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집’의 의미
우리는 힘이 들 때 종종 ‘집에 가고 싶다.’ 라고 말하곤 한다. 여기서 말하는 집의 의미는 무엇일까? 집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인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과는 조금 다르다. 우리는 ‘집’이란 단어를 단순히 비바람 따위를 막는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아닌, 마음 편히 쉴 수 있고 포근하며 안전한, 보금자리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이런 의미의 집이라면, <두 번째 집>의 주인공들에겐 집이 없다.
△ <1화> - 지욱과 정원의 첫 만남.
작품의 주인공 ‘지욱’은 아버지에게 가정폭력을 당하며 불안 속에서 하루를 버텨내는 고등학생 남자아이다. 그런 지욱은 남편과 시어머니의 구박을 참으며 살아가는 옆집 여자, ‘정원’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둘은 서로의 밥을 챙겨주며 점점 가까워지고, 서로에게서 집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안락함과 편안함을 느낀다. 어느새 둘은 아무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해 줄 수 있고, 힘이 들 때 먼저 생각이 나는 존재로 자리 잡는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타인이지만, 그들에게는 서로가 버팀목이었으며 두 번째 집이었다.
2. 적은 대사와 독백의 효과
‘다음 웹툰’에서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연재한 <두 번째 집>은 ‘우현’ 작가의 데뷔작으로, 오묘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빛을 효과적으로 이용해 작품의 분위기를 극대화 시켜주며, 아름다운 배경작화로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두 번째 집>만의 분위기를 유지시켜 주는 데엔 다른 웹툰들에 비해 대사와 설명이 비교적 적다는 점도 한 몫 한다. 대사나, 상황을 설명해주는 주인공의 독백이 적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독자와 함께 공감하며 만들어나가야 하는 작품을 적은 설명으로 풀어나가는 것은 자칫하면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 집>은 많은 대사와 설명 대신 작품 속 인물들의 표정과 시선으로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이렇게 인물들의 속마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독자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주는 방식은 작품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하며, 작품의 차분하고도 오묘한 분위기를 유지시켜준다.
3. 아슬아슬한 관계의 줄타기
필자는 이 작품을 ‘아슬아슬한 줄타기’ 라고 표현했다. 바로, 이 작품의 가장 큰 논란거리이자 화제 거리인, 주인공 둘이 자아내는 분위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에 독자들은 극과 극의 반응을 보인다. 어느 누군가는 그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사랑이고, 불륜이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불쾌감을 표하기도 하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둘의 관계성을 이성적 감정으로 보는 것엔 무리가 있으며 단순히 의지가 되는 동질적 관계라 말한다. 어느 쪽이 맞을까? 아리송한 관계의 지욱과 정원. 그들은 단순히 서로를 ‘집’으로서만 본 것일까?
△ <3화> 복숭아를 깍아주는 정원을 보며 얼굴을 붉힌다.
지욱은 작품의 초반부터 정원을 눈에 띄게 의식한다. 정원의 분리수거를 도와주며 정원이 쓰던 샴푸냄새를 맡아보고, 정원을 보기 위해 매일 도서관을 찾아가기도 한다. 만나면 얼굴을 붉히는 모습과 정원의 이름을 공책에 적어보는 장면은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소년의 모습이다.
6화, 정원의 집에서 형광등을 교체해주는 등,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다 넘어져, 집에 가서 이불을 차던 모습은 또 어떠한가. 마치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멋져 보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원 또한, 지욱을 신경 쓰는 듯 보이는 장면이 많다. 지욱과 그의 친구, ‘혜인’이 함께 있는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도 하며, 10화에서 우산이 없다며 지욱과 함께 한 우산을 쓰고 걸어가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정원의 자리에 우산이 놓여 있는 장면은 정원 또한 지욱에게 마음이 있다고 보여 진다.
하지만, 다음 화에서 정원의 자리에 놓여있던 우산은 그녀의 우산이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지고, ‘동정인가? 내 주제에.’ 라며 정원의 속마음을 드러내 둘의 감정이 연애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짚고 넘어가기도 한다. 14화에서 혜인과 지욱이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고 하자, 정원이 기침을 하는 모습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지만, 정원이 감기에 걸린 상태였기 때문에 지욱을 의식한 행동이라 보기엔 애매하다.
△ <39화> - 서로를 보며 집이라고 느끼는 장면
지욱이 보여주는 수줍은 모습은 정원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지만, 작품의 후반에선 초반과 같은 눈에 띄는 감정표현은 잘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정원에게서 집 같은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따뜻하게 보듬어 줄 어머니도, 기댈 수 있는 친구도 없었던 지욱에게 정원은 첫사랑인 동시에 어머니이자, 친구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때문에 둘의 관계를 불륜이라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동질감과 사랑 사이의 그 무언가. 숨 막히는 현실 속, 서로의 피난처였던 둘의 관계는 한 단어로 담아내기엔 복합적이다.
4. 집이라는 소재에 대하여
△ <2화> - 독자들을 아리송하게 만드는 연출
이렇게 독자들의 반응이 극으로 갈린 것처럼, 둘의 관계성은 작품의 장단점을 동시에 드러나게 한다. 지욱과 정원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는 작품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킨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 집>은 특별한 장면 없이도 둘의 느린 행동과 시선만으로 독자들을 간질간질하고 설레게 만든다.
다만, 안정감을 느껴야 하는 상황에서 둘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은 관계성은 때론 몰입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둘의 관계가 실제로 어떻던, 앞서 언급했던 정원이 우산을 일부러 놓고 왔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연출과, 지욱을 의식하는 것 같은 정원의 기침 등은 독자를 헷갈리게 하는 의도적인 연출이다. 작품의 감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공감이다.
지욱과 정원이 가만히 마주보며 편안함을 느끼는 장면에서 독자들도 같은 감정을 공유해야 흔히 말하는 힐링이 되는 것인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다. 그들의 오묘한 분위기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욱과 정원의 관계에 대한 묘사가 나오면, 댓글 창은 어김없이 떠들썩해진다. 댓글기능이 있는 웹툰 플랫폼에서 댓글은 하나의 감상요소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보았을 때, 둘의 관계성을 놓고 갑론을박을 논하며 다투고 있는 이 작품의 댓글들은 감상에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이처럼 집이라는 소재의 안락함을 다루는 작품에서, 미성년자와 유부녀 사이의 의미심장한 연출은 장점과 단점을 함께한다.
5. 감상에 정답은 없다.
물론 감상에 정답은 없다.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어쩌면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구체적인 독백과 설명 없이, 시선과 행동만으로 보여주는 <두 번째 집> 만의 연출은 독자들의 자유로운 감상을 가능하게 하게 한다. 상처만을 주는 집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두 번째 집을 찾은 지욱과 정원. 그들의 관계에 자신만의 정의를 내려 보는 것은 어떨까. 혹은, 복잡한 문제는 내려놓고 작품이 풍기는 아름다운 분위기에 취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