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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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캐릭터가 빚어낸 매력적인 작품 <중증외상센터: 골든 아워>

2021-02-09 이재민




공간과 캐릭터가 빚어낸 매력적인 작품 <중증외상센터: 골든 아워>


‘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 라는 올림픽의 모토처럼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안전하게’ 살려내는 게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 있다. 모든 병원이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속도가 가장 중요한 곳이 있다. 바로 권역외상센터, 흔히 중증외상센터로 알려진 곳이다. 중증외상센터에는 지금 당장 처치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것이 뻔한 중증환자가 대부분이고, 그 중에서도 큰 사고를 당하거나 재난적 상황에서 목숨이 위태로운 환자가 찾는 곳이다.

 

우리에게는 ‘아덴만의 여명 작전’을 시작으로 ‘2017년 판문점 귀순 총격사건’ 등으로 잘 알려진 이국종 교수라는 영웅 유닛이 중증외상센터를 알리는 역할을 했다. 바로 이 ‘중증외상센터’를 다룬 작품이 있다. 한산이가 작가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홍비치라 작가의 그림을 통해 독자를 만나는 <중증외상센터: 골든 아워>다.

 

초를 다투는 외상센터

 

작품은 국내 최고의 의과대학을 가진 한국대학교 병원을 무대로 펼쳐진다. 한국대학교에서는 정부 지원을 받아 중증외상센터를 설치하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적극적으로 추천한 주인공 백강혁을 전담 교수로 채용한다. 백강혁이 온 첫 날부터 칼에 찔린 환자를 시작으로 멈추지 않는 응급외상환자 러쉬(!)가 이어진다.

 

작품은 중증외상센터라는 장소의 특징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처음 취임식날부터 시작된 응급환자는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찾아온다. 실제로 이국종 교수도 36시간 연속 근무 후 잠시 눈을 붙이고 또 다시 36시간 연속 근무를 하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고, 외부 강연 등이 있는 날이 아니면 항상 수술복을 입고 근무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 속에서도 이를 표현하는데, 백강혁 교수를 제외한 팀원들은 다크써클이 표현되는 경우가 흔하다.

 

때문에 <중증외상센터: 골든 아워>는 사건이 끊이지 않는 작품이 된다. 실제로 언제 사건이 발생할 지 모르기 때문에 밥도 삼각김밥으로 때우고, 제대로 잠을 자는 모습도 나오지 않는다. 시간 단위가 아니라 분 단위를 다투는 중증 환자를 다루기 때문에 이국종 교수는 “골든 아워가 아니라 플래티늄 미닛(Platinum Minute)”이라고 표현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증외상센터라는 작품 속에서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위기감과 긴박감을 만들고, 독자의 몰입감을 높인다.

 

괴팍한 천재, 백강혁

 

하지만 자칫하면 기계처럼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만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실수라도 벌어지면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기 쉬운 중증외상센터라는 장소의 특성은 평범한 캐릭터를 거부한다. 특히 수술로 사람을 살리는 장면에 드라마를 더해야 하는 웹툰은 평범한 캐릭터로는 ‘사람을 살리는’ 행위에 압도되기 쉽고, 그렇게 되면 독자들 역시 수술실의 분위기에 사로잡혀 극 전체에 몰입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중증외상센터: 골든 아워>는 이런 문제를 천재 의사 ‘백강혁’을 통해 해결했다. 첫 등장부터 응급실 당직의사가 항문 전공의라 “항문”이라고 부른다거나, “환자를 살리는 것 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냐”고 소리치는 모습은 독자들을 수술실에서 벗어나 이 캐릭터, 백강혁에게 집중하게 만든다. 이를 위해 작품에서는 백강혁을 엄청난 천재라는 설정을 덧붙였다. 다른 사람은 불가능해도, 백강혁이라면 가능하다는 설정은 수술실 내의 일 보다 백강혁의 행동에 집중하게 만든다.

 

어차피 백강혁은 이겨내고, 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작품을 보는 독자들에게 쌓인다. 불가능해 보이는 수술도 해내고, 죽음의 문고리를 잡은 사람을 끌어내 이승에 돌려놓는 백강혁의 능력은 그가 부임한 이후 외상응급환자 생존률 98%가 증명한다. 괴팍한 천재, 백강혁은 끊임없이 발생하는 사건, 즉 환자들을 살려낸다.

 

백강혁에게 환자는 ‘당연히 살려야 하는 존재’고, 살릴 수 없는 환자는 없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는 아주 높은 확률로 그걸 해내는 의사다. 독자들은 처음엔 호기심으로 백강혁을 바라본다. 함부로 다른 의사에게 ‘항문’이라고 부르거나, 자신을 추천한 장관까지 배석한 취임식에서 “이 병원 개판”이라고 말하는 모습은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냥 패악질일 뿐이다. 그러나 백강혁은 실력과 환자를 대하는 진정성으로 독자를 설득한다.

 

여기에 백강혁의 아버지가 제때 치료받지 못해 골든아워를 넘겨 사망했고,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다음에는 한국대학교에 갈 수 있었음에도 장학금 때문에 다른 대학교로 진학했다는 설정이 붙으면서 ‘괴팍한 이해못할 천재’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으로 내려오게 된다. 독자들은 이 시점부터 백강혁을 단순히 천재 의사가 아니라, 마치 친구처럼 여기게 된다.

 

 현실의 문제, 공론화의 장이 되는 웹툰


<중증외상센터: 골든 아워>는 단순히 괴팍한 천재 의사가 사람을 살려내는 스토리만으로 인기를 얻은 게 아니다. 천재 의사라는 설정은 주인공이 갈등하고 싸워나가야 마침내 이겨야 하는 빌런, 즉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외상을 너무 간단하게 제압하도록 만든다. 백강혁의 천재성이 빛나면 빛날수록, 독자들은 앞서 말한대로 주 무대가 되는 외상센터에 대해 흥미를 잃는다. 외상센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건 백강혁이 자리하고 있으면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출렁이는 파도 위의 배에서 팔의 신경을 깔끔하게 잇고, 헬기 위에서 머리뼈를 열고, 장기 이식수술을 순식간에 해내는 괴물 같은 실력의 의사가 있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독자들은 환자가 살아날 것을 알고 있다. 때문에 외상환자 자체는 작품 속의 갈등이 고조되고 손에 땀을 쥐는 문제는 아니게 된다. 작품 속에서 주요한 갈등 상황을 만들어내는 건 바로 현실의 문제들이다.




 

백강혁은 취임 이후 매달 적자폭 때문에 문책을 받는다. 응급환자를 살리기 위해 긴급한 상황에서 더 많은 치료와 수술, 그리고 약품이 사용된다. 더군다나 일하던 중에 사고를 당하거나, 심각한 외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의 경우 부유층보다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계급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적자폭은 더욱 커진다. 환자를 살릴수록 한달에 수억씩 적자를 보는 기형적인 문제, 그리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눈치를 봐야 하는 병원의 입장과 같은 현실의 문제들이 작품 속에 들어오면서, 작품의 갈등은 환자를 살리느냐 못 살리느냐가 아니라, 살린 다음의 문제로 넘어온다.

 




여기에 이국종 교수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문제들이 겹치면서, 독자들은 환자를 살리기 위한 중증외상센터의 노력이 ‘적자’로 해석되는 현실에 분개한다. 이미 뉴스를 통해 실제로 만났던 이야기가 다시 작품 속에서 재생되면서, 독자들이 다시 뉴스를 찾아보고 현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실제로 댓글에서도 이국종 교수를 떠올리며 제대로 된 지원이 이뤄지지 못하는실을 안타까워하는 댓글이 많이 보이는 것도 현실의 사례를 가지고 가상의 이야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이미 수없이 논의된 철지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백강혁의 이야기로 다시 힘을 얻은 이야기는 현실의 문제를 환기시킨다. 어떻게 보면 이슈가 되었을 때만 관심이 있었을 독자들도 백강혁의 이야기를 통해 전달되는 현실의 문제들에 분개하면서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되는 효과를 만든다.

 

이렇게 현실의 이야기가 섞이면서 백강혁의 캐릭터가 빛을 볼 수 있는 서사적 장치가 마련되는데, 바로 ‘사이다 서사’를 위한 빌드업이다. 현실의 문제는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렵지만, 가상의 문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렵고 힘든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도록 장치들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고로 위독해진 외과 과장의 딸을 멀쩡히 소생시켜 적이 아군이 되게 만든다거나, 전 국민의 관심이 모일 수 있는 사건이 계속해서 생겨 정치인이 후원자로 나선다거나 하는 식이다.

 

때문에 ‘사람을 살린다’는 너무나 당연한 당위가 돈 때문에 지켜지지 못하는 현실과 그런 문제를 속 시원히 해결하는 백강혁이 교차하면서 독자들은 대리만족을 느끼고, 여전히 남은 현실의 문제를 다시 곱씹어보게 된다.

 

<중증외상센터: 골든 아워>는 현직 의사가 쓴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속 시원하고 빠른 전개, ‘중증외상센터’라는 특수한 공간과 캐릭터를 적절히 활용하는 영리한 작품이다. 독자를 유혹하고, 잡아둔 다음 이야기 너머의 문제를 보게 만든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언제나 매력적이다.

필진이미지

이재민

만화평론가
한국만화가협회 만화문화연구소장, 팟캐스트 ‘웹투니스타’ 운영자
2017 만화평론공모전 우수상, 2019 만화평론공모전 기성 부문 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