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흉악범의 출소와 디지털 교도소 : <비질란테> 리뷰

2020-09-16 조아라



흉악범의 출소와 디지털 교도소 : <비질란테> 리뷰

1.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던 희대의 사이코패스 범죄자가 올해 12월에 출소한다. 이제 출소가 100일도 채 남지 않은 셈이다. 출소 후에 수감 전 살던 곳으로 돌아가겠다는 발언에, 범죄자를 이웃 주민으로 맞이해야 하는 사람들은 특히 두려워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을 달래기 위한 저마다의 노력도 한창이다. 출소를 반대하는 국민청원은 62만명이 넘었고, 출소한 전과자를 보호시설에 격리하는 새로운 법안이 추진 중이다.
두려움보다 분노를 택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애당초 터무니없이 적은 형량이라는 것이다. 미국이었으면 종신형을, 중국이었으면 사형을 받았을 범죄에 징역 12년형을 선고한 것부터 단추를 잘못 꿰었다는 주장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확정된 형은 연장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범죄자의 출소를 막을 수 있는 법은 없다. 이제 와서 ‘감형 없는 종신형’ 같은 법을 발의한다손 치더라도, 곧 출소하는 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2.
사실 법 감정과 실제 형량사이의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심신이 미약하여, 술에 취한 상태여서, 초범이어서 등 각종 이유로 감형을 해주는 것 또한 일반적 법 감정에 반하는 일이다. 급기야 ‘디지털 교도소’라는 불법 개인정보 유포 사이트가 등장하고야 말았다. 물론 범죄자들의 신상을 공개함으로써 그들에게 사적인 제재를 가하는 디지털 교도소가 명백한 범죄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으며, 실제로 무고한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불법적인 사이트가 왜 생겼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해 봄직하다. 아마도 디지털 교도소를 지지하는 이들은 공적 제재가 불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적 제재를 일삼는 이 사이트는 아이러니하게도 공적 제재의 대표격인 ‘교도소’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3.
CRG(스토리), 김규삼(작화) 작가의 <비질란테>는 이러한 사적 제재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비질란테(Vigilante)는 자경단이라는 뜻으로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하여 조직한 민간단체, 즉 공권력과는 별개의 힘을 행사하는 단체이다.
극중 주인공이자 비질란테로 활약하고 있는 김지용은 어릴 적 살인범에게 어머니를 여읜 과거가 있다. 횡단보도에서 부딪혔다는 이유로 김지용의 어머니를 무자비하게 구타한 살인범은 깊이 뉘우치고 반성한다는 이유로 3년 6개월의 비교적 가벼운 형을 선고 받는다. 김지용은 이를 납득하지 못하고 이후 출소한 살인자를 찾아간다. 김지용의 예상대로 살인자는 출소 후에도 반성의 기미 없이 여전히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김지용은 본인의 생각이 옳았음을 확인하며 죄책감 없이 살인범을 죽인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렇게 범죄자들을 처단하는 것이 본인의 소명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낮에는 착실하고 타의 모범이 되는 경찰대학생 김지용으로, 밤에는 범죄자를 처단하는 비질란테로 살아가게 되면서 이 작품의 스토리가 시작된다.

4.
비질란테는 본인을 정의라고 굳게 믿고 있으며, 이를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명확한 기준

‘저지른 일에 비해 터무니없이 약한 판결로 풀려난 자,
그렇게 선처를 받고도 범죄를 계속 저지르는 자’

에 따라 목표물을 고른다거나, 흉기를 든 범죄자를 맨손으로 상대하는 행위를 통하여 본인은 부도덕한 범죄자와 다르다고 주장한다. 범죄자로 하여금 죽기 전에 천망(죄인을 잡기 위해 하늘이 쳐 놓은 그물)이라는 반성문을 쓰게 하는 것도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의 발로이다.

5.
그리고 독자는 어느 새 범죄자임이 분명한 비질란테의 주장에 현혹된다. 그도 그럴 것이 비질란테의 행위는 독자에게 현실에서 느끼기 힘든 대리만족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환자들의 은밀한 부분을 몰래 촬영하여 유포한 의사의 경우가 그렇다. 작품 내에서 의사는 5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을 뿐, 신상정보가 공개되지도 의사 면허가 취소되지도 않았다. 피해 환자들은 잊기 힘든 고통을 받았지만, 정작 가해자는 다른 곳에서 새로 병원을 개원하여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체념하겠지만, 작품 내에서는 비질란테가 의사의 손을 짓이겨 못쓰게 만드는 것으로 응징한다. 그리고 독자는 이러한 비질란테의 응징에 대리만족을 느낀다.
이렇듯 작품의 초반에 ‘법망을 교묘히 피한 범죄자를 비질란테가 응징하는’ 여러 개의 사건을 늘어놓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비질란테를 선(善)으로 인식하게 한다. 이로써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비질란테라는 영웅이 악당을 응징하는 것에 환호하게 되는 것이다.

6.
그렇다고 이 작품이 비질란테와 같은 사적 제재를 옹호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은 나름대로의 정당성으로 무장했던 비질란테의 행보가 사회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도 여실히 보여준다. 예를 들어 비질란테 모방 범죄가 그렇다. 작품 내 대중들은 비질란테가 반성 없는 전과자를 응징하는 것에 환호하고, 비질란테에 동조하는 모방범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 특히 미성년자들은 본인들이 촉법소년인 것을 십분 이용하여 모방 범죄를 저지른다. 영웅의 활약으로 미화된 비질란테의 범죄도 위험하지만, 아직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깊은 생각 없이 전과자를 고르고 살해하는 미성년자의 행동은 더욱더 파장이 크다. 언론은 언론대로 비질란테를 악용한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 비질란테의 행동을 자극적으로 방영할 뿐만 아니라 비질란테를 영웅으로 포장하여 대중을 선동한다. 심지어 비질란테의 먹잇감으로 몇몇 전과자를 추천하는 만행도 저지른다. 법적 해결보다 비질란테에게 살인을 청부하는 대중들도 생겨난다.


 △ 비질란테의 사적 제재는 의도치 않은 혼란을 야기한다. 모방 범죄가 일어나고(왼쪽), 언론은 이를 자극적으로 악용하며(가운데), 일부 대중은 비질란테에게 살인을 청부한다.

이렇듯 위법을 통해 법의 구멍을 메워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비질란테의 행동은 그 의도와 관련 없이 수많은 부작용을 낳는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화되지 않은 힘의 위험성은 그리고 비질란테와 대립하는 괴력의 경찰 ‘조헌’이라는 인물의 가치관을 통하여 표출된다.



△ 조헌은 김지용(비질란테)에게 사적 제재의 위험성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작품 내 대적할만한 인물이 거의 없는 괴력의 소유자인 조헌이 비질란테의 대척점에 있다는 사실은 이야기에 팽팽한 긴장감을 더한다.


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확실히 비질란테를 옹호하는 자세를 취한다. 개개의 전과자를 응징하는 데에서 시작했던 비질란테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거악(巨嶽)에 맞서게 된다. 비질란테가 맞서는 악(惡)이 커질수록 상대적으로 비질란테는 그나마 선(善)처럼 묘사된다. 마치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처럼 말이다. 그리고 독자는 어느새 작품에 몰입하여 비질란테가 체포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비록 범법자이자, 연쇄 살인마이기는 하지만, 작품의 주인공이자 본인이 믿는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비질란테를 독자로서 응원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비질란테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 「데스노트」의 ‘야가미 라이토’도 팬이 많았으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비질란테와 야가미 라이토는 작품 속 허구의 인물에 불과이다. 하지만 범죄자의 만기 출소에 시끄럽고, 사적 제재를 가하는 불법 범죄사이트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지금의 현실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이 허구의 인물은 독자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