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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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통해 삶을 말하다 <죽음에 관하여>

2021-04-05 최정연



죽음을 통해 삶을 말하다


1. 죽음에 관하여


2012년부터 2013년까지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한 <죽음에 관하여>는 글 작가 시니 와 그림 작가 현호의 합작으로, 총 23화로 이루어진 짧은 웹툰이다. (그 후 2018년에 재 연재를 하며 외전 5화가 추가되었다.)


△ 죽음에 관하여 – 네이버 웹툰

 <죽음에 관하여>는 제목 그대로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교통사고로 죽게 된 사람, 강도에게 살해된 사람, 자살한 사람 등, 저 마다의 사정으로 죽은 사람들이 미지의 세계, 즉 저승으로 가기 전 무의식의 세계에서 신을 만나며 벌어지는 일들을 짧은 에피소드 형식으로 풀어 나간다. 주인공들의 가슴 아픈 사연과 충격적인 반전으로 독자들을 울고 웃게 만들었던 이 작품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멀고도 가까운 죽음에 대해 고민해보게 만든다. 죽음은 어떤 것일까. 죽고 나면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어떻게 살아야 후회가 없을까. <죽음에 관하여>는 죽음뿐만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한 방향성 또한 제시한다.

 

2. 뛰어난 연출력, ‘반전’에 관하여


<죽음에 관하여>는 한 화가 약 40컷에서 50컷 정도로 이루어진 다소 짧은 구성에서도 불구하고 뛰어난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 중 대표적인 연출법으로는 ‘반전’과 ‘흑백과 컬러의 조화’를 뽑아 볼 수 있다.


△ <2화> - 현실세계로 돌아가자 자신을 부르는 4789는 죄수번호가 되어있었다.

 2화의 이야기는 작품에서 가장 처음 나온 반전임과 동시에 가장 인상 깊었던 연출이었다. 강도에게 살해당한 2화의 주인공은 자신의 죽음을 억울해하며 신에게 살인자는 지옥에 가냐고 묻지만 신은 지옥 같은 건 없다며, 그저 죄를 뉘우치고 참회하게 만든다는 말 뿐이었다. 아무이유 없이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반성을 할리 없다 생각하던 그때, “4789!” 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신은 여기서 느낀 것을 잊어버리지 말라 당부하며 그를 현실세계로 돌려보낸다. 현실세계로 돌아가 보니, 그는 처형장에 놓여있었다. 살해당한 피해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주인공은 사실 곧 교수형에 처해질 살인마였으며, 신이 그의 죄를 스스로 뉘우치게 만들기 위해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보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반전은, 막연히 잘못된 행동을 나쁘다고 지적하는 것보다 효과적으로 교훈을 강조할 수 있으며, 오래토록 기억에 남아 독자에게 큰 영향력을 끼친다.

또한 2화에선 앞서 언급했던 ‘흑백과 컬러의 조화’도 사용되었다. 이 작품에서는 무의식 속 미지의 세계는 흑백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현실 세계는 컬러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런 연출법은 현실세계와 미지의 세계의 혼란을 막아주어 이해를 도와줄 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 마치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꿈에서 깨어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보다 극적인 효과를 부여한다.


△ <9화> - 삶은 단 한번 뿐이야.

 

<죽음에 관하여>는 작품의 핵심 주제, 죽음에 대한 정의 또한 반전으로 전달한다. 8화는 자살했던 아버지의 의식이 돌아오며 다시 한 번 살아갈 기회를 얻는 희망적인 화로 구성했지만, 9화는 앞의 사례와 비슷한 경우로 죽고 후회하는 사람에게 “삶은 한번 뿐이야. 무슨 반전을 기대해?” 라고 말하며 의외로 다시 살아나는 반전 없이 끝을 맺는다. 이미 3화, 5화, 8화 등에서 희망찬 결말을 본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이번에도 주인공이 되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감을 품게 된다. 하지만, 9화는 죽으면 끝이라는 다소 절망적이고 허무한 내용으로,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죽음’을 보여준다. 한 에피소드 안에서의 반전이 아닌, 연속되는 회 차의 대비를 사용해, 독자들에게 당연하지만 잊고 있었던 죽음에 대한 정의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3. 만화의 본질에 관하여


<죽음에 관하여>의 연출방법은 누군가에겐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도 있다. 특별한 설명과 자세한 서술이 없기 때문에 작품의 숨겨진 뜻을 독자 스스로 유추하고 해석해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매화 댓글에는 해당 회 차의 해석을 써놓은 댓글이 베스트 댓글이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해석 댓글이 없으면 자세한 설명 없는 반전은 자칫 틀린 해석을 하거나, 무슨 내용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아리송해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만화란 과장된 그림과 생략된 표현으로 대상을 풍자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을 알아두어야 한다. 작은 컷 속에 담긴 많은 해학적 의미를 읽어 내는 것이야말로 현대사회의 독자들에게 요구되는 능력이다. 현재 한국의 웹툰은 전 세계적으로 발전해나가고 있지만, 스스로 생각해 보고 고민해 볼 수 있는 만화는 너무나도 적어졌다. 마치 한 사람이 쓴 듯 비슷한 스토리를 가진 웹툰들의 홍수 속, 현대사회를 관철하고 가슴에 와 닿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은 얼마나 될까. 단순히 보고나면 기분이 환기되는 오락적인 만화도 좋지만, 요즈음 우리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만화를 넘기고만 있진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았을 때, <죽음에 관하여>는 만화의 본질을 상기시켜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연출법이 장점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에피소드 형식으로 진행되는 작품의 특성상, 짧은 이야기에 큰 반전 있는 스토리를 담아내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죽음에 관하여>는 한계를 드러낸다. 반전은 처음 사용되었을 때는 충격적이며 참신한 느낌을 주지만, 너무 많이 사용되면 그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반전은 예측이 되는 순간 더 이상 반전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짧은 스토리 내에서 구현할 수 있는 반전은 무한하지 않으며, 반복되는 레퍼토리는 점점 진부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마치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적인 반전과, 숨겨져 있는 뜻에 놀라는 것은 이 작품의 묘미이자 특성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이에 따라 독자들의 기대는 점차 커져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1년이란 기간의 짧은 연재는 작품을 더 즐기고픈 독자들에게 있어서는 아쉬운 부분이지만, 작품을 억지로 끌고 가는 것보다 깔끔하면서 여운을 남기는 마무리였다고 볼 수 있다.

 

4. 삶에 관하여


누군가 자신이 죽는 순간을 상상해 보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늙어서 죽는 모습을 상상하지, 젊은 나이에 불운한 사고로 죽는 것을 상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죽음은 언제나 곁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당연하게 죽는 순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작품의 주인공들처럼 어느 날 갑자기 사고를 당할 수도 있으며, 혹은 본인이 아니더라도 곁에 있는 소중한 누군가에게 예고 없이 죽음이 찾아 올수도 있다. 사람들은 작품을 읽는 순간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런 독자들에게 작가는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을 제시한다.


△ <9화> - 삶에 대한 방향성

 “생각하지 않으려 하면 분명히 후회해. 지금의 너처럼. 죽음은 나와 상관없다고. 먼 미래니까 지금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냥 알고 있으면 돼. 그것만으로 변할 거야. 후회하지 않으려면 알고 있어야 해.”

후회 하지 않는 삶에 대한 방식은 각자 다르겠지만, 만화를 읽는 짧은 한 순간이라도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해봤다면 그것만으로 우리는 변화 할 것이다.

필진이미지

최정연

만화평론가
2020 만화·웹툰 평론 공모전 신인부문 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