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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읽는 조금 다른 로맨스 웹툰: 뻔한 플롯에 질렸을 때 <재벌과의 인터뷰>

2021-04-05 주다빈



봄에 읽는 조금 다른 로맨스 웹툰: 뻔한 플롯에 질렸을 때 <재벌과의 인터뷰>
 모든 만물이 새롭게 생동하는 계절 봄. 내가 직접 행동하지 않는다면 변할 것도 없는 일상에서 습관처럼 설레고 에너지를 느낀다. 목을 훑고 지나가는 적당히 선선한 바람이 마음에 들고, 시선을 방해하는 햇빛이 즐거운 계절이다. 최근 들어 가장 마음에 들었던 순간을 꼽자면 내가 좋아하는 이 두 가지를 모두 흠뻑 즐기는 동시에 누군가 유튜브에 올려둔 우타이테 노래를 들으며 보선 작가의 <나의 비거니즘 만화>를 읽었던 날이다. 몇 주에 걸쳐 꽃을 사다 심은 마당은 어설펐고, 초보자에게 마음대로 가지치기를 당한 자두나무는 예년보다 훨씬 적은 꽃봉오리를 매달고 있었으나 마음만큼은 ‘타샤의 정원’에 와있었다. 어떤 것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쉽게 느껴지는 요즘, 봄이 물씬 느껴질 로맨스 웹툰을 추천하고자 한다.

 

지금까지의 로맨스

 

로맨스 드라마에서는 시청자들이 원하는 이야기가 많이 바뀌었다. 한참 《꽃보다 남자》라는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이 흥행하던 때가 있었다. 최근 유튜브를 통해 당시 드라마의 클립이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으며 사람들을 괴롭게(?) 하고 있다. 《꽃보다 남자》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와 캔디형 여주인공이 나오는 클리셰 결정체였다. 설정 역시 조금씩 어색한 부분이 있었음에도 꽤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더는 그런 이야기는 시청자를 사로잡지 못한다. 2020년에 방영되었던 《더 킹:영원의 군주》(이하 《더킹》)를 보면 알 수 있다. 김은숙 작가는 로맨스 드라마의 성공 보증수표로 정말 많은 드라마를 성공하게 했다. 대표작이라 할 작품 하나를 꼽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그렇기에 《더 킹》에 대한 세간의 기대는 엄청났다. 이번엔 김은숙 작가가 어떤 설레는 이야기로 시청자의 마음에 불을 지를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첫 회 시청률이 약 11%였던 것에서 계속 감소해 마지막 회에는 8%대로 떨어졌다. 여기엔 다양한 문제가 종합적으로 포함되겠으나 작가가 보여주고자 했던 세계관이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던 점, 과한 PPL로 몰입을 방해했다는 점이 가장 컸다. 그 외에도 많은 평론가가 꼽은 문제 중 하나는 시대착오적인 연애관이었다.

김은숙 작가의 대표작 대부분은 ‘백마 탄 왕자’와 ‘꿋꿋한 캔디’의 만남에서 시작됐다. 《시크릿 가든》에서는 백화점 사장 ‘김주원’과 가난하지만 꿈을 향해 도전하는 스턴트우먼 ‘길라임’이 등장 했고 《도깨비》에서는 재벌이자 엄청난 능력을 갖춘 ‘김신’과 일찍 부모를 잃고 갖은 눈칫밥을 먹으며 이모 집에 얹혀사는 ‘지은탁’이 있었다. 물론 《태양의 후예》,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조금 더 주체적인 캐릭터가 등장했지만 여전히 남자 주인공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캐릭터는 아니었다. 여주인공은 남자 주인공들의 보호 아래 자신들의 소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사실 지금까지 로맨스는 응당 이런 장르였다. 그러나 이 스토리 라인은 흥행할 가능성이 높은 스토리이지, 100% 흥행이 보증된 스토리는 아니었다. 시대가 변화했고, 시청자들은 어디서 들어본 듯한 스토리에 싫증을 느꼈다. 또 더 모든 것을 백마 탄 왕자님이 해결해 주기를 원하지 않는다. 로맨스 드라마의 대가 김은숙 작가의 패배는 꽤 충격적이었고, 로맨스를 쓸 다른 작가들에게 여러 질문을 던졌다.

 

변화하는 로맨스 플롯과 로맨스 웹툰

 

반면 웹툰의 경우 여전히 승리 공식이 통할 때가 많다. 그에 대한 증거로 여전히 많은 로맨스 웹툰이 위와 같은 형태를 취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꽤 인기를 얻는다. 특히 최근 웹 소설 기반의 로맨스 작품을 웹툰으로 각색하면서 중세풍의 신데렐라 스토리가 더욱 많이 생산되고 있다. 차갑고 명석한 성향의 남자 주인공과 어떤 연유로 ‘이 세계’에 떨어져 고군분투하는 여자 주인공이 있다. 여기서 여자 주인공은 김은숙 작가의 여자 주인공처럼 2가지 형태로 나뉘는데 ‘꿋꿋한 캔디’거나 ‘똑똑한 벨’이다. 이야기 플롯을 이용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비슷한 유형의 이야기들이 사랑받아 왔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받아온 플롯일수록 구조적으로 짜임새 있다. 인기 있다 해서 그 이상의 고민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웹툰에서는 독자들의 제한이 더욱 자유로운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독자의 요구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웹 소설을 각색한 작품의 몇몇 댓글에서는 이런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에 대한 비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로맨스 필승전략을 이용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로맨스 필승 전략을 비꼬는 작품이 있다. 바로 다음 웹툰인 <재벌과의 인터뷰>이다. 시즌 1을 끝내고 재정비 시간을 가진 뒤 얼마 전 다시 돌아왔다. 여기에는 아주 흔한 로맨스 클리셰가 등장한다. 바로 재벌 3세 남자 주인공과 로맨스 장르 웹 소설 작가인 여자주인공이다. 이 둘은 어느 나라의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늘 그래 왔듯이 남자 주인공은 이성적이면서도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 한편 별다른 얘기가 나와 있지는 않은 것으로 어림짐작해 보면 여자 주인공은 ‘평범함’ 그 자체이다. 그러나 이 로맨스 웹툰은 두 사람의 관계를 조금 비틀며 다른 로맨스물과 차이를 만든다.

 

변화하는 로맨스 플롯과 로맨스 웹툰: 두 주인공의 관계

 

여자 주인공 ‘지은’은 생활력이 강하고 뚝심 있는 캐릭터로 설정되었고 남자 주인공 ‘양 서준’은 겉으론 차갑고 철두철미해 보이지만 여리고 섬세한 성격을 갖고 있다. ‘지은’은 여행 중 발생한 자연재해로 패닉에 빠진 ‘서준’ 보다 침착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한다. 그러면서 흔히 답답한 행동으로 위기에 처해 구원받는 역할이었던 여자 주인공은 도움을 주는 역할로, 남자주인공은 우연히 자꾸만 위기에 처하는 역할로 등장한다. 이후 ‘서준’은 여행에서 돌아온 뒤 알 수 없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지은’을 백방으로 찾아 나선다. 그 둘 사이를 이어주는 유리 구두는 백만 원 짜리 깻잎이다.




 

변화하는 로맨스 플롯과 로맨스 웹툰: 악녀의 욕망 변화


이 둘의 사랑을 방해하는 인물 역시 존재한다. ‘서준'의 비서 ‘유능’이다. 여기서 작가의 또 다른 비꼬기가 등장한다. 기존 로맨스물의 경우 재벌가 주변 인물로 악인 캐릭터가 설정된다면 그 근간이 되는 심리는 남자 주인공에 대한 연애 감정이다. 여기서 이 캐릭터는 대체로 남자 주인공을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봐 온 인물로 비슷한 수준의 재력과 능력을 갖추고 있고 여자 주인공보다 월등히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경우가 많다. 그러나 ‘유능’의 목적은 조금 다르다. ‘유능’ 역시 꽤 괜찮은 집안에서 나고 자랐으며 이름 그대로 유능한 인물이다. 덕분에 ‘서준’이 가깝게 곁에 두며 자신의 개인적인 일을 (예를 들면 지은을 찾는 일과 같은) 믿고 맡기는 존재이다. 이때 ‘유능’은 전형적인 로맨스 장르의 악인 캐릭터와 완전히 다른 욕망을 보여준다. ‘서준’에 대한 연애 감정이 아닌 ‘권력욕’을 원동력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현재 태양 그룹의 후계자인 ‘서준’이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그대로 태양 그룹을 물려받아 자신 역시 안전하고 완벽한 진급을 꿈꾼다. 그렇기에 ‘유능’이 생각할 때 아무런 메리트가 없는 ‘지은’과 ‘서준’의 연애는 괜한 트집이 잡혀 ‘서준’을 후계자 계승 다툼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할 수 있는 아킬레스건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능’은 ‘서준’의 측근이라는 우위를 이용해 그 둘의 관계를 망가트리려 한다. 그러나 모든 로맨스물이 그러하듯 운명은 자꾸만 두 주인공을 엮으려 든다.

 

 


이 웹툰은 지금껏 그래왔던 많은 것들을 비틀면서도 그대로 답습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기존의 이야기 플롯을 그대로 가져감으로써 독자들에게 재미를 전달했고 그러면서도 플롯을 비틀어 식상함을 탈피했다. 또 시대의 요구에 응답했다. 정리하면 기존의 재벌 남성과 평범한 여성의 로맨스물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의 큰 틀은 그대로 가져갔지만 두 캐릭터를 신데렐라와 왕자님의 관계에 놓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여자 주인공에게 빠져버린 남자 주인공과 현실적인 여자 주인공이 됐다. 그런 관계임에도 둘의 관계 설정이 묘한 캐미를 자아낸다. 또 흔한 악녀 캐릭터 역시 욕망을 바꿈으로써 신선한 캐릭터로 보이게 했다. 덕분에 많은 독자는 ‘유능’을 악녀라 생각하지 않으며 꽤 많은 독자가 멋진 캐릭터라 생각한다. 두 주인공의 연애를 방해하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기존 플롯의 형태에서 많이 이용된 역할이지만 관점을 조금 바꿈으로써 독자에게는 새로운 스토리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재벌과의 인터뷰>는 꽤 느린 전개로 1부가 끝난 현재까지 여전히 두 주인공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지 못했다. 독자로서는 원하는 장면이 나올 기미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 답답하긴 하지만, 조금 여유를 두고 기존의 로맨스 플롯을 바꾸는 도전을 천천히 따라가며 재미를 느낀다면 어떨까?

필진이미지

주다빈

만화평론가
2020 만화·웹툰 평론 공모전 신인부문 대상