기도 했을 것이다.
드라마 제작에 투자 섭외가 필수이듯 웹툰 작가의 원활한 창작 활동을 위해 경제적 뒷받침이 필요한 현실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흐름은 일면 반갑기도 하다. 다만 드라마의 과한 PPL이 높은 확률로 작품을 망쳤던 것을 생각하면 우려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일부 웹툰에서는 이미 불만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웹툰과 광고의 공존은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을 찾는 과정에서 몇 편의 브랜드 웹툰을 살펴보았다.
1. 소재 활용의 좋은 예, <퍼스트 스위트>

첫 번째 작품 <퍼스트 스위트>는 ‘해태제과’의 브랜드 웹툰이다. 대중적인 장르인 순정만화를 택해 풋풋한 사랑과 성장 이야기를 그려낸 것은, 과자의 단맛이 첫사랑의 달콤함과 직관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전략적인 선택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인물들의 이름이 ‘허니’(허니버터칩), ‘마루’(호두마루), ‘동산’(맛동산) 등 제품명을 상기시키는 점을 제외한다면, ‘브랜드 웹툰이란 것을 잊을 만큼 완성도 높은’ 본격적인 순정만화라는 평을 받았다.
만화는 총 24부로 매화 과자나 아이스크림, 초콜릿 등 해태제과의 제품들이 연출과 스토리에 녹아져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후에 <네가 없는 시간>에서 한 번 더 보여줬던 조주희 작가(글)와 도도 작가(그림)의 협업이 돋보이는데, 산뜻하면서도 따뜻한 수채화만큼이나 돋보이는 것이 비유를 통한 연출법이다. 사소한 소재 한 가지에 서사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담아내 강한 인상으로 기억되게 한다는 점에서 광고에 걸맞다. 성공적인 비유는 억지스럽지 않으면서도 생각할수록 절묘해 감탄이 나오게 하는데, <퍼스트 스위트>는 소재로 취한 과자 대부분을 성공적으로 비유해낸다.
이를테면 자라면서 어색해진 소꿉친구 ‘허니’와 ‘마루’가 오랜만에 재회한 뒤 ‘쌍쌍바’를 통해 가까워지는 장면이 그렇다. 다른 친구들이 모두 가져가고 하나 남은 ‘쌍쌍바’를 어린 시절 모습 그대로 쪼개는 ‘마루’의 모습에서 익숙함을 느끼면서, 옛날의 친숙한 관계로 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장면이다. 스토리와 설정에 자연스럽게 엮어 들면서도 한정된 회차를 낭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적절하다. 한창 화제가 됐던 ‘허니버터칩’을 짝사랑의 감정을 전달하는 데 활용하는 것 역시 절묘하고 기발하다. 바삭한 감자칩에 단맛이 더해진 것이 특징인 허니버터칩처럼, ‘동산’을 좋아하는 ‘루비’에게 짝사랑은 “단순한 친구로선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풍미를 맛볼 수 있”는 기회다. “달콤하기도 하고 짭짤하기도 하고 고소하기도” 하지만 “나를 마구마구 부서뜨려야” 느낄 수 있는 풍미는 ‘허니버터칩’과 풋풋한 짝사랑을 동시에 묘사한다. “구하기 힘든” 귀중한 경험이란 고백은 실제로 한때 대란을 일으켜 가는 족족 품절이었던 것을 떠올리면 더욱 그럴싸하다.
광고라는 것이 상품의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목적이 있는가 하면 보다 긍정적인 이미지를 덧입히고자 하는 의도도 있을 텐데, <퍼스트 스위트>는 후자를 위한 광고일 것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과자 대부분이 이미 오랫동안 많은 이들이 즐겨온 간판상품들이기 때문이다. 이 짧은 웹툰이 감성 전달에 주력할 수 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독자들의 어린 시절에 자리하고 있을 과자들이 추억을 자원 삼아 개연성을 더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작품을 읽는 동안 달고 짭짤했던 어린 시절을 한 번이라도 떠올렸다면 충분히 성공한 브랜드 웹툰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좋은 기억은 잠깐의 식욕보다 오래가는 법이니 말이다.
2. 음악 활용의 좋은 예, <금세 사랑에 빠지는>

두 번째 작품 <금세 사랑에 빠지는>은 박수봉 작가와 가수 장범준이 협업해 그의 2집 앨범을 홍보한 웹툰이다. 몇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웹툰의 BGM 활용이 적극적으로 창작에 기여한 예라 할 수 있다. 총 11회 차이며, 각 회차에 사용된 BGM 모두가 앨범에 수록된 곡들이다.
캠퍼스 로맨스물로 스토리는 꽤 단순하다. 고등학교 시절 좋아하는 애에게 잘 보이기 위해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던 남학생이 대학에 들어와 연애와 이별, 그리고 새로운 연애를 경험하는 과정을 그렸다. 그 과정은 무대에 서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곡을 만들고 이별의 상처로 기타를 놨다가 새로 사랑하게 된 사람을 위해 다시 기타를 드는 과정이기도 해서, 음악이 BGM에서 머물지 않고 전면의 소재로 등장한다. 그런 점에서 브랜드 웹툰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낸 셈이다.
다만 그가 이별의 아픔을 견디기 위해 술과 담배를 배우고, 군대에 다녀오면서 입이 좀 험해진다는 점이나 헤어진 연인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 군대에서 전화해 울며 매달리고 자취하던 동네까지 찾아갔다는 이야기는 마냥 낭만화하기 어렵다. 어떤 면에선 너무 전형적이고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오싹하게 들릴 법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바로 그 전형성 때문에 깊이 공감하며 환영하는 독자들도 적지 않았으리라 생각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스토리 자체는 평이한 편이다.
하지만 앨범 홍보 전략 측면에선 성공적인 완급조절이라 볼 수 있겠다. 색감 활용이 돋보이는 시각연출이 음악과 함께 감상하기에 제격이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선은 단순하고 색감은 흑백으로 절제된 와중에, 유일하게 사용된 것은 첫 연애를 상징하는 노란색 계열과 두 번째 연애를 상징하는 분홍색 계열뿐이다. 언어라는 것은 말과 글이 긴밀히 얽혀 있어 활자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레 청각도 조금 닫히게 되는데, 그런 이유에서 대사의 밀도가 높은 웹툰을 음악과 함께 감상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금세 사랑에 빠지는>은 전형적인 스토리 라인으로 설명의 필요를 줄이고, 감정의 양상을 말보다 그림으로 전달함으로써 중심이 되어야 할 음악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 셈이다.
회차마다 기승전결을 가지면서도 감상의 소요 시간이 비교적 짧은 웹툰이, 마찬가지로 짧은 시간 안에 기승전결을 담아내는 음악과 결합해 글과 그림, 말과 소리로 서로를 보완함은 필연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웹툰의 OST가 창작되고 웹툰이 앨범 커버를 장식하는 요즘, 조금씩 커지는 웹툰 내 음악 산업 전반에 대한 단서를 확인하기 위해서도 참고할 만한 웹툰이라 생각된다.

마지막 작품은 얼마 전 성공적으로 <좀비딸>의 연재를 마친 이윤창 작가의 <경기딸>이다. <좀비딸>의 감동이 채 식기도 전에 유사한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한 <경기딸>을 보고 시즌 2를 기대하며 허겁지겁 클릭했을 독자들이 적지 않았겠지만, <경기딸>은 ‘경기도 여행을 떠난 좀비딸’의 줄임말로, ‘경기관광공사’ 브랜드 웹툰이다. 이제 겨우 2편밖에 게시되지 않아 본격적인 논의가 어려움에도, 목요 웹툰 중상위권에 들 만큼 반응이 괜찮은 데다 앞선 두 작품과는 또 다른 결을 보여줘 살펴보았다. <퍼스트 스위트>가 소재, <금세 사랑에 빠지는>이 음악 활용을 보여줬다면, <경기딸>은 배경 활용이 중심이다. 본편의 서사를 충실히 완주한 주인공들이 특별히 새로운 이야기를 엮어내기보다 여행이란 정해진 콘셉트 하에 경기도의 여러 관광지를 순회하며 소개를 덧붙인다는 식이다. 시공간 배경과 콘셉트가 확실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선 앞선 두 편의 작품보다 브랜드 웹툰의 역할을 해내기 무난하다고도 생각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쉽지 않았을 이유 역시 <경기딸>이 원작에서 파생된 웹툰이라는 데에 있다. 성공적인 드라마의 주연이 그 콘셉트 그대로 광고를 찍는 것은 드라마의 명성에 기댈 수 있는 대신 그만큼 이미지 소비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자칫 감동적이었던 드라마의 여운을 깨뜨린다면, 이는 해당 브랜드나 드라마 모두에게 유익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좀비딸> 역시 결말이 깔끔하면서도 깊은 감동을 주었다는 호평을 받은 만큼, 한편의 예능을 보는 것 같기도, 원작의 번외편을 보는 것 같기도 한 <경기딸>이 마냥 안전하기만 한 시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모험을 비교적 순탄하게끔 도운 것이 유머다. 고양이가 사람처럼 행동하며 냉소와 핀잔을 담당하고 좀비가 돼 이성을 잃은 딸이 상황에 따라 눈치를 보는 등, 이윤창 작가 특유의 유머는 <좀비딸> 본편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 유머들 하나하나가 사실은 복선이었다는 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슬픔과 진지함, 명랑함을 오가며 분위기의 강약을 조절하는 데 쓰였다는 점에서 핵심적이었다. 설정의 안팎을 넘나들며 독자의 몰입을 좌지우지하는 이 유머가 <경기딸>을 이끄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시작부터 “이거 브랜드 웹툰이에요”라고 밝히며 “외주의 1등 공신” ‘애용이’를 치켜세우는 모습은, 광고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차라리 익살스럽고, 그러면서도 원작의 개그 방식에서 벗어나지 않아 독자가 마음 놓고 즐기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의 광고가 통한다는 사실 자체가 웹툰 PPL이 문화로 자리잡혀가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 아닐까.
영화 <트루먼 쇼>에서 모든 비밀을 알게 된 주인공이 아내(역을 맡은 배우)를 위협하자, 아내는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면서도 할당된 광고량을 위해 카메라를 보고 제품을 홍보한다. 최근 드라마 PPL을 보면 그것은 한국 PPL 산업을 향한 암울한 묵시록이었나 싶을 정도다. 뜬금없는 클로즈업과 기능 설명이 성가신 방지턱이 되어 극의 전개를 방해하고 시청자의 몰입에 제동을 건다. 하지만 모든 PPL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상품군마다 활용도에 차이가 있고 광고주의 요구 역시 제각각일 테지만, 어떤 PPL은 광고인 것을 눈치 못 챌 만큼 절묘하기도 하고, 구체적 상호명이 현실성을 더해 극의 몰입을 돕기도 한다. 그러니 노력한다면 창작물과 광고가 동행할 수도 있지 않을까. 창작자의 생계 안정에 도움을 줘 작품 활동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앞서 살핀 세 편의 작품은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섬세하고 독창적인 웹툰 PPL의 선례가 더 많이 등장하는, 건강하고 활기 있는 웹툰 시장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