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마영신 작가의 <콘센트>는 네이버웹툰에 연재된 작품으로 외모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여성 주인공 정숙이와 그녀의 친구 2명, 정숙의 친오빠와 그의 친구 2명으로 구성된 남자 셋 그리고 여자 셋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태로 다루고 있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여성을 성적대상화 하고, 외모로 인한 자기혐오가 한 여성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 가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작품 속에는 젠더 간 불평등과 갈등이 담겨져 있다. 빠듯한 경제적 사정으로 개인적 욕구를 억압하고 제한하며 살아가는 오빠가 해외여행을 다니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주변 여성의 삶을 동경하며 질투하는 모습을 여성혐오의 동기와 이유로 설명하고 있다. 주인공이 오빠의 블로그 비공개 일기를 우연히 접하면서 엿보는 남성 중심의 젠더 편향성이 여과없이 표현되어 있다.
외면의 가치가 내면의 가치와 능력보다 선행된다는 왜곡된 가치관이 만연한 현대사회에서 타인과 비교되는 신체에 대한 상대적 평가는 개별적 외모만족도를 감소시키는 요인으로, ‘외모(Lookism)’를 사회문화적 측면과 페미니즘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주인공의 외모 콤플렉스는 민감한 감수성을 지녔던 유년시절에 느낀 감정과 상처의 결과로써 주인공이 성장하여 성인이 되어서도 자존감과 행동의식에 투영된다.
외모 지상주의로 인한 ‘매력자본’의 등장
국제성형의학회(ISAPS)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인구당 성형시술 횟수가 가장 많은 세계 1위의 성형국가이다. 번화가에 즐비한 성형외과와 온라인에서 성황을 이루는 성형정보 공유카페의 모습은 신체이미지에 대한 불만의 반증이자 자기부정과 자기혐오가 보편화된 한국사회의 단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캐서린 하킴의 《매력 자본》에서 경제적‧인적‧사회적 자본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가진 외적‧성적 매력을 ‘매력자본(Erotic capital)’으로 주장한 바 있다. 매력자본은 아름다운 외모, 성적인 매력, 사회적 대인관계 요소, 활력, 사회적 치장`, 섹슈얼리티 등을 칭한다. 이 책에서는 ‘외모를 가꾸는 것을 죄악’으로 주장하는 일부 ‘진취적인 페미니스트’들의 행동을 지적하며 ‘급진적인 페미니즘(radical feminism)’이 모든 페미니즘을 대변하는 것을 우려하였다. 급진적 페미니즘이 매력 자본의 활용에 반대하는 가부장적인 입장에 힘을 보태 남성 우월주의적 관점과 공모한다는 점에서 그 반대의 이유를 찾고 있다. 여성에게 아름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여성스러운’ 외모나 스타일을 강요받고,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의식과 활동을 분별할 수 있는 힘을 키울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미적 기준에 의해 자기혐오에 빠진 10대 여성들이 섭식장애를 일으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콘센트>의 여성 주인공이 갖고 있는 자기혐오는 ‘들창코’라는 외모적 조건에 의한 결과물이다. 어린 시절 친구들이 주인공의 외모를 놀려대는 통에 가지게 된 외모적 자기혐오는 작품의 첫 에피소드에서 드러난다. 남녀 2:2로 미팅을 참석하는 자리에 뒤늦게 도착한 주인공을 반갑게 맞이한 두 남성은 주인공이 머플러를 풀고 들창코를 드러낸 순간부터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러한 남성들의 모습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며 주인공이 회상에 잠기는 모습으로 작품이 시작된다.
코의 성형수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적성에 맞지 않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정숙이는 철마다 목돈을 요구하는 엄마의 간곡한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는 모질지 못한 캐릭터로 그려져 있다. 월급 150만원의 단순 노동을 하는 아르바이트생으로 그녀의 목표는 코 성형수술비 3백만원, 유럽여행 2백만원을 모으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정경제를 일절 책임지지 않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시아버지의 병원비와 인상되는 전세금까지 책임져야 하는 어머니의 고된 삶을 목도하고 있는 주인공의 번번이 좌절되는 코 성형의 꿈은 독자에게 동질감과 소속감을 갖는 강력한 장치가 된다. 가부장적인 가정환경 속에서 개인의 공간마저 박탈당했던 주인공은 오빠에게 방을 내어주고 부모님과 함께 거실생활을 하며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한다. 경제적·물리적으로 독립을 꿈꿔보지만, 쳇바퀴 도는 주인공의 삶과는 전혀 다르다. 유럽여행을 준비하고 개방적인 연애생활을 즐기고 있는 친구들의 일상은 사치 같은 이질감을 느낄 때가 있다.
여성 주인공의 절친인 보조 캐릭터들의 등장은 평면화 되거나, 도구화된 전형적 여성캐릭터를 전복한 캐릭터로 극중 스토리 라인을 적극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동성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는 다양한 성적 담론이 담겨있다. 남성의 성기 크기를 유추하는 방법부터 애인과의 성경험은 그녀들의 개방적 성문화를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서로에게는 말 못할 사정들이 존재한다. 주인공이 대학시절 첫사랑과 겪은 낙태경험을 비롯한 해방감과 일탈을 꿈꾸며 도전해본 누드모델의 경험들이 그러하다. 또한 일순 돌변한 원나잇 상대로부터 겪은 모욕적 경험은 그냥 덮어두고 싶은 각자 개인사로 치부된다.
극중 20대인 미혼여성들이 겪는 차별과 경험은 다양했다. 동성인 엄마에게 겪는 서러운 성차별을 비롯하여 불특정 다수에게 당하는 성추행은 젊은 여성이 홀로 감내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사회적 위험이었다. 직업이 없는 남자친구를 대신해 모텔비까지 내주는 주인공을 ‘밝히는 섹스파트너’로 치부한 채팅창 내용을 보고 겪은 좌절감은 ‘칫솔사건’으로 정점에 달한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회사에서 정숙의 칫솔에 정액을 묻혀 놓은 직장 동료의 파렴치한 행동에서 독자는 분노하게 된다. 순간 칫솔이 송충이처럼 그려진 장면은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대변한다.
성별 고정관념에 근거한 여성혐오
점점 더 평등해지는 젠더관계에 대한 남성의 부정적인 반응은 여성혐오로 귀결되기 쉽다. 보통 여성 혐오표현은 성역할의 고정관념에 기인한다. 지배집단인 남성은 이러한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자신들의 지위를 정당화하는 장치로 활용하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으로 치부되던 군수장비 제조산업 현장부터, 토목공사, 선반공 등 다수의 일자리를 여성으로 대체하게 되어 그간 성별에 따라 일자리를 규정해왔던 것이 고정적 성 관념에 의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종전 후에 남성들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되찾기 위해 여성에게 가족을 돌보는 사적인 의무를 강요하고 자녀의 비행과 남편의 외도까지도 어머니의 관리소홀 문제로 결부되었다. 이러한 여성 이미지 재현이 미디어를 위시한 남성연대의 의도적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혐오 과잉 시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혐오가 일상이 되었는지에 대해 문화평론가 박민영은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를 통해 ‘맘충’, ‘급식충’, ‘연금충’ 등의 이른바 사회적 혐오 현상을 짚고 있다. 이 책 속에는 청소년, 20대, 주부, 노인과 같은 ‘세대층’,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세월호 유족과 같은 ‘이웃들’, 이주 노동자, 조선족, 난민, 탈북민과 같은 ‘타자’, 일본, 정치, 이슬람, 빨갱이와 같은 ‘이념’까지 다양한 혐오 대상의 분류가 담겨있다.
오빠의 관점과 서사의 맥락은 주인공이 오빠의 PC에서 우연히 발견하여 읽게 되는 비공개 블로그 일기를 통해서 전개된다. 오빠는 실직한 아버지를 대신해 가계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실질적 가장으로 아직 미혼이지만,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키워졌다. 친구의 소개로 만난 여성 팝아티스트의 거짓 신음소리에 성적 흥미를 잃고 떠나는 상황에서,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을 닮은 그녀의 작품에 ‘짝퉁’이라는 흔적을 남긴 그는 위선에 대해 경멸하고 진정성에 대한 욕망을 가진 남성으로 묘사된다. 성과 사랑이 일치해야 한다는 가부장적 남성중심사회의 가치관을 가진 캐릭터로 해석된다. 사랑했던 연인과 결혼을 꿈꾸며 전셋집 종자돈 마련을 위해 아껴가며 사고 싶은 것, 쓰고 싶은 것 절제하며 돈을 모으는 모습은 해외여행을 즐기며,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여자 친구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2030 남성의 시대상과 상대적 박탈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고 도전하는 주인공
작품은 여주인공의 유년시절을 오가며 주인공이 겪었던 외모비하와 수난의 시기를 공유하고 독자의 공감을 얻는다. 악몽으로 등장하는 거울 속 자아의 모습과 작품의 종반부 거울의 방에서 주인공이 조우하는 유년기 자신의 모습은 코에 콘센트를 꽂은 채 많은 부분을 상징화하여 보여준다. 반복되는 악몽 속에서 거울이미지 방 어딘가에서 그녀를 괴롭히던 조롱의 목소리가 자기 자신이었다는 귀결은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로 인해 스스로 만든 올무였다는 무의식의 형상이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이마고’(imago)는 ‘돼지코’라는 말의 세계와 구별되는 망상적 이해로 보여진다.
주인공의 코 성형 수술성형은 개명과 함께 진취적인 성격의 새로운 캐릭터로 변모하는 여성 주인공의 변화를 동반하였다. 나를 위한 삶을 살아가며 남들이 추천하거나 강요한 문화가 아닌 나를 위한 문화를 즐기는 삶으로 묘사된다. 콤플렉스로 해방되어 회복한 자신감은 남자에게 연락처를 받는다는 상황적 설정으로 표현하였다. 그간 가까운 친구들과 비교하며, 비참하고 우울했던 이전의 모습과는 달리, 현재의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로 성장시켰다. 비록 그 요인은 성형이라는 외적 요인이었을지라도, 작중에서 주인공은 친구들과 오빠의 블로그 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성장해 나아갔다.
작품을 읽으며 ‘성인만화’라는 명칭의 한계성에 대해 고민해본다. 흔히 성애만화와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는 ‘성인만화’는 이 시대가 가진 성숙한 어른들의 담론을 담아낼 그릇이 되어야한다. ‘19세 미만 구독불가’라는 딱지가 더 이상 말초적 시각을 자극하는 성애물이라는 등식이 깨져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콘센트>가 가진 작품의 의의가 있다. 여성과 남성이 가진 젠더 간의 갈등과 서로를 바라보는 스테레오 타입의 성인지, 그러한 젠더 간의 몰이해의 벽을 작품 속에서는 오빠의 비밀일기라는 매개를 통해 허물어 간다. 미혼 청년들의 삶 속에서 빠질 수 없는 연애와 리비도의 이야기는 ‘성인만화’라는 카테고리 속에서 자유롭고 천박하지 않은 독자와의 교감을 형성해 나아갔다. ‘성애만화’가 넘치는 웹툰 환경에서 건져낸 성숙한 ‘성인만화’라고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