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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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덤채팅의 그녀!>-이제 랜덤채팅은 안 하나요?

2020-09-17 김한영




<랜덤채팅의 그녀!>-이제 랜덤채팅은 안 하나요?

  이번 내용은 비단 <랜덤채팅의 그녀!>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랜덤채팅의 그‘녀’가 어느 순간 랜덤채팅의 그‘년’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것을 보며 소재의 참신함보다 흥행을 보장해주는 공식이 있을 거란 확신이 생겼다. 줄거리 설명이 무색한 상황이다. 캐치프레이즈는 “랜덤채팅만 하던 준우에게 온 기적! 과연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라 쓰여 있지만 147화 연재에 와서 주인공 최준우는 랜덤채팅을 지웠고, 그녀(윤성아)는 히로인의 숙적이 되었다. 물론 흥행을 위해 탈바꿈된 만화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드래곤볼>은 초사이언이 등장하기 전까진 코믹 어드벤쳐였고 카드게임의 상징인 <유희왕>은 원래 이름처럼 여러 보드게임으로 내기를 하는 도박꾼이야기였다. <테니스의 왕자>도 능력자 배틀 만화가 되기 전엔 순수한 스포츠만화였다. 중요한 건 변했다는 사실보다 무엇으로 변했냐는 점이다.

  웹툰 <프리드로우>의 그림 스타일을 닮은 <랜덤채팅의 그녀!>는 어느 순간 내용도 <프리드로우>를 목표했다. 두 작품의 몇 가지 공통점을 짚자면 우선 메인플롯을 뒤로하고 서브플롯만을 반복한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그 새로운 인물은 커뮤니티의 질서를 흔든다. 갈등과 해소를 반복하며 새로운 인물을 레귤러로 편입시킬지 단발성으로 끝낼지 달라질 뿐이다. <랜덤채팅의 그녀!>는 하렘이라는 장르답게 중반부를 넘긴 지금까지 꾸준히 (메인플롯과 관계없는)새로운 여학생을 등장시킨다.

  여학생 간의 이간질과 시기, 질투는 에피소드의 주제가 될 만큼 중요하게 다뤄지며 갈등의 파생으로 남학생들은 단지 여학생들 때문에 몸싸움을 벌인다. 더 상세히 설명하자면 <랜덤채팅의 그녀!>역시 여성은 미녀와 악녀로 이분된다. 악녀는 미녀의 인기를 시샘하기에 이간질과 따돌림으로 미녀를 괴롭힌다. 정치판의 축소로 생각할 수 있지만 허점투성이다. 그러나 혐오에 기인한 핍진성이 부실한 얼개를 덮어준다. 주인공 남성은 미녀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악녀의 하수인인 남성은 악녀를 대신해 커뮤니티를 위협하는 물리적 폭력을 자행한다. 그래서 나쁜 폭력은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이고 착한 폭력은 여성과 커뮤니티를 지키는 폭력이다. 주인공이 악당의 함정에 걸려 억울하게 누명을 썼을 때, 여학생들의 비난이 ‘(남자인데) 여자를 때렸다.’ 라는 내용인 것을 상기하면 여성은 절대로 때려서는 안 되는 신성불가침이다.

  ‘찐따’ 주인공이 ‘인싸’가 되기 위해서는 나쁜 ‘인싸’인 일진을 무력으로 진압해야한다. 더욱 더 악랄한 악한이 등장하고 또 한 번 커뮤니티를 지켜냄으로써 그들에게 ‘인싸’로 인정받으면서 미녀들이 그를 따른다. 미녀는 성애화 된 자신을 어필할 수 있도록 짧은 바지와 치마를 즐겨 입고 풍만한 가슴이 드러나도록 교복을 줄여 입는다.
‘아싸’와 ‘인싸’, ‘찐따’와 ‘일진’, ‘폭력적 남성’과 ‘성적 여성’. 단어의 나열은 <랜덤채팅의 그녀!>와 <프리드로우> 그리고 일진 장르만화라고 하는 인기 웹툰을 관통하는 횡단열차와도 같다. 획일화된 작품을 더 이상 논하는 것은 동어반복이 되겠지만 작품이 원래 하고자하는 이야기를 버리면서까지 노선을 달리한 것은 소위 ‘인싸’장사가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린다는 의미일 것이다. ‘인싸’라는 집합명사 밑으로 일진, 웹툰작가, 미남, 유튜버, 인플루언서 등이 월화수목금토일 오와 열을 맞춰 서있는 것이 오늘날 웹툰계가 아닌지 과장해본다.


  하지만 일진 웹툰으로 변해버린 <랜덤채팅의 그녀!>도 더 들여다보면 작품자체의 이야깃거리가 존재한다. 작품은 ‘찐따’의 심리를 집요하게 묘사한다. 그래서 따라오는 물음은 ‘왜 독자가 ‘찐따’인 주인공이 ‘인싸’가 되는 서사에 열광할까?’ 라는 궁금증이다. 원래 ‘찐따’는 절름발이를 비하하는 단어였다. 절름발이 파(跛)의 일본식 표현인 “ちんば”에서 파생되었다고 얘기도 있으나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오늘날 ‘찐따’는 ‘일진’의 반대되는 용어로 쓰이면서 교실 안 정치에서 가장 낮은 서열을 의미한다. 그리고 ‘찐따’가 ‘일진’그룹에 입성하는 사례는 실제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그것이 만화에서는 가능하기 때문에 대리만족의 쾌감을 선사한다.

  작가는 작중 반장이라는 캐릭터의 입을 빌려 ‘찐따’를 이렇게 표현한다. “자존감은 낮은데 쓸데없이 자존심은 세다.” 이 표현은 상당히 흥미로운데 일반적으로 일진 장르 만화는 ‘찐따’가 판타지 설정으로 특별함 힘을 얻은 후 주인공이 할 수 있다는 긍정 에너지를 계급투쟁의 원동력으로 삼지만 <랜덤채팅의 그녀!> 그 ‘쓸데없는 자존심’이 주인공의 동기가 된다. 사백안, 안광, 색 반전, 로우앵글 등으로 쉴 새 없이 인물의 심리를 극단적으로 표현하고 주인공을 나락으로 빠뜨려 주인공의 자격지심을 계속 자극하여 그가 악에 받쳐 위로 향하도록 압박한다. 예를 들어 주인공의 선의는 인정받기커녕 오해로 되돌아온다. 랜덤채팅의 그‘년’이 되어버린 사태도 주인공이 랜덤채팅 뒤에 숨어 몰래 여주인공을 도와주었지만 여주인공이 정체를 알자 사과 감사의 인사가 아닌 왜 하필 너냐는 분노와 혐오를 드러냈다. 작품은 주인공을 괴롭히면서 ‘호의를 베풀면 호구가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자기비하와 피해망상이 얽혀 엇나가는 최준우를 보면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의 주인공 이카리 신지가 생각난다. 둘은 공통적으로 ‘고슴도치 딜레마’에 고민하는 캐릭터다. 추운 겨울 고슴도치는 온기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 뭉치치지만 바늘로 서로를 찌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인간은 자립과 일체감이라는 두 가지 욕망이 공존한다는 얘기다. 당시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답은 상처 주는 모든 타자를 용해시키고 하나 된 주체로 환원되어 태초의 바다로 돌아가고 소년과 소년이 쓸쓸히 남겨진 결말이었다. 25년이 지난 지금, <랜덤채팅의 그녀!>의 박은혁 작가는 어떤 결말을 준비하고 있을까.


  작품에서 가장 기억 남는 장면은 준우가 병적으로 자신을 집착하는 리라를 더 이상 연민하지 않고 거절하는 부분이다. 앞서 고슴도치 딜레마에서 필자가 역점을 두고 싶은 부분은 나 역시 누군가를 찌른다는 사실이었다. “아이에서 어른이 된다는 건, 자신이 배신당하고 상처 받는 존재에서 배신을 하고 상처를 주는 존재인 걸 알아채는 것이다.”라고 말한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2008)의 대사처럼 소년의 성장은 가해자로서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의연해지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간 타인의 평가가 두려워 착한 사람으로 행동했던 준우가 처음으로 타인을 상처주길 망설이지 않고 거절한 장면은 준우가 정신적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후 분노조절장애에 가까운 인물들의 감정기복과 보는 이를 지치게 만드는 주인공의 반복된 가해행위는 작가가 의도한 미숙한 주인공의 모습인지 작품 붕괴를 뜻하는지 혼란스럽다.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자크 라캉의 말이 독자와 대중작품의 관계에서 해당될 수 있어도 작가가 작가 사이에서 통용되어서는 안 된다. 히로인을 숙적으로 바꿔버린 설정이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라면 그것이 <신세기 에반게리온>처럼 긍정적인 메시지가 아니더라도 작품으로서 존중 받아야 한다. 그러나 흥행을 위해 일진 장르로 노선을 바꾼 거라면 지금이라도 목표를 다시 그려야할 것이다. 액션에 어울리지 않는 데포르메 비례로 ‘굳이’ 격투 장면을 연출해 작화 붕괴를 저지르고 분노조절장애라고 놀림 받는 주인공의 감정기복은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신체에서 기인한 혐오와 혐오를 바탕으로 세워진 학교 정치학. 그리고 신체로 갈등을 표현하는 획일화된 일진 장르를 뛰어넘어 처음으로 거절한 준우의 성장처럼 <랜덤채팅의 그녀!>가 다른 작품에서 다루지 못한 작품 고유의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