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기억하고 싶은 한순간 <당신의 모든 순간>
인간적인 좀비들
<당신의 모든 순간>은 강풀의 순정만화 시리즈 중에서도 좀 독특한 컨셉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발표된 <순정만화>, <바보>, <그대를 사랑합니다> 같은 경우에는 우리 주변 어딘가에 있을 만한 캐릭터들의 애틋한 사연들을 보여주었지만 <당신의 모든 순간>은 좀비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순정만화와 좀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읽고 나면 좀비물이 아니라 순정만화 시리즈에 포함되는 것이 이해가 간다. 오히려 이질적인 조합이 작가가 보여주려는 사랑의 메시지를 극대화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순정만화 시리즈 중 단연 최고로 꼽고 싶은 작품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배경은 2012년 새해 첫날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람들이 좀비가 되기 시작하면서 벌어진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많은 사람들이 전염이 되어 좀비가 되고 말았다. 정욱이 사는 아파트 사람들도 몇 명의 생존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좀비가 되고 만다. 일반적으로 문화콘텐츠 속 좀비들은 괴기스러운 모습을 하고 사람들을 위협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영화 <부산행>이나 <킹덤>에서의 좀비들을 보면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달려든다. 오로지 사람들을 공격하라는 명령만 입력된 로봇처럼 말이다. 그래서 캐릭터들이 살아남기 위해 도망을 치거나 좀비들을 퇴치한다.
<당신의 모든 순간>의 좀비들도 그런 공격성을 띄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그리고 보급을 하러 온 군인들이 좀비를 대하는 태도도 유사하다. 좀비들에게 총을 쏘아대며 자신들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도록 경계한다. 군인들에게 좀비는 자신들과는 다른 비인간적 존재이자 위험요인이기 때문이다. 좀비들이 총상을 입고 쓰러지는 것에 동요나 죄책감은 없다.
그런데 정욱의 태도는 조금 다르다. 좀비들을 적대적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좀비들의 기이한 행동의 원인을 알아내려한다. 왜 밤이 되면 문을 두드려대는지, 어두운 밤이면 구슬프게 울어대는지를 말이다. 정욱은 오랜 관찰 끝에 좀비가 되기 전 마지막 기억이 반복되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들의 마지막 행선지가 집이었기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밤마다 문을 두드려댄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이 이야기 속 좀비들의 행동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정욱처럼 좀비들을 이해하려는 캐릭터가 다른 이야기에는 있었을까?
그런데 그다음 정욱의 행동이 더욱 놀랍다. 좀비에게 잡힐 위험을 무릅쓰고 아파트의 집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누구의 집인지 사진으로 확인한다. 그리고 좀비들을 일일이 각자의 집으로 들여보낸다. 좀비들을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정욱은 그들을 단순히 괴물로 보지 않는다. 그저 지금은 사람과 조금 다른 존재가 된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도 좀비가 되기 전에는 자신과 똑같이 “이 어려운 세상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욱이 애써 각자의 집으로 돌려보냈던 좀비들은 기를 쓰고 밖으로 다시 나온다. 어떤 좀비는 손잡이를 돌리지 못해 문으로 나오지 못하자 창문을 깨고 떨어지기까지 한다. 그들의 목적지로 데려다 주었는데 왜 이들은 다시 밖으로 나와야만 했을까. 정욱은 자신의 형이 좀비가 되어서 나타났을 때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을 떠올리며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좀비들은 마지막 기억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것을 기억한다는 것을. 가장 소중한 가족이 없는 집은 좀비들에게 슬픔의 공간일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렇게 작가가 표현한 <당신의 모든 순간>의 좀비들은 상당히 인간적이다. 물론 서로를 잡아먹기도 하고, 인간들을 공격하는 점에서는 다른 작품들의 좀비들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좀비들의 행동은 무의식 중에도 좀비가 되기 전의 삶과 연결이 되어 있다. 생을 마칠 때까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순간을 끊임없이 되뇌는 좀비들의 모습은 연민을 갖게 한다. 좀비화 증상이 나타나자 딸을 위해 스스로 집을 떠나는 주선의 부모의 희생에서는 숭고함까지 느껴진다. 특히 눈물을 흘리는 좀비들이 여러 번 등장을 하는데 자아를 잃은 상황에서도 일말의 감정이 남아있다는 점이 더욱 안타깝게 여겨졌다. 오히려 완전무장을 하고 좀비들을 공격하는 군인들의 모습이 비인간적으로 느껴졌다.
가장 소중한 기억
무인도에 남자와 여자 둘만 남아있다면 서로 사랑의 감정이 싹틀 수 있을까. 이야기 속 정욱과 주선이 처한 현실이 바로 그러한 상황이다. 정욱은 맞은편 건물에 사는 주선이 생존자인 것을 알게 된다. 정욱과 주선은 좀비들을 피해 왕래를 하며 가까워진다. 사실 정욱은 주선을 짝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선의 곁에는 별 볼 일 없는 자신을 좋아해주는 원헌이라는 남자가 있었다. 정욱은 그들이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새해 첫날 이후로 상황이 달라졌다. 원헌은 이미 좀비로 변해버렸고, 정욱과 주선은 아파트에서 좀비들에 둘러싸인 채 하루하루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주선도 자신을 배려해 주는 정욱에게 점점 기대면서 정욱의 바람은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아마도 많은 독자들이 정욱과 주선의 사랑을 응원했으리라. 하지만 작가는 그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주선은 이미 좀비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정욱 앞에서 화장으로 가려보았지만 증세는 점점 심해졌고 정욱도 그 사실을 눈치챈다. 이제 정욱이 바라는 것은 주선에게 가장 소중한 기억이 자신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좀비가 되어서도 자신을 바라봐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욱의 소망은 이뤄지지 않는다. 좀비가 된 주선은 정욱이 아닌 원헌과 이야기를 나눴던 벤치만을 바라보았다. 주선에게 가장 소중한 순간은 별 볼 일 없던 자신을 계속 사랑해주었던 원헌과의 추억이었던 것이다. 작가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아마도 아무리 극한 상황에서도 사랑의 마음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은 아닐까.
정욱은 좀비가 된 원헌을 찾아 아파트로 올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고 주선과 원헌은 늘 함께 앉아있던 벤치에 나란히 앉아 떠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둘이 함께 있던 시간이 가장 소중한 순간이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장면은 정욱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좀비 소탕작전을 앞두고 자신이 사랑하는 주선을 보호하기 위해 벽돌을 쌓아 그들의 소중한 순간이 영원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자신은 행복한 얼굴로 아파트 옥상에서 주선과 잠시나마 즐거웠던 한 때를 보냈던 그 순간을 떠올린다. 그렇게 정욱은 생이 다할 때까지 자신의 기억 속에서 주선과의 하루를 반복해서 살아간다.
“세상의 종말은 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종말을 맞았다” 이야기 속 대사처럼 종교에서, 학계에서, 예언가가 세상의 종말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자연은 변화가 없다. 꽃은 피고, 비는 내리고, 눈은 쌓인다. 이야기 속에서도 자연은 여전한데 인간만 자아를 잃고 좀비가 되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영원할 것만 같지만 미래는 알 수 없다. 언젠가는 공룡처럼 멸종이 될지도 모른다. 전쟁 때문일 수도 있고, 바이러스 때문일 수도 있고, 지금은 밝혀지지 않은 이유 때문일 수도 있다.
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유례없는 혼란을 겪고 있다. 시시각각 늘어나는 확진자수에 정부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연신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원치않는 자발적 격리생활을 누구나 경험하고 있다. <당신의 모든 순간>처럼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거리두기의 일상화가 사람들 사이의 거리감을 일상화하는 것은 아닌지, 코로나블루로 우울한 시간이 계속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작가의 던진 질문에 대답을 해보자.
“당신의 마지막 기억이 되었으면하는 소중한 기억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